언론을 통한 피의사실 공표

입력
2023.02.07 00:00
27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 직전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피의자 신문 한번 없이 전격 기소했다. 언론들을 통해 '관계자'를 출처로 하는 엄청난 수사정보가 흘러나왔다. 언론들은 그 조각조각의 수사정보를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했다. 검찰은 언제나 그 정보의 출처가 자신들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검찰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수사정보가 다른 어디서 나온 것인가. 언론에 정보를 흘려서 검찰의 일방 주장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피의자를 압박하고, 광범위한 압수·수색으로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에서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려는 검찰의 오래된 전략으로 보인다. 조국사건 이외에도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KBS 정연주 사장, 간첩조작사건, 국정농단사건 등 수사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검찰의 전략 실현에 수족 역할을 한 것이 언론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피의사실에 대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언론은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한다. 그래서 일부 헌법학자들은 민주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권을 언론의 자유로 보기도 한다. 동시에 언론은 정파성을 갖는다. 어느 나라나 진보언론, 보수언론, 중도언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정파성은 사실을 기초로 하는 합리적 해석의 영역이다. 사실에 대해서도 정파적으로 짜깁기를 한다면 민주사회에서 수용할 수 있는 정파성의 범위를 넘는다.

그러면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수사정보는 사실인가. 그리고 그 피의사실 보도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가. 형사절차에서 사실은 (그것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법원의 판결에서 확정된다. 그 이전에, 특히 공소를 제기하기도 전에 검찰에서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피의사실은 검찰 스스로 아직 공소장에 공소사실로 확정하지도 않은 일방의 주장에 불과하다. 논쟁적 사건에서 검찰 일방의 주장은 부분적 사실에 해당하는 정보이고, 그 자체로 짜깁기된 정보다. 이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으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없다. 이후에 유죄판결이 나오더라도 그 정보가 모두 사실인 것은 아니다. 검찰이 정보를 흘리는 사건들에서 기소한 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이 흘린 피의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 공판에서 다투어 확정되기 전에 이미 여론재판에서 범죄사실이 된다. 특히 피의자에게 불리한 보강증거 없는 전문(傳文)진술이 가장 심각하다. 재판에서는 증거로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여론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되면 수사기관의 유죄 확증편향이 강화되고 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은 사라진다. 이로써 공정한 수사와 재판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헌법상 원칙까지 무너질 위험이 있다. 당연히 피의자의 (명예, 사생활 등) 권리도 침해된다. 최소한 검찰의 입장이 명확하게 밝혀지는 공소제기 전 피의사실 공표를 형법이 범죄로 규정한 중요한 이유다.

다시 돌아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피의사실 공표가 필요하다면 그 기준이 필요하다. 피의사실 공표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자의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권리, 사생활의 자유, 명예권 등과 수사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형법이 금지하고 있는 행위이다. 따라서 피의사실 공표의 허용요건도 형식적으로 (법무부나 경찰청) 훈령이 아니라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 내용적으로도 최소한 수사를 통해 확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의자의 반론권이다. 반론권은 언론을 통한 피의사실 공표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성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이석배 단국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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