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 진퇴양난... 요금 할인 확대도, 추경도 역풍 우려

입력
2023.02.06 17: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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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지원" 대통령 지시에 당정 논의
수조 원 재원 마련 방안 두고 고심

1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한 주민이 연탄보일러로 추위를 녹이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한 주민이 연탄보일러로 추위를 녹이고 있다. 연합뉴스

‘난방비 폭탄’ 우려에 중산층 지원 검토에 나선 정부가 재원 마련 딜레마에 빠졌다.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자니 재정건전성 기조와 정면충돌하고, 난방비 할인 폭을 확대하자니 공기업 정상화 정책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6일 정부에 따르면, 당·정은 중산층 난방비 보조 여부와 이를 실행하기 위한 세부안을 논의 중이다. “중산층과 서민의 난방비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는 윤석열 대통령 지시(지난달 30일)에 따라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은 이미 예비비(1,000억 원) 등 총 1,8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한 바 있다.

중산층 지원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를 뒷받침할 재원 마련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가스공사의 난방비 요금 할인을 확대하거나, 예비비로 충당하는 방안 등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스공사의 요금 할인 확대는 정부 재정을 직접 투입하지 않는 방법으로 꼽힌다. 하지만 지난해 약 9조 원에 달하는 가스공사의 누적 미수금이 걸림돌이다. 가스 요금 인상을 억제한 이전 정부 정책에 따라 구매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하면서 발생했다. 윤석열 정부가 단계적 요금 현실화로 2026년까지 이를 해소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난방비 지원 추가 재원을 가스공사 몫으로 떠넘길 경우 공기업 정상화 추진동력이 꺾일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야당 주장처럼 ‘난방비 추경’을 편성하기도 어렵다. 정부 스스로 경제정책 방향을 뒤엎는 게 되기 때문이다. 중산층 범위를 확정하지 않았으나, 통계청 기준(중위소득 50~150%)을 전체 인구에 대입하면 약 3,100만 명이 해당한다. 야당과 여당 일부에서 제안한 지원안 중 제일 낮은 금액(10만 원)을 보조한다고 해도 3조 원을 웃도는 재원이 필요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확대 폭을 키운 마당에 수조 원의 추경은 물가 상승 압력을 더욱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재정건전성을 내건 윤석열 정부에서 추경 편성으로 1,000조 원을 돌파한 나랏빚이 더 늘어나는 것도 부담이다.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가용할 수 있는 올해 정부 예비비 4조6,000억 원의 상당 부분을 난방비 지원에 곧장 쓰는 것 역시 경기 상황과 맞물려 쉽지 않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은 물가를 자극하고 추가적 금리 상승 압력에 불을 지펴 그간의 경제정책을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며 “추경은 최후 보루로 남겨 두고 예산 구조조정 등으로 재원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막대한 미수금을 떠안은 가스공사에 또다시 부담을 지우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예비비 일부와 다른 예산 전용으로 재원 마련이 어렵다면, 올해는 어려울지 몰라도 정부 임기 내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으로 추경 편성을 위한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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