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조차 봉쇄하는 서울시, 법 집행 앞서 대화로 풀라

입력
2023.02.07 04:30
27면

유가족 아픔 헤아려 추모공간 마련 대화로 해결을

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분향소 철거를 통보한 시청을 항의 방문하려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경찰의 제지를 받고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분향소 철거를 통보한 시청을 항의 방문하려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경찰의 제지를 받고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서울시가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오는 8일 낮 1시까지 자진 철거하라는 2차 계고서를 어제 시민단체와 유가족 측에 전달했다. 당초 이날 오후 1시로 통보했던 자진 철거 시한을 이틀 연장하면서 기한 내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유가족들은 계고서를 찢으며 격하게 반발했다. 대형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서울시가 희생자의 넋을 달래고 추모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려는 유가족을 돕기는커녕 법을 내세워 가로막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계고 직후 오신환 정무부시장 명의의 입장을 내고 "사전 통보조차 없이 불법·무단·기습적으로 설치된 시설물에 대해서는 사후 허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시의 대응 원칙"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의 '법대로'는 그간의 이태원 참사 대응에 비춰 정치적 성격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공정성을 얻기 쉽지 않다.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설치한 자리는 참사 직후 정부가 합동분향소를 차렸던 곳이다. 그런데 서울시가 추모공간으로 제안한 장소는 녹사평역 지하 4층이다. 시는 이태원과 가깝고 기상 상황과 무관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책임 회피에 급급한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추모공간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두려는 것이란 의구심이 생기기 충분하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 없이 100일을 속절없이 흘려보낸 걸 지켜봐야 했던 유가족들로선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서울시와 유가족들은 이날 분향소에 전기난로를 들여놓는 문제로 대치하기까지 했다. 참사 당시 이태원 일대에 투입된 경찰은 137명에 그쳤는데, 이날 분향소 주변에는 그 세배가 넘는 420여 명이 배치됐다.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 시스템 미비로 소중한 가족을 황망하게 떠나보낸 이웃들에게 차마 못할 일이다. 서울시는 갈등을 키우지 말고 진심 어린 자세로 대화에 나서 적절한 추모 장소와 방식을 정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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