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잔해 헤쳤다"… 수색·구조 사투 속 지진 사망자 5200명 넘어

입력
2023.02.07 21:00
수정
2023.02.08 00:3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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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발생 하루 만에 사망자 최소 5,261명 확인
84년 만 가공할 위력·얕은 진원이 피해 키웠다
"악천후에 헬리콥터 못 떠" 생존자 구조 지연

6일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하타이에서 한 경찰관이 동료들과 함께 건물 잔해에서 구조한 딸을 안고 있다. 하타이=AFP 연합뉴스

6일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하타이에서 한 경찰관이 동료들과 함께 건물 잔해에서 구조한 딸을 안고 있다. 하타이=AFP 연합뉴스

"이번 지진은 1939년 이후 튀르키예(터키)에서 기록된 지진 중 가장 강력했다."(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상황 보고서)

"마치 아마겟돈(인류가 멸망하는 최후의 전쟁) 같았다. 거리마다 최소 한 채의 건물이 완파돼 있었다."(미국 CNN방송)

6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접경 지대를 강타한 규모 7.8 강진의 가공할 만한 파괴력이 구체적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하루가 지난 7일, 사망자는 5,000명을 넘어섰다. 최대 2만 명까지 희생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세계보건기구(WHO) 관측도 나왔다. 붕괴된 건물은 튀르키예에서만 최소 5,775채다. 고층 아파트가 찌그러진 종이상자처럼 포개진 채 무너져 내린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되며 참상을 고스란히 전해 주고 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최초 지진과 맞먹는 강진을 포함한 규모 4.0 이상 여진은 100회 이상 이어졌다. 악천후까지 겹치면서 구조작업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구조대를 기다리던 일부 주민은 무너진 건물에 매몰된 가족을 구하고자 맨손으로 잔해물을 파헤치는 중이다.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도 벌여야 한다.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다음 날인 7일 튀르키예 하타이의 붕괴된 건물 잔해 더미에 자동차들이 깔려 있다. 하타이=로이터 연합뉴스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다음 날인 7일 튀르키예 하타이의 붕괴된 건물 잔해 더미에 자동차들이 깔려 있다. 하타이=로이터 연합뉴스


역대급 규모·얕은 진원에… 벌써 사상자 3만 명 육박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7일 오전 기준 3,549명이 숨지고, 2만534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시리아에서는 최소 1,712명이 숨지고, 3,649명 이상이 다쳤다고 시리아 정부와 반군 측이 집계했다. 실종자는 집계조차 불가능하다.

이번 지진은 84년 전 튀르키예 북동부 에르진잔주(州)에서 발생한 이 나라 역사상 최고 강도 지진에 비견되고 있다. 당시 약 3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각에서 "희생자 수가 2만 명에 달할 수 있다"는 암울한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캐서린 스몰우드 WHO 유럽 담당 선임 비상대책관은 "지진의 경우 사망자가 초기 집계된 수(이번엔 2,600여 명)의 8배까지 늘어나는 것을 자주 본다"며 "사상자 수는 다음 주에 상당히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튀르키예에서 6일 발생한 최초 지진과 여진 발생 위치. 그래픽뉴스부

튀르키예에서 6일 발생한 최초 지진과 여진 발생 위치. 그래픽뉴스부

지진 규모뿐 아니라 얕은 진원도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이다. 지진 발생 지점이 지표면과 가까울수록 더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지진파가 지표면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짧아 손실되는 에너지가 적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지진으로 완파된 건물이 허다하다. 특히 오랜 내전을 겪은 시리아 북부에선 건물 붕괴가 속출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라 건물 구조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였던 탓이다. 영국 가디언은 "이전에도 안전 관리감독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지어진 새 건물이 종종 무너지곤 했다"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로서리 영국 개방대 지구과학과 교수는 "지표면 인근에서의 지진은 더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같은 규모의 지진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피해를 가할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초기 지진이 대부분 주민들이 깊이 잠든 새벽 4시 17분쯤 일어난 것도 인명 피해를 키웠다.


6일 강진으로 무너진 튀르키예 하타이의 건물 잔해에서 구조대원들이 실종자를 찾고 있다. 하타이=EPA 연합뉴스

6일 강진으로 무너진 튀르키예 하타이의 건물 잔해에서 구조대원들이 실종자를 찾고 있다. 하타이=EPA 연합뉴스


악천후, 100여회 여진… "구조작업 난항"

게다가 강력한 여진이 잇따르며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최초 지진 이후 약 30시간 동안 규모 4.0 이상 여진만 109차례 발생했다. 규모 6 이상도 4차례나 된다. 수전 허프 USGS 지진학자는 "때로는 여진이 최초 지진보다 훨씬 더 강력할 때도 있다"며 "이러한 경우에는 여진이 본진으로 간주되며 본진은 일종의 전조로 여겨진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미 CNN방송은 규모 5.0~6.0 정도의 여진이 계속될 가능성도 여전하다고 보도했다. CNN은 "훼손된 구조물에 여진에 따른 추가 피해 발생 위험이 있다"며 "구조팀과 생존자에게 지속적 위협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폭설과 영하의 날씨도 피해자 수색과 구조작업을 지연시키고 있다. 파레틴 코카 튀르키예 보건부 장관은 "구조대가 지진 피해 지역에 접근하기 어렵다"며 "6일에는 헬리콥터가 뜰 수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 현장에서는 6일 기준 최소 2,256명의 응급 의료 인력과 구급차 602대 등이 구조작업에 나섰지만 역부족인 상태다.

진원과 가까운 아디야만 마을에 사는 알리 울루씨는 "어머니가 무너진 집에 24시간 넘게 갇혀 있지만 구조대가 오지 않아 직접 잔해 속의 어머니를 구하고 있다"며 "또 다른 친척 중 한 명도 4시간 매몰됐다가 우리가 직접 파헤쳐 구해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영국 BBC방송은 "구조대원들이 물과 산소 부족, 저체온증 등 곤경에 처한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한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7일 지진으로 붕괴한 튀르키예 하타이의 건물 잔해 앞에서 생존자 두 명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하타이=로이터 연합뉴스

7일 지진으로 붕괴한 튀르키예 하타이의 건물 잔해 앞에서 생존자 두 명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하타이=로이터 연합뉴스


튀르키예, 애도기간 선포… "국제사회 연대로 극복해야"

튀르키예 정부는 일주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13일까지 휴교령을 내렸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도 긴급대책 회의를 열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다. 유니셰프는 "시리아의 아동들은 인도주의적으로 가장 복합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오랜 내전과 경제 위기 등으로 인구의 3분의 2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코카 장관은 "우리는 현장의 환자와 의료진을 구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이러한 재난은 연대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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