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아직 살아 있어?" 푸틴이 짓밟은 우크라이나 아이들

"엄마, 나 아직 살아 있어?" 푸틴이 짓밟은 우크라이나 아이들

입력
2023.02.24 04:30
17면
구독

[전쟁 1년, 우크라이나를 다시 가다] <4신>
전쟁으로 487명 사망... 살아남아도 '고통'


"엄마, 저 아직 살아 있어요?"(나디카·3세)

"나는 내 침대가 있었는데요, 이제 거기선 다른 사람이 자고 있어서 못 간대요."(다니엘·4세)

"엄마, 우리의 옛날 사진을 봐요. 이땐 행복해 보여요."(키라·6세)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만난 11세 어린이 나짜르.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후 엄마 류드믈라와 함께 루한스크주에서 키이우로 이사를 온 소년이다. 류드믈라는 "전쟁 초 아이가 우울증을 앓았다가 심리 치료 후 다시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키이우=신은별 특파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만난 11세 어린이 나짜르.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후 엄마 류드믈라와 함께 루한스크주에서 키이우로 이사를 온 소년이다. 류드믈라는 "전쟁 초 아이가 우울증을 앓았다가 심리 치료 후 다시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키이우=신은별 특파원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도심의 한 건물. 1년 전 러시아의 침공 이후, 고통의 시간을 보낸 아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 보는 자리가 아동인권단체 '보이스 오브 칠드런' 주관으로 마련됐다. 전쟁을 몸소 겪은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책도 이날 공개됐다.

순백의 마음을 간직한 탓일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미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에게 전쟁이란 그저 '이해는 되지 않지만, 어쨌든 무서운 것'이었다.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길 꿈꿀 뿐이었다.

간절한 소망의 표현엔 천진난만함이 가득했다. 바르베라(6)는 "구글은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만약 모든 우크라이나 사람이 숨어 버리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찾아서 다른 곳으로 떠날 테니, 전쟁도 끝나지 않겠냐"고 상상해 보는 아이도 있었다. 불안감이 '어린이답게' 표출된 셈이다.

약 750만 명의 우크라이나 아동은 지금도 이렇게 '불안과 공포' 속에 살고 있다. 아니면 이미 하늘나라로 떠났거나.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러시아가 공격한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다. 하르키우=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러시아가 공격한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다. 하르키우=AP 연합뉴스


죽고, 다치고, 가족 잃고, 러시아로 납치되는 아이들

전쟁은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짓밟았다. 평온했던 삶은 이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①죽거나 다친 것으로 확인된 아동만 1,500명에 육박한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해 2월 24일부터 이달 21일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때문에 사망한 어린이는 487명이다. 부상한 아이도 954명에 달한다. 러시아가 지난달 우크라이나 동부 드니프로의 아파트로 미사일을 쐈을 때도, 상당수 아동이 목숨을 잃었다. 아파트 주변엔 숨진 아이들을 추모하는 분홍색 인형이 놓였다. 부모·친구 등의 사망을 직접 목격해야 했던 사례도 고려하면, '죽음'이라는 걸 겪은 어린이는 무수히 늘어날 것이다.

②가족과 생이별한 아이들도 셀 수 없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유럽 국가로 탈출한 인구는 8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수많은 남성들이 징집 대상이라 엄마와 아이만 출국이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일보가 16일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행 버스를 탔을 때도 민간 차량에 탑승한 이들은 여성과 아이뿐이었다. 우크라이나 내에 머무는 난민들도 이산가족이 된 건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 난민촌에서 만난 샤샤는 "아빠는 군인이라 도네츠크에 남았다"고 했다.

③러시아에 납치된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최근 발표된 예일대 연구진의 보고서를 보면, 러시아 내 우크라이나 어린이 수용소는 최소 43곳이다. 생후 4개월부터 17세까지, 최소 6,000명의 아이가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이곳에 머무르다 러시아 가정에 입양되거나 위탁 시설로 옮겨진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남은 가족이 있는데도 러시아가 데려간 경우도 적지 않다. 연구에 참여한 너새니얼 레이몬드는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러시아 수용소에서 '정치적 재교육'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친러시아 사상'을 주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④전쟁의 공포는 어린 영혼을 잠식한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귀를 찢는 공습 경보음에 시달리는 중이다. '보이스 오브 칠드런'에 따르면, 다닐료(6)는 엄마에게 "신도 '공습 경보'를 들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러시아의 잇단 공습으로 지하 대피소 생활도 길어지고 있다. 아동인권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약 900시간(약 38일)을 지하 벙커 등에서 보냈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촬영된 지하 벙커 모습. 한 여성이 아이를 안고 있다. 마리우폴=AP 연합뉴스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촬영된 지하 벙커 모습. 한 여성이 아이를 안고 있다. 마리우폴=AP 연합뉴스

⑤전쟁 트라우마는 아이들 성격과 태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11세 아들 나짜르와 함께 루한스크주에서 키이우로 이사한 류드믈라는 "참 활발했던 아이였는데 전쟁이 시작된 뒤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며 "한동안 심리 치료를 받은 끝에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⑥미래도 저당 잡혔다. 당장 교육 기회가 박탈됐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에서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은 학교는 일일 평균 4곳에 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9월부터 격전지의 학교는 아예 문을 닫았다. 아직 운영 중인 학교에서도 정전 때문에 수업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키이우= 신은별 특파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