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불태우고 하얗게 바스러진 연탄재, 당신 발 아래 깔려 있을 수 있다

온몸 불태우고 하얗게 바스러진 연탄재, 당신 발 아래 깔려 있을 수 있다

입력
2023.03.15 04:30
수정
2023.03.15 09:3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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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쓰레記]
'처치곤란' 불연성 폐기물 연탄재
과거에는 공유수면 매립 등에 활용
하수처리에도 활용됐으나 점차 쓰임새↓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달 14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한 주민이 연탄재를 버리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4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한 주민이 연탄재를 버리고 있다. 뉴스1

이제는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겨울 골목 곳곳에는 하얗게 변한 연탄재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구들장을 따뜻하게 데우는 소임을 다한 고마운 부산물들이었죠. 1980년대 이후 연탄 대신 석유나 가스 연료가 차츰 보편화되었고, 길거리 연탄재도 하나둘씩 사라졌습니다. 가정용 연탄의 '전성기'였던 1986년 2,400만 톤을 넘었던 연간 연탄 소비량은 2021년 45만 톤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함부로 차버릴 연탄재 더미도 이제는 찾기 어려워졌단 뜻이죠.

그럼에도 여전히 연탄불에 의존해야 겨울을 날 수 있는 이웃이 많습니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연탄사용가구는 8만여 가구로, 전체 가구의 0.39% 수준입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선 가정마다 하루에 최소 연탄 5장, 넉넉하게는 6~8장이 필요합니다. 한 달이면 집집마다 150~240장의 연탄 폐기물이 배출되는데, 다 타버린 연탄 무게가 장당 약 1.5㎏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한 집에서만 한 달에 최소 225㎏의 연탄재가 쏟아져 나오는 셈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한겨울 생명줄 같은 온기를 제 한 몸 불살라 전하는 연탄이지만, 타고 남은 연탄재는 처치 곤란한 쓰레기 중 하나입니다. 골목에 놓여 있던 연탄재 더미는 마지막을 어디서 맞이하고 있을까요.

'처치 곤란' 타지 않는 쓰레기... 서울 잠실동 땅 아래엔 연탄재

연탄재. 게티이미지뱅크

연탄재. 게티이미지뱅크

연탄은 석탄의 한 종류인 무연탄 가루에 점토(황토)를 섞어서 만드는데, 이 때문에 타고 나면 노란빛이 도는 회색 가루가 뭉친 형태가 됩니다.

보통 불에 태워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 다른 쓰레기와 달리 연탄은 '불연성(타지 않는) 쓰레기'입니다. 이미 불에 타고 남은 찌꺼기이니 더 태워 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과거 골목에 연탄재를 잔뜩 쌓아 뒀던 이유는 일반쓰레기와 구분해 처리해야 했기 때문인데, 보통 지자체에서 고용한 사람이 동네마다 돌며 연탄재를 따로 수거해 갔습니다. 연탄 사용이 줄어든 이후에도 연탄재를 투명 봉투에 넣어 집 앞에 내놓으면 지자체가 무료로 수거해 갔죠.

불연성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땅에 묻는 겁니다. 그런데 1970~1980년대만 해도 겨울철마다 쏟아지는 연탄재 양이 어마어마했습니다. 특히 대도시는 연탄재 처리에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죠. 대부분 시 외곽에 있던 쓰레기처리장이나 빈 터에 연탄재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묻을 수 없게 되면 그 지역을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송파구 잠실 지역입니다. 1970년대, 서울시는 원래는 섬이었던 잠실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잠실섬 남쪽으로 흐르던 송파강을 메우는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강을 메우기엔 준비한 흙이 충분치 않았고, 심지어 "몽촌토성을 허물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흙을 파낼 곳이 마땅찮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게 연탄재였습니다. 개발업체들은 약 2년간 시민들이 내다 버린 연탄재를 모아 강을 채웠고, 윗부분만 흙으로 살짝 덮는 방식으로 잠실의 육지화 공사를 완료했습니다. 현재 잠실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수많은 아파트와 쇼핑센터 아래엔 연탄재가 거대한 지층을 이루고 있을 겁니다.

'쓰임'을 찾았던 연탄재... 다시 천덕꾸러기 신세

수도권매립지 연탄재 반입량 추이(단위: 톤)
(자료: 수도권매립지공사)

연탄 사용량이 줄어들면서 재활용 방안이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게 쓰레기 매립장의 '복토재'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쓰레기 매립 후 발생할 수 있는 비산먼지와 악취, 빗물침투 등을 방지하기 위해 매립된 쓰레기 위를 덮는 겁니다. 또 도로나 공원 부지를 건설할 때 밑바닥에 까는 '기층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다만 폐기물관리법상 연탄재만 단독으로 사용해선 안 되고, 일반토사나 건설폐재류를 재활용한 토사류를 50% 이상 혼합해야 합니다.

색다른 활용법도 있습니다. 연탄재를 '하수 슬러지 고화제'로 활용하는 겁니다. 고화제는 보통 물기가 많아 연약한 지반에 섞어 강도를 높이는 성분을 뜻하는데, 인천에 있는 수도권매립지에서는 연탄재를 하수 슬러지 처리 과정의 고화제로 효과적으로 이용해 왔습니다. 매립지에 반입된 하수 슬러지의 함수율(수분이 포함된 비율)을 매립이 가능한 수준까지 낮추기 위해 연탄재를 사용한 거죠.

그런데 수도권매립지공사가 2020년 하수 슬러지 직접 건조 시설을 설치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고화 처리시설은 폐쇄됐습니다. 연탄재의 쓰임이 사라진 겁니다. 이제 수도권 발생 연탄재는 다시 묻는 것 외엔 처리할 방법이 없어졌습니다. 이에 수도권매립지에서는 2020년 7월 1일부터 서울, 인천, 경기 각 자치단체에 연탄재 반입 수수료를 '톤당 7만56원'씩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한 장당 90~100원, 모이면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

다행히 가정용 연탄재 매립 비용은 배출자에게 전가되지 않고 각 지자체가 자체 부담 중입니다. 연탄 사용 가구가 가파르게 줄고 있는 데다, 주 사용자인 저소득층에 부담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죠. 다만 영업용 등으로 대량배출하는 경우는 종량제봉투를 활용한 유상배출이 원칙이라는 점, 잊지 마세요.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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