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성 암’이 전체 암의 5~10%…유전자 변이 검사 필요”

입력
2023.03.13 17:23
21면
구독

[전문의에게서 듣는다] 이수현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

이수현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유전자 변이 진단법의 발전으로 전체 암의 10~15%에 달하는 '유전성 암' 진단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이수현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유전자 변이 진단법의 발전으로 전체 암의 10~15%에 달하는 '유전성 암' 진단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한국인들이 가장 걱정하는 질병은 암이다. 한국인 사망 원인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은 유전적 원인으로 인해 유전자 복구 능력이 떨어져 쉽게 암에 노출될 수 있다. 이렇게 발생한 암을 ‘유전성 암’이라고 한다. 전체 암 환자의 5~10%로 추정된다.

이수현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변이 유전자를 가진 암 환자라면 암 예방ㆍ치료가 일반 암 환자와 다르게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유전성 암이란 무엇인가.

“암이란 어떤 원인에 의해 세포 내에서 발생한 유전자 변이가 축적돼 무한으로 증식하는 상태를 뜻한다. 유전자는 손상돼도 스스로 복구하는 능력이 있지만 복구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정상 세포가 암 위험에 계속 노출돼 손상된 유전자가 복구되지 못하다가 유전자 변이가 축적돼 암이 된다. 이를 ‘유전성 암'이라고 한다.

유전성 암은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고 젊은 나이에도 나타날 수 있다. 보통 대장 내 용종이 암으로 악화하는 데 10~15년 걸린다. 그런데 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2~3년만 지나도 악성 종양으로 바뀔 수 있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암이 나타나나.

“그렇지 않다. MLH1ㆍMSH2ㆍMSH6ㆍPNS2 등 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특정 암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해당 유전자 변이와 관련된 여러 종류의 암이 발생하는 양상으로 나타날 확률이 높다. 가령 30대에 MSH2라는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70세가 됐을 때 방광암이나 콩팥암이 발생할 위험이 40% 이상 올라간다.

또 종양 억제 유전자인 APC의 특정 위치에 생식세포 변이가 있다면 용종이 100개 이상 발생하는 가족성용종증후군이 생기는데 이럴 때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90%나 된다. 미국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에게서 발견된 BRCA1 유전자에 특정 변이가 생기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65%, 난소암 위험은 75%에 달한다. 이럴 때에는 유전자 검사로 유전자 변이 여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부모가 암에 걸리면 자녀도 같은 암이 생기나.

“부모에게서 암 발병 소인을 물려받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더라도 특정 유전자가 손상돼 암에 걸리기도 한다. 특히 가족은 생활 습관을 공유하므로 유전자 이상이 아니라도 같은 암에 걸릴 수 있다. 흡연하는 아버지와 간접 흡연하는 가족이 폐암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가족 중에 암에 걸리면 예방적으로 검사해야 하나.

“꼭 그런 건 아니다. 암을 진단받은 직계 가족(부모, 자녀, 형제)이 50세 이하에서 암 진단을 받았다면 유전자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할아버지가 80세 나이로 암 진단을 받았다면 유전성 암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

또한 NGS 유전자 검사 결과는 임상적 상황과 연동해 해석해야 의미가 있다. 건강한 사람의 평균 건강 정보와 비교하며 가족력과 유전자 검사를 종합해 파악해야 하기에 유전자 자체만으로 진단하진 않는다.”

-유전자 검사는 어떻게 진행되나.

“우리 몸에서 DNA를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조직에서도 가능하지만, 혈액검사를 시행하면 검사 민감도와 정확성이 가장 높다. 예전에는 혈액검사로 특정 유전자 1개의 돌연변이를 검사했지만, 기술 발달로 요즘에는 ‘차세대 염기 서열 분석(NGSㆍNext Generation Sequencing)’ 유전자 패널 검사로 유전성 암 발생에 관여한다고 알려진 수십 개의 유전자를 한 번에 검사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NGS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하나.

“우선 평균 암 발병 연령보다 젊은 나이에 암 진단을 받았다면 주의해야 한다. 유방암이 40세 이하, 대장암이 50세 이하에 발생했다면 유전성 암을 의심해야 한다. 둘째, 한 사람에게서 시차를 두고 암이 여러 번 생길 때다. 셋째, 가족 중에 같은 종류 암 환자가 많거나 내시경검사에서 다발성 용종증(린치 증후군, 가족성 용종증)이 발견됐거나 직계 가족이나 형제자매에게서 유전성 암이 확인됐다면 ‘유전성 암 클리닉’을 찾아 상담할 필요가 있다. 변이 유전자가 나오면 자녀에게도 유전자 변이가 있을 확률이 50%여서 직계 가족은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 특히 가족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암 진단받은 환자보다 10년 이상 빨리 유전자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유전자 이상이 있다면.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지만 유전자 변이가 자손에게 유전될 확률이 50%라는 점에서 죄책감 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내 잘못으로 발생한 게 아니다. 내게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면 자녀가 20세가 넘어 자기 결정권이 생길 때 알리고 검사를 하는 게 좋다. 이것은 의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철학ㆍ문화까지 결합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이상이 있는 환자가 아이를 낳으면 유전되나.

“확률은 50%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APC 유전자 이상에 의한 가족성 용종 증후군은 국가가 인정한 희소 난치성 질환에 포함돼 있으므로 결혼 후 난자와 정자로 수정란을 만들어 72시간 이내 수정란에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다. 수정란에서 추출한 DNA에서 부모와 같은 APC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수정란을 엄마의 자궁에 착상해 출산할 수 있다.

그러나 유전성이 명확히 알려진 BRCA1ㆍ2 관련 유방암, 난소암, 소화기암에서 발견되는 린치 증후군 등 다른 유전자 이상이 있을 때 수정란 검사는 아직 불법이다. 유전자 연구가 발전하고 지식을 확장하고 있는 것에 비해 법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BRCA1ㆍ2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젊은 엄마는 수정란 검사를 위해 외국으로 나가 수정란 검사를 하고 원정 출산을 해야 할 판이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여전히 임신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사례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유전자 변이가 있다면 어떻게 치료하나.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일반 암 환자와 다른 방식으로 치료ㆍ예방이 이뤄진다. 검사 결과 보인자로 확인되면 유전성 암클리닉에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모니터링을 한다. 가령 APC 변이가 확인되면 매년 위·대장 내시경검사흘 통해 장내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

MLH1ㆍMSH2 유전자 변이가 있는 린치 증후군 환자는 대장암 외에도 비뇨기암ㆍ소화기암 검사가 필요하고, 여성이라면 자궁내막암이나 난소암 위험이 높으므로 산부인과 검진이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출산 계획이 없다면 예방적 자궁 난소 절제술을 권하고 있다. 특히 유전성 암은 변이 유전자에 따라 암의 진행 속도와 유형이 다르기에 유전성 암 전문의의 판단 아래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