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화로 시작된 근대 세계자본주의

입력
2023.03.1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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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면화의 제국

1910년대 미국 조지아주 목화농장의 흑인 노동자들. New York Public Library

1910년대 미국 조지아주 목화농장의 흑인 노동자들. New York Public Library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자 스벤 베커트(Sven Beckert)는 2014년 저서 ‘면화의 제국’에서 근대 자본주의가 영국 맨체스터의 공장에서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시작된 게 아니라, 미국 남부 들판에서 임금 노동이 아닌 노예 노동으로 시작됐으며 면화가 그 매개물이었다고 주장했다.

면직물의 첫 흔적은 B.C 3000년 인더스 문명 유적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이후 인류는 수천 년간 그 작은 교목이 맺은 섬유 뭉치에서 씨앗을 제거하고 솜으로 실을 잣고(방적) 직물을 짜고(방직) 색을 입혀 옷을 지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고 유럽인들이 값비싼 모직을 대체할 수 있는 면화(면직물)의 가능성에 눈을 뜬 뒤로도 면화 산업은 인도나 페루 등지를 중심으로 한 수공업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유럽은 면직물의 중계무역에 만족해야 했다. 담배나 사탕수수 등 플랜테이션 대량생산 작물과 달리 면화는 수확-방적-직조 등 단계마다 손이 많이 가고 긴 시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1794년 3월 14일, 미국인 일라이 휘트니(Eli Whitney, 1765~1825)가 면화에서 씨앗을 제거하는 기계, 즉 조면기를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다. 생산성이 단숨에 50배나 늘어났고, 거기 맞춰 더 많은 면화 수확 노동력이 필요해졌다. 1790년 70만 명이던 노예는 1850년 320만 명으로 늘어났고, 미국 남부는 세계 최고-최대 농업 강국으로 부상했는데, 그 격차가 남북전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조면기를 가장 반긴 게, 18세기 아크라이트의 방적기를 시작으로 방적 산업화를 앞서 이룬 영국이었다. 영국의 ‘남부’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남미였다. ‘국제 분업’이라고 미화되는 근대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의 중심에 영국의 면방직산업이 있었고, 당연히 대영제국의 군사력이 그 시스템을 지탱했다. 베커트는 산업자본주의의 뿌리를 ‘전쟁자본주의’라 명명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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