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 종사자 31명 폐암 확진…"누가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겠나"

입력
2023.03.14 18:08
수정
2023.03.14 22:1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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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충북 제외한 14개 교육청 집계
산재 신청한 사례 더하면 최소 90명
교육부 "시설 개선 예산 올해 1800억"
노조 "인력 부족으로 열악...채용 늘려야"

폐암 확진 판정을 받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소속 학교급식 노동자들이 14일 서울 용산구 학교비정규직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급식 종사자 폐암 검진 결과 기자회견 중 급식 현장 노동환경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폐암 확진 판정을 받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소속 학교급식 노동자들이 14일 서울 용산구 학교비정규직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급식 종사자 폐암 검진 결과 기자회견 중 급식 현장 노동환경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959년생인 A씨는 42세였던 2001년부터 학교에서 조리원으로 근무했다. 대학과 중학교 급식실을 거친 뒤 한 고등학교에서 약 12년을 일했다. 8명의 조리원이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었다. 튀김, 전 등 기름을 이용해 튀기거나 부치는 음식도 식단에서 빠지지 않았다. A씨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나 2019년 폐암으로 진단됐다.

학교 급식노동자 A씨의 사례

지난해 14개 교육청이 실시한 학교급식 종사자 검진에서 A씨처럼 폐암으로 확진된 인원은 무려 31명이었다. 정부는 올해 약 1,800억 원의 예산을 마련해 급식실 환경 개선에 나설 계획이지만 노조는 적은 인력이 많은 급식을 조리하는 게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인력 충원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서울·경기·충북을 제외한 14개 교육청의 급식 종사자 건강검진 결과, 2만4,065명 중 139명이 '폐암 의심' '폐암 매우 의심'이었고 추가 검사에서 31명(0.13%)이 확진됐다고 14일 밝혔다.

31명 외에도 14개 교육청에서 지난 5년간 폐암으로 산업재해 신청을 한 급식 종사자는 29명이나 된다. 교육부가 이 60명을 기준으로 계산한 최근 5년 급식 종사자의 폐암 유병률은 10만 명당 135.1명이다. 국가 암 등록 통계상 45~64세 여성의 폐암 유병률(122.3명)보다 10.5% 높다.

서울·경기·충북교육청은 오는 5월까지 검진을 완료할 계획이라 폐암 환자는 더 늘어날 예정이다. 근로복지공단의 지난달 6일 집계에서는 폐암으로 산재를 신청한 급식 종사자가 90명이었다. 이 중 65명은 산재가 인정됐고, 16명은 심사가 진행 중이다. 8명은 불승인, 1명은 반려됐다.

14일 서울 용산구 학교비정규직노조 대회의실에서 급식 종사자들이 폐암에 걸릴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에 대해 증언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서울 용산구 학교비정규직노조 대회의실에서 급식 종사자들이 폐암에 걸릴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에 대해 증언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급식 종사자 폐암 발병의 1차 원인으로는 튀김, 볶음, 구이 요리 시 나오는 '조리 흄(COF)'이 꼽힌다. 고온의 기름에서 발생하는 물질들이 연기와 함께 폐로 들어가 암을 일으키는 것이다. 환기설비가 미비한 데다 적은 인력이 많은 급식을 준비하면서 조리 흄에 자주 노출되는 노동환경이 사태를 키웠다.

이날 서울 용산구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폐암에 걸린 노동자 B씨는 "환풍기가 돌아가도 뿌연 수증기와 연기가 가득 찰 때가 많았다"며 "급식실 환경이 당장 바뀌지 않으면 누가 이 죽음의 현장에서 일을 하려고 들어오겠나"라고 말했다. 폐암에 걸린 C씨는 "신입이 들어와도 반 이상이 못 견디고 나간다. 빈자리를 퇴직자가 임시 인력으로 근무한다"고 했다.

교육부는 인력 충원보다 시설 개선에 방점을 찍은 대책을 내놨다. 조리실 환기설비 개선을 위해 올해 1,799억 원을 예산안에 반영했다. 또 오븐을 이용하도록 대체 식단과 조리법을 보급하고 급식에서 튀김류는 주 2회 이하로 최소화하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날 정례 브리핑에서 "학생 수가 감소하는데 인원을 늘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적정 인원이 확보되지 않으면 폐암 예방은 물론이고 안전한 급식도 담보할 수 없다"며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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