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인권 문제로 北 압박해야 통일 앞당길 수 있어"

입력
2023.03.22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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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통일미래기획위원장 인터뷰
"정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부터 정상화해야"
"북핵·경협·인권 묶는 '헬싱키 프로세스' 필요
'납북자 문제' 일본도 참여시켜 다자 틀 논의
"정치체제 일치 없이 통일하면 탈 날 가능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주애가 지난 19일 전술핵운용부대의 '핵반격가상종합전술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조선중앙TV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주애가 지난 19일 전술핵운용부대의 '핵반격가상종합전술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조선중앙TV 뉴시스


"탈북민 증언을 들어보면 유엔이 인권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북한 관료들이 굉장히 조심한다고 해요. 통일이 되거나 언젠가 상황이 바뀌면 쌓인 기록을 토대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김영호 통일미래기획위원장(성신여대 정치외교학 교수)은 17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통일과 미래와 인권.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북한을 어르고 달래도 시원찮은 판에 김정은 체제가 가장 민감해하는 인권 문제를 거론할수록 사이는 더 틀어지고 통일은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통일로 가는 미래전략의 큰 틀을 짜는 그가 북한 인권에 초점을 맞추는 건, 그래야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북한이지만 계속 아픈 구석을 찌르면 의식하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폐쇄된 북한에서 주민들의 인권 침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31일 '북한 인권 현황 연례 보고서'를 공개한다. 민간이 아닌 정부가 발간하는 첫 보고서다. 김 위원장이 이끄는 통일미래기획위원회는 정치·경제·인권분야 등 국내 전문가 35명으로 구성된 통일부 장관 자문기구다. 15일 출범하면서 첫 회의를 열었다.

"北 군부 강경파 목소리 줄고, 남북 대화파 주도권 쥘 것"

그는 "북핵문제와 남북 경제협력사업, 북한 인권을 엮어서 동시에 협의하는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가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냉전 시절 유럽에서 정치·군사 신뢰 구축과 경제 협력에 더해 동구권의 인권 개선을 패키지로 논의한 협의체를 의미한다. 김 위원장은 "우리가 북한 인권 문제를 함께 거론해 북한 주민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국의 관심과 참여가 없으면 험난할 수밖에 없다. 이에 김 위원장은 일본을 주목했다. 그는 "일본은 북한에 의한 자국민 납치 문제를 겪었기에 인권 문제에 관심이 클 것"이라고 했다. 그 일환으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22~25일 일본을 방문해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 납북자 문제를 포함한 대북 인권 사안에 대해 양국 공조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김영호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의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김영호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의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북한 인권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우리 내부의 노력은 그간 어떠했을까. 김 위원장은 "정부는 제 역할을 잃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부터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존소는 2016년 설립한 법무부 산하 기관으로, 북한에서 자행된 반인권 범죄 관련 기록을 남기고 통일 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범죄자를 기소해 처벌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정부 때 파견 검사들이 검찰로 돌아갔고 예산도 크게 깎이면서 사실상 제 역할을 못 했다.

문제는 북한이 요지부동이라는 점이다. 곳곳에서 주민들이 굶어 죽는데도 막대한 돈이 드는 핵·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북한이 도발 국면을 이어가며 체제 내구성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권력 내부에서 '지난해부터 미사일을 수십 발 쏴서 얻은 것이 뭐냐'는 목소리가 나올 때가 됐다"고 봤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군부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조만간 남북 대화파가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예측이다.

"신(新)통일미래구상은 현 국제 정세 반영한 '윤석열 독트린'"

통일미래기획위의 가장 큰 임무는 올해 안에 신(新)통일미래구상을 내놓는 일이다. 김 위원장은 이를 "국제 정세를 능동적으로 반영해 만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미중패권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등 일촉즉발의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으로 통일을 준비할 것인지, 개략적인 방향과 윤곽을 정할 참이다. 그는 “7·7선언과 북방외교로 대표되는 ‘노태우 독트린’처럼 신통일미래구상을 통해 ‘윤석열 독트린’이라고 부를 만한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30년 가까이 지나면서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으로 굳어진 '민족공동체통일방안'도 큰 폭으로 개편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내비쳤다. 현 통일방안은 남북 통일과정을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완성’의 3단계로 구상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정치체제가 같지 않은 상태에서 연합·통일하면 예멘의 사례처럼 '내전으로 가는 초대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의 핵심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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