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 없이 흥행 꿈꾸지 마라… 극장가 장악한 굿즈ㆍ특별 상영

입력
2023.03.22 04:30
수정
2023.03.22 09:59
22면
구독

예매 관객 대상으로 굿즈 제공·특별 상영회 개최
코로나19 이후 극장가 새 흥행 키워드로 부상
"관객 유인과 흥행 불씨 살리기... 관객 감소 자구책"

지난달 CGV에서 열린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응원 상영회에서 관객들이 응원봉을 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등장인물을 응원하고 있다. 에스엠지홀딩스 제공

지난달 CGV에서 열린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응원 상영회에서 관객들이 응원봉을 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등장인물을 응원하고 있다. 에스엠지홀딩스 제공

지난 8일 오전 9시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는 때 아니게 긴 줄이 형성됐다. 평일 오전에 보기 힘든 모습을 연출한 건 이날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었다. 수입사 미디어캐슬은 이날 관람 예매를 미리 한 관객들을 위해 선착순으로 굿즈를 제공했고, 이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전’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광경이었다.

요즘 극장가는 특전이 흥행의 키워드다. 특전으로 관객 유입을 노리고, 흥행 불씨를 살리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관객수가 줄어든 극장가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의 하나다.

마케팅 필수 요소가 된 특전

20일 관객 200만 명을 넘어선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은 다양한 굿즈로 관람을 유도하고 있다. 미디어캐슬 제공

20일 관객 200만 명을 넘어선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은 다양한 굿즈로 관람을 유도하고 있다. 미디어캐슬 제공

특전은 사은품 제공이나 특별 상영회 개최가 대표적이다. 영화 관람을 예매한 관객을 위해 굿즈나 특별 상영 관람 기회를 주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굿즈 제공이다. 영화 속 주요 물건에서 착안한 기념품이나 피규어, 주인공 화보, 포스터, 관련 책 등을 선착순 또는 추첨을 통해 관객에게 선물로 준다. 특별 상영회도 여러 형태가 있다. 지난 1월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예로 들 수 있다. 배급사 NEW와 극장은 강백호 송태섭 정대만 등 애니메이션 속 북산고 농구팀 선수별로 ‘응원 상영회’를 40회 넘게 열었다. 북산고나 산왕고(북산고와 맞붙는 팀)를 좋아하는 관객을 위해 응원 상영회를 별도로 하기도 했다. 관객이 좋아하는 캐릭터나 팀을 위해 응원봉을 들고 실제 경기장에서처럼 환호할 수 있도록 한 행사들이었다. 배급사와 극장은 응원봉을 무료로 나눠주고 관객들에게 특별한 관람 체험을 만들어주려고 했다.

영화사와 극장은 코로나19 이후 관객이 줄어들면서 일종의 고육지책으로 특전이라는 유인책이 필요했다. 굿즈를 주거나 특별상영회를 열어 팬덤을 자극하면 불황 속에서도 흥행을 이끌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정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은 영화 관람료 인상에도 굿즈를 모으거나 특별 상영회 체험을 위해 N차 관람을 마다하지 않는다. 굿즈 확보를 위해 예매는 하고 관람을 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화사와 극장 입장에선 개봉 즈음과 흥행 열기가 식어갈 무렵 열성 팬들을 규합하는 게 흥행의 관건이 됐다. 김민지 NEW 커뮤니케이션팀장은 “굿즈 제공 등을 통해 열성 팬들이 극장을 계속 찾도록 하고 입소문을 내려 한다”며 “코로나19 이후 관객 감소에 따른 일종의 자구책”이라고 밝혔다.

일본 애니 강세에 한몫

지난달 11일 서울 성동구 CGV 왕십리에서 열린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응원 상영회에서 국내 성우들이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NEW 제공

지난달 11일 서울 성동구 CGV 왕십리에서 열린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응원 상영회에서 국내 성우들이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NEW 제공

특전이 성공하기 위해선 다양한 굿즈 제공이나 특별 상영회 개최가 필요하다. 캐릭터들을 통해 여러 굿즈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유리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올해 극장 흥행을 주도하고 있는 건 이 점과 무관하지 않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특전에 힘입어 국내에서 소개된 일본 영화 역대 흥행 순위 1위(20일 기준 416만 명)에 올랐다. 8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20일 관객 200만 명을 넘어서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 흥행 기록을 추월할 기세다. 홍보마케팅 회사 영화인의 신유경 대표는 “특전은 요즘 영화 마케팅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됐다”며 “팬덤이 유난히 강하고 다양한 굿즈 활용이 가능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특전 효과를 극대화시킨다”고 말했다.

15일 개봉한 한국 영화 '소울메이트'의 N차 관람 굿즈인 귀걸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에서 착안해 만들었다. NEW 제공

15일 개봉한 한국 영화 '소울메이트'의 N차 관람 굿즈인 귀걸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에서 착안해 만들었다. NEW 제공

굿즈 제공이나 특별 상영회라는 특전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어왔다. 최근 특전은 오래전부터 정교하게 계획된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 김민지 팀장은 “개봉 전부터 1개월치에 대해 매주별로 각기 다른 특전을 기획한다”며 “한국 영화 ‘소울메이트’(상영 중)의 경우 장기 상영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5주치 굿즈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다만 특전은 마케팅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든다는 점에서 비판도 나온다. 관객몰이에 성공해도 실제 떨어지는 순익이 많지 않은 경우가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지나친 특전은 주객전도 현상이라 할 수 있다"며 "영화가 영화로서만 평가받고 관객을 모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