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은 살려줬지만... 헌재 "원칙 위반한 입법" 질타

입력
2023.03.24 04:0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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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부조리 지적, 개선 과제 던져
'위장 탈당' 등 국회법 위반 지적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선고일인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재판관들과 함께 법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선고일인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재판관들과 함께 법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헌법재판소가 23일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이 유효하다고 결론 내렸지만, 재판관들은 국회의 법안 처리 과정에서 헌법 위반과 국회법 위반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밀어붙인 국회 다수 세력의 부조리한 행태를 조목조목 따지면서 국회에 묵직한 과제를 던진 셈이다.

재판관 9명 중 5명은 지난해 4, 5월 개정 법안 입법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했다. 재판관들은 가장 논란이 컸던 법사위 소속 민주당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을 문제 삼았다.

헌재는 당시 법사위원장이 무소속 법사위 양향자 의원의 개정 법안 반대에 대응해 민주당 당론에 따라 신속하게 법안을 처리하려고 민 의원이 탈당한 경위를 알면서도 안건조정위원회 의결정족수 충족(6명 중 4명)을 위해 민 의원을 조정위원으로 선임했다고 봤다. 헌재는 민 의원이 관련 법안 대표 발의자였고, 당론에 따라 박홍근 원내대표가 발의한 개정 법안에 찬성자로 참여한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사위원장이 회의 주재자의 중립성에서 벗어나 미리 조정위 가결 조건을 만들었다고 본 것이다. 이는 제1교섭단체 위원과 나머지 정당 위원 수를 동일하게 구성하도록 한 국회법 위반이라는 게 헌재 판단이다. 국회 다수 세력의 일방적 입법 시도를 저지할 수 있도록 의결정족수를 규정한 국회법을 무력화했다는 것이다.

재판관들은 법사위원장이 조정위에서 질의와 토론을 모두 생략해 실질적 심사 없이 조정안을 의결했으며, 이후 9분 만에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토론 기회 보장 없이 조정안 내용 그대로 개정 법안 가결을 선포했다고 지적했다. 법사위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조정위 구성 요구가 있었다는 점에서 실질적 심사가 반드시 있었어야 했다고 본 것이다. 이는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해 국회 자율권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게 재판관들 판단이다. 국회가 법률 제정 과정에서 최상위법인 헌법을 위반했다는 뼈아픈 질타를 들은 셈이다.

‘검수완박’ 권한쟁의 사건 헌재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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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이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 지위에서 벗어나 본회의에서 법안을 강행 처리한 과정도 지적받았다. 재판관 4명은 법사위 단계에서 벌어진 절차적 하자를 해소하지 않고 법률안을 고스란히 본회의에 부의하고 상정한 행위는 그 자체로 헌법 위반이라고 봤다.

아울러 소수파가 표결에 앞서 마지막으로 항변할 기회인 무제한 토론이 최소 24시간 보장돼 있지만 임시회 회기 쪼개기 방식으로 무력화해 국회법을 어겼다고 봤다. 본회의 의결 절차에서 개정 검찰청법 수정안에 대한 토론 기회도 전혀 보장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 배제 내용이 담긴 형사소송법 수정안이 가결된 과정도 국회법 위반이란 지적이 나왔다. 원안에 없던 수정안이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도 없이 상정되고 토론 없이 가결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재판관 4명은 "법사위에서 이미 헌법을 중대하게 위반해 가결된 법률안을 본회의에 부의·상정하고도 하자를 수습하는 노력 없이 본회의에 위헌·위법 사유를 추가해 매우 중대한 헌법적 위반 사항"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절차상 위헌 사유가 없었다면 관련 법률이 시행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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