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와 싸우고 집 나간 얼룩말···"부모 잃은 뒤 반항"

입력
2023.03.24 14:00
수정
2023.03.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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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죽고 홀로 남은 사춘기 얼룩말
외로움에 말썽 부리다 동물원 밖 탈주
"세로는 건강… 시설 안전 대책 마련"

23일 서울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한 얼룩말 한 마리가 광진구 일대 도로를 활보하고 있다. 독자 제공

23일 서울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한 얼룩말 한 마리가 광진구 일대 도로를 활보하고 있다. 독자 제공

3시간 동안 서울 광진구 일대를 활보한 수컷 얼룩말 ‘세로’가 부모를 잃은 뒤 일탈 행동을 벌이다 어린이대공원 담장을 넘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공원은 내년에 점찍어 놓은 암컷 얼룩말을 데려와 세로와 함께 지내게 할 예정이다.

24일 어린이대공원에 따르면, 전날 오후 2시 50분 대공원을 탈출해 3시간 만에 생포된 얼룩말 세로는 마취에서 깨어나 사육사들의 돌봄을 받고 있다. 조경욱 어린이대공원 동물복지팀장은 “세로가 건강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사육사들이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로 탈출 소식이 알려진 뒤, 지난 1월 서울시설공단 유튜브에 올라온 짧은 영상이 뒤늦게 화제가 됐다. 세로가 ‘반항마’가 된 숨겨진 사연이 소개됐기 때문이다. 대공원 초식동물마을에 사는 세로는 어린 시절 엄마 아빠 ‘껌딱지’였지만, 부모 얼룩말이 잇따라 죽은 뒤 성격이 달라졌다. 2005년생 엄마 ‘루루’는 2021년에, 1999년생 아빠 ‘가로’는 지난해 자연사했다. 얼룩말 수명은 약 25년이다. 혼자 남겨진 세로는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옆 우리에 사는 캥거루에게 시비를 걸고, 집에도 잘 안 들어오려 했다.

어린이대공원 측에 따르면, 세로는 2019년생으로 올해 만 세 살을 갓 넘겼다. 사람 나이로 치면 사춘기다. 현재 어린이대공원에 얼룩말은 세로 한 마리뿐이라 사육사들이 정성껏 돌봤지만, 세로는 점점 더 예민해졌고 일탈 행동도 잦아졌다. 급기야 전날 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동물원 밖으로 뛰쳐나가 거리를 활보하게 된 것이다. 조 팀장은 “세로가 반항은 했지만 과격한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며 “평소 습성을 고려할 때 다시 탈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23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주택가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연합뉴스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23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주택가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연합뉴스

세로에게는 사육사들이 짝지어 둔 암컷 얼룩말이 있다. 아직 어려서 부모 곁에 머물고 있지만, 내년에는 어린이대공원으로 암컷 얼룩말을 데려와 세로와 함께 지내게 할 계획이다. 사육사들은 세로에게 친구가 생기면 한층 안정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로의 보금자리도 새 단장을 할 예정이다. 나무 울타리를 철제로 바꾸고, 높이도 더 올리기로 했다. 현재의 우리는 2010년 지어졌는데 당시만 해도 관람객 시야와 편의에 맞춰 공간을 조성했던 터라, 동물 복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조 팀장은 “안전과 복지에 최우선을 두고 시설을 보강할 것”이라며 “갑자기 도로에 뛰어든 세로 때문에 놀랐을 텐데 세로가 차에 치이거나 다치지 않게 양보해 준 운전자들과 시민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린이대공원은 생태공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이미 수년에 걸친 번식 제한 노력으로 종수를 상당히 줄였고, 더 넓은 공간에서 동물들이 흙을 밟으며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사육장 환경을 야생과 가깝게 조성할 계획이다. 어린이대공원 관계자는 “동물들을 당장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해 인간과 동물이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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