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진 남편'이 삼각김밥을 돌린 사연

'연진 남편'이 삼각김밥을 돌린 사연

입력
2023.03.24 17:16
수정
2023.03.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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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바른 안하무인 '더 글로리' 신스틸러 정성일
"삼각김밥 먹는 장면 촬영 제일 고민... 동은의 복수 이해"
신문 우유 배달하며 연기 활동... "인생 무너질 것 같은 경험해 배역 더 이해"

'더 글로리' 파트2에서 도영(정성일)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고 있다. 넷플릭스 캡처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로 얼굴을 알린 배우 정성일(43)은 24일 서울 삼청동 소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끝낸 뒤 뜻밖의 선물을 건넸다.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이었다. 포장지에 붙은 스티커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원래는... 과묵해요... 안 믿기겠지만.' 드라마에서 동은(송혜교)이 편의점에서 하도영(정성일)에게 "원래 그렇게 질문이 많으세요"라고 묻자 이에 대한 답으로 도영이 한 대사였다.

24일 서울 삼청동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성일이 준 삼각김밥. 스티커엔 '더 글로리' 속 도영의 대사가 적혀 있다. 양승준 기자

정성일이 '더 글로리'를 마친 뒤 삼각김밥을 돌린 사연은 이랬다.

드라마에서 삼각김밥은 도영의 변화를 가장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장치다. '더 글로리' 파트1에서 도영은 기원에서 만난 동은에게 끌려 그를 따라 편의점까지 따라간다. 이때 동은이 건넨 삼각김밥을 그는 먹지 않는다. "왜 편의점 음식 안 드세요?" 동은이 이렇게 묻자 도영은 "그렇다기보다 탄수화물이라"며 끝내 김밥에 손을 대지 않는다. 동은에 대한 경계이기도 했다. 그런 도영은 '더 글로리' 파트2에서 편의점에 들어가 홀로 삼각김밥을 먹는다. 동은을 통해 도영의 아내인 연진(임지연)이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뒤 그의 일상이 쑥대밭이 된 뒤였다. 이런 변화를 정성일은 "(복수를 하려는) 동은에 대한 이해"라고 했다.

"삼각김밥을 먹는 장면 찍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처음엔 대본 보고 '내가 왜 여기서 삼각김밥을 먹지'라며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너무 많은 생각이 들어 촬영할 때 뭘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동은이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이 사람을 만나 먹지 않겠다고 했던 삼각김밥을 도영이 먹는 건 '내가 동은과 뭐가 다를까'란 생각을 한 게 아니었을까요?"

그가 삼각김밥을 먹는 장면이 담긴 '더 글로리' 파트2가 지난 10일 공개된 뒤 14일까지 닷새 동안 편의점 CU에선 삼각김밥 매출이 전주 대비 약 15%가 증가했다고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다 연진아'란 글과 함께 도영처럼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더 글로리'의 신스틸러였던 정성일은 24일 "송혜교는 처음부터 편했다"며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때부터 그 친구의 연기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가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으면서 정성일의 일상도 변했다.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녀도 이젠 많이 알아봐 주세요. '연진이 남편이다' '하도영이다' 하면서요. 일곱 살 된 아이가 있는데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수영 선생님이 아이 엄마한테 부탁했다면서요. 그래서 '너 사인이 뭔지 알아'라고 했더니 모른다고 했어요. 귀여웠죠. 절 필요로 하는 곳이 많네요. 그래서 너무 고맙고 감사해요, 하하하."

'더 글로리'에서 도영(오른쪽, 정성일)이 동은(송혜교)과 바둑을 두며 얘기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에서 정성일이 연기한 건설회사 대표 도영을 두고 김은숙 작가는 "나이스한 X새끼"라고 표현했다. 도영은 타인의 비극에 무감각했다. 정성일은 무표정한 얼굴로 느릿하게 말을 하며 극 중 안하무인 캐릭터를 단정하면서도 섬뜩하게 표현했다.

그는 최근 드라마에서 재벌이나 실장님 역을 주로 맡았다. '비밀의 숲2'(2020)에서도 대기업 상무를 연기한 그는 '산후조리원'(2020)에선 잘나가는 프로골퍼로 나왔다. 김은숙 작가가 '더 글로리'의 도영 역에 정성일을 낙점한 것도 김 작가가 '비밀의 숲'을 보고 난 뒤였다.

이렇게 번듯한 이미지와 달리 그의 삶엔 '주름'이 많았다. 2002년 영화 'H'에서 단역으로 데뷔한 그는 오랫동안 무명 배우로 살았다. 생계를 위해 우유와 신문을 배달하고 빌딩 청소뿐 아니라 주차 아르바이트도 했다.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려서 고생도 많이 했다.

"어머니가 건강이 너무 안 좋으셔서 오랫동안 먼 곳에서 요양하셨어요. 제가 고3 올라갈 때 건강이 나아져 집으로 와 함께 살았죠. 너무 어렸을 땐 놀이터 블록에 고인 물에 모래가 가라앉길 기다리며 그 물을 마신 적도 있어요. 너무 배가 고파서요." 역경을 숱하게 겪은 정성일은 '더 글로리'에서 도영이 나락에 떨어질 때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연기했다.

"인생을 살면서 몇 번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거든요. 내 인생 자체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고 심하게 바닥에 있었을 때도 있었죠."

'더 글로리' 촬영장에서 도영 역을 맡은 정성일(오른쪽)이 재준 역을 연기한 박성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뒤 웃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직접 만난 정성일은 그간 출연했던 작품들에서의 모습과 달리 웃음이 많았다. 그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최근 '더 글로리' 속 도영과 방송인 유재석의 얼굴을 붙여 놓은 사진으로 올려놨다. 닮은 꼴로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은 사진과 이 상황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는 아이 얘기가 나올 때 환하게 웃으며 잠시 말을 멈췄다. 아이 생각에 너무 행복한 표정이었다.

"드라마에서 딸인 예솔이를 향한 도영의 마음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잘 안 됐어요. 저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키우는 정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만요. 도영의 친딸이 아니지만 이 아이가 지금 얼마나 중요한지, 여태 모든 걸 바쳤던 회사나 생활을 포기하면서 아이를 지키려는 그 마음에 충분히 이해가 됐어요. 진짜 아이를 키우면 너무 예쁘거든요. 힘들어도 아이만 보면 모든 게 풀리고. 도영이도 모든 걸 걷어내고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예솔이었을 거예요."

'더 글로리'에서 도영(정성일)이 그의 아내 연진(임지연)을 차갑게 바라보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정성일은 '더 글로리'를 찍은 뒤 연극 '뷰티풀 선데이'(4월 2일까지 서울 아트원씨어터)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연극에서 정진 역을 맡은 그는 귀여운 토끼 모양 안대를 끼고 자는 사내다. '더 글로리'와 '비밀의 숲2'에선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는 데뷔 초기 연극 '라이어'에서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옛 얘기를 꺼내자 정성일은 "제가 (코미디 연기를) 잘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평소 장난기도 많고 유쾌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뮤지컬 '인터뷰'(5월 28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를 하고 있는데 드라마 등 차기작은 정말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감사하게 작품 제의가 많이 들어왔는데 천천히 신중하게 고민하면서 조바심 내지 않으려고 해요. 사실 그간 반듯한 머리에 정장 말끔하게 입고 나온 역을 많이 해서 이제 정장 좀 그만 입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저를 필요로 하고 또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변화를 주고 싶어요."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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