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향의 뽕과 영화 뽕

입력
2023.03.3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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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나도향과 ‘뽕’

이두용 감독의 1986년 영화 '뽕' 포스터. KMDB 사진

이두용 감독의 1986년 영화 '뽕' 포스터. KMDB 사진

작가 나도향(1902.3.30~1926.8.26)은 만 19세였던 1922년, 일제강점기 낭만주의 문학의 산실로 불리는 문예지 ‘백조’ 창간호로 등단해 4년여 동안 10여 편의 단편소설을 내고 만 25세에 폐렴으로 별세했다. 동경과 불안, 반항을 주조로 삼았던 그의 문학은 저 짧은 시간 사이 당대 사회 현실, 즉 사회계급적 지배-착취 관계와 하층민의 비애, 삶의 원초적 의지와 욕망의 차원으로 거침없이 멀리 나아갔다. 대표작 ‘물레방아’와 ‘뽕’ ‘벙어리 삼룡이’가 모두 만년인 1925년 발표됐고, 세 작품 모두 각각 신상옥(1964), 이만희(1966), 이두용(1986)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가 제작된 시대만으로도 짐작되듯, 나도향이 작품에서 담고자 했던 (성적) 욕망과 삶의 부조리-페이소스는 1986년 영화 ‘뽕’에 이르러, ‘토속적 에로티시즘의 정수’라는 개봉 당시 선전문구처럼, 은유적 사회성보다 자극적인 도발성으로 점점 기울어졌다. 1986년 영화는 아태영화제와 영평상, 대종상을 휩쓸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1988년과 92년, 96년의 ‘뽕4’까지 이어지는 동안 ‘뽕’의 이미지는 점점 더 탁해졌다.

소설 배경은 1920년대 강원도 철원 용담골이다. 노름꾼에 아편쟁이인 폭력 가장 김삼보의 20대 아내 안협댁이 주인공. 가난에 인이 박여 어려서부터 ‘돈(의 가치)’을 알게 된 안협댁의 신조는 “돈만 있으면 서방도 있고, 먹을 것 입을 것이 다 있다"는 것. 화냥년이라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그는 삯일 틈틈이 옷고름도 풀고, 성폭력도 당한다. 그를 탐하는 머슴 삼돌이는, 안협댁의 비참을 증폭시키는 주요 갈등요인. 나도향은 작품 속 모든 남성을 저마다 비열하고 한심하게 묘사했지만, 영화 속 남편 삼보는 1986년 영화에서부터 난데없이 비밀 독립운동가로 변신한다. 그건 작가가 가려던 길의 반대편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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