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쿠바 총선… 국회의원 470명 뽑는데 470명 출마?

입력
2023.03.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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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없이 후보자 모두 정부서 지명
기권 독려에도 잠정 투표율 70% 넘어

26일 쿠바 총선이 시작된 가운데 수도 아바나의 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고 있다. 1959년 공산혁명을 일으킨 피델 카스트로의 초상화가 벽에 걸려 있다. 아바나=EPA 연합뉴스

26일 쿠바 총선이 시작된 가운데 수도 아바나의 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고 있다. 1959년 공산혁명을 일으킨 피델 카스트로의 초상화가 벽에 걸려 있다. 아바나=EPA 연합뉴스

쿠바에서 향후 5년간 국민을 대표할 47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26일(현지시간) 실시됐다. 그러나 '누가' 선출될지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선거구는 총 470개인데, 후보로 등록한 인원도 470명(여성 263명, 남성 207명)이기 때문이다. 여야 간 경쟁도, 선거 유세도 없는 '공산국가' 쿠바의 고요하고 기묘한 선거 풍경이다.

AP·AFP 통신 등은 이날 "쿠바인들이 '투표율'에 초점을 맞춘 투표를 진행했다"며 총선 분위기를 보도했다.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인 쿠바는 총선 입후보자 절반을 기초자치단체에서 추천하고, 나머지는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여성·대학생·농업인 등 6개 단체에서 선정한다. 투표소에 간 유권자에게는 지역구에 입후보한 모든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일부 후보를 골라 투표하는 선택지밖에 없다. 선거에서 유효 투표수의 절반을 받아야 당선이 확정되지만, 그리 어려운 기준이 아니라 대부분 후보가 그대로 당선된다.

이렇게 선출된 의원들은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게 된다. 투표율이 곧 정부의 '지지율'을 보여 주는 지표가 되는 터라 반체제 인사들로선 기권을 독려하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쿠바 정부는 이런 선거 방식이 국가의 단결을 도모하고, 금권선거 등 선거가 과열되는 것을 막는다고 본다. 또 이번 총선 후보자 절반 이상이 여성이고 45%가 흑인이라는 점을 들어 "다른 국가보다 원 구성에서 다양성을 담보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26일 쿠바 수도 아바나에 있는 국회의원 투표소에서 관계자들이 개표를 하고 있다. 아바나=EPA 연합뉴스

26일 쿠바 수도 아바나에 있는 국회의원 투표소에서 관계자들이 개표를 하고 있다. 아바나=EPA 연합뉴스

쿠바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오후 5시 잠정 투표율이 70.3%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의 투표율 63.5%보다는 높은 수치다. 선거 이전만 해도 '이번 총선 투표율은 역대급으로 낮을 것'이라는 주요 외신 전망과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같은 관측은 오랜 경제난에 시달려 온 쿠바에서 2021년 8월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꾸준히 지속돼 왔다는 데에서 비롯됐다. 지난해엔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향한 이민자가 전체 인구의 2%에 달하는 '엑소더스'마저 일어났다. 누적된 불만이 '투표 포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었는데, 실제로 이번 총선 투표율은 직전 총선 투표율(85.6%)에는 한참 못 미쳤다. 그럼에도 예상외의 선전을 기록한 셈인데, 미겔 디아스 카넬 쿠바 대통령은 "일부는 어려운 경제 상황을 투표보다 우선으로 생각하겠지만, 다수는 우리가 함께 협력한다는 사실을 주목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체제 인사들은 '높은 투표율'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쿠바 민주화 이행 이사회의 마누엘 쿠에스타 모우라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오전 9시까지만 해도 18.2%였던 투표율이 2시간 만인 오전 11시에 41.6%로 늘었다"며 "불가능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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