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이여, 저축 대신 소비를!" 경제 죽어가는데 계속 퍼주는 튀르키예

입력
2023.03.28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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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대선...에르도안의 포퓰리즘 공세
55%대 고물가, 80% 폭락한 리라화
이미 초토화된 경제에 "무용지물"
추가정책 나와도 "경제위기 못 막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연합뉴스

'최저임금 55% 인상, 기초연금 두 배 인상, 정년 요건 폐지.'

오는 5월 대선에서 30년 초장기 집권을 노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최근 석 달 사이 내놓은 정책들이다. 살인적인 고물가 등으로 이미 초토화된 국가 경제 사정도, 지난달 대지진으로 인한 천문학적 경제 피해도 반영되지 않았다. '표퓰리즘'(표+포퓰리즘)이 튀르키예 경제 위기를 더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민심 달래기용 '경제 무리수'... "약발 안 먹혀"

26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튀르키예의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최근 에르도안 대통령의 잇따른 경제 정책들의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2023년 최저임금 55% 인상 △기초연금 두 배 인상 △정년 요건 폐지 등을 잇달아 약속했다. 정부는 임금과 연금 수준을 올려 서민의 물가 충격을 완화하고, 남성이 60세, 여성이 58세이던 정년을 없애 조기 연금 수령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5월 14일 대선을 노린 정책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튀르키예 경제를 고려할 때 이렇다 할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거란 지적도 나온다. 튀르키예는 지난해 10월 물가상승률이 85%에 달할 만큼 최악의 고물가를 겪고 있다. 10월 이후 상승폭을 줄였다지만,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5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이는 고물가에도 기준금리를 끌어내린 에르도안의 '금리 역주행' 탓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금리를 올려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게 통화정책의 상식이지만, 튀르키예는 "고금리가 고물가를 부추긴다"며 물가가 폭주하던 지난해에도 정반대 길을 택했다. 2021년 9월(연 18%) 이후 금리를 내리 인하한 결과 현재 튀르키예 금리는 연 8.5%다.

지난 1월 튀르키예 수도 이스탄불의 한 환전소에서 남성이 지폐를 세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 1월 튀르키예 수도 이스탄불의 한 환전소에서 남성이 지폐를 세고 있다. EPA 연합뉴스


리라화 추락, 달러도 고갈... "소비가 간신히 떠받쳐"

그 결과 국가 경제 수준을 반영하는 통화가치가 폭락했다. 달러당 리라화 가치는 역대 최저 수준인 19리라까지 추락한 상태다. 5년 새 80% 주저앉은 결과다. 리라화 약세로 수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도 물 건너간 지 오래다.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에 수입 물가가 올라 전반적인 물가를 더 밀어 올렸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튀르키예 경상수지 적자는 100억 달러(13조 원)에 달했다. 정부가 리라화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달러를 팔아치운 탓에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도 거덜 났다.

튀르키예 정부도 사실상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그나마 지갑을 여는 중산층의 소비에 기대 경제를 간신히 떠받치고 있지만, 이들마저 고물가 충격 앞에서 저축을 포기했다. 은행 예금 이자가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할 때 저축은 오히려 돈을 잃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저축했다가 돈을 날리느니 번 돈은 오늘 다 써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중산층 때문에 튀르키예 대도시 식당은 손님으로 미어터진다"며 "인플레이션이 가져온 기이한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대선 여론조사에서 고전 중인 에르도안은 더 과격한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파산 상태나 다름없는 경제 사정을 고려하면 경제 위기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셀바 데미랄프 이스탄불 코크 대학 교수는 "튀르키예 경제는 시간을 벌고 있을 뿐"이라며 "정부가 선거 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티려 애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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