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한 권에 대한 목마름, 채우는 데 15년 걸렸죠"

입력
2023.05.15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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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몽한대사전' 편찬 대장정 마친 이성규 단국대 명예교수

이성규 단국대 명예교수가 자택에서 편찬을 주도한 몽한대사전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성규 교수 제공

이성규 단국대 명예교수가 자택에서 편찬을 주도한 몽한대사전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성규 교수 제공

"학자로서도 개인적으로도 정말 힘든 시간이었기 때문에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다행히 퇴임과 함께 마음의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어 후련합니다."

최근 자신이 주도한 '몽골어-한국어대사전' 편찬 대장정을 마무리한 이성규(67) 단국대 몽골학과 명예교수는 이렇게 소회를 털어놓았다. 총 2권으로 구성된 3,090쪽 분량 몽한대사전은 표제어 8만5,000단어를 수록한 사전으로, 어휘 수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15년. 사전 편찬 작업이 시작돼 완성본이 나오기까지 걸린 세월이다. 2009년 단국대 몽골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는 장충식 단국대 이사장의 권유로 몽한사전 편찬 작업에 발을 담갔다. "한국과 몽골이 수교를 시작한 지 15년이 넘어가던 시점이었는데 제대로 된 몽한사전이 한 권도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몽골학 연구자가 귀했던 시절이라 책임감에서 덜컥 맡은 거죠."

국내 몽골학 교육자 1세대인 이 교수는 지난 2월까지 국내 최초 몽골학 교육기관인 단국대 몽골어과에서 강단에 섰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며 한국어 뿌리인 알타이어를 공부하다 몽골과 인연을 맺은 그는 1990년 3월 한국과 몽골의 수교를 계기로 몽골로 갔다고 한다. 현지에서 2년간 생짜로 몽골어를 익히며 몽골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1992년 말 귀국해 이듬해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개설된 몽골학과 정교수가 됐다. "제대로 된 사전이 없으니 연구를 하면서도 영어와 일어, 중국어 기반의 몽골어 사전을 번갈아 봐야 했는데 후학들을 위해 사전이라도 번역해 불편함을 덜어주자 해서 시작한 작업이었어요."

호기롭게 시작한 사전 번역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그는 "몽골인의 국어대사전 격인 '몽골어 상세풀이사전'의 판권을 사서 번역을 마쳤는데 오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며 "오류를 찾아 일일이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빠진 단어를 채워 넣고 보니 기존 사전보다 5,000단어 이상이 늘어 난감했다"고 말했다. 기초 번역 작업을 넘어 사전 편찬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 단국대와 몽골국립대 등에 소속된 몽골학 연구자와 졸업생 등 10여 명이 투입돼 밤낮을 아껴가며 조판과 수정 보완에 매달렸다. 극소수 전임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생업을 병행해 무보수로 끌고 가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사전 편찬에 들어간 비용만 수억 원에 달한다. 편찬에 참여했던 몽골학과 강신 교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져 작업이 중단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그렇게 장장 15년의 담금질을 거쳐 나온 사전엔 12~13세기 몽골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 이후 현재까지 몽골 모든 문헌에서 채록한 관용어, 속담, 격언, 고어 등이 담겼고 주석도 꼼꼼하게 달렸다. 한국어 풀이는 최대한 순수 우리말로 하되 한자를 병기하고, 몽골어 학습자를 배려해 사전 말미에 몽골어 문법도 수록했다. 사전은 주한몽골대사관, 주몽한국대사관, 몽골과학아카데미, 몽골국립대 등에 기증됐는데 벌써부터 반응이 뜨겁다. "사전 발간 소식에 몽골에서 난리가 났어요. 한국에 진출하려는 몽골인들, 현지의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니까요. 20만 원 상당 고가인데 구입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해요."

이 교수의 유일한 바람은 이 사전이 양국의 교류에 실용적인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과 몽골의 교류는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물밑 인적 교류가 어느 나라보다 왕성한 편이라고 한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몽골인은 지난해 11월 기준 약 3만9,000명으로, 몽골 전체 인구의 1%를 넘는다. "원나라와 교류한 지 700년 만에야 두 나라의 언어적 접점이 생긴 것이죠. 몽한사전이 공고했던 언어 장벽을 무너뜨리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총 2권으로 구성된 몽한대사전은 3,090쪽 분량에 표제어 8만5,000여 단어를 수록했다. 단국대 제공

총 2권으로 구성된 몽한대사전은 3,090쪽 분량에 표제어 8만5,000여 단어를 수록했다. 단국대 제공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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