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퇴근하다 신호위반 다쳤다면... 법원 "산업재해 아냐"

자전거로 퇴근하다 신호위반 다쳤다면... 법원 "산업재해 아냐"

입력
2023.04.23 14:10
수정
2023.04.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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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신호위반하다 상해 입어
요양급여 신청 거부당하자 소송 제기
"원고가 신호위반... 비난 가능성 크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주유소 직원 A씨는 2021년 5월 서울 송파구 교차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신호를 위반한 채로 교차로를 건너다가, 우측에서 직진하던 차량에 치인 것이다. A씨는 이 사고로 대뇌 타박상 등 상해를 입었다.

A씨는 사고 직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근로자가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 지급되는 보험 혜택)를 신청했다. 공단은 그러나 같은 해 7월 신청을 거부했다. 신호위반으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가 아니란 취지였다. 산업재해보상법에 따르면 범죄행위로 인한 부상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A씨는 지난해 6월 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측은 "신호위반을 한 건 맞지만 상대 차량도 전방 주시를 태만히 하는 등 과실이 있다"며 "사고가 업무와 관련 없는 사유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송각엽 부장판사는 공단 손을 들어줬다. A씨의 신호위반이 부상의 직접적 원인이 된 게 맞다는 취지다. 송 부장판사는 "A씨가 진행 차로의 신호가 녹색신호에서 적색신호로 변경된 것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A씨가 인근에 조성된 자전거도로를 이용하지 않은 점까지 고려하면 무거운 중과실로 정지신호 등을 위반해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사고 장소의 도로구조가 까다롭지 않고, A씨가 평소 자주 지나다녀 차량 진행방식을 충분히 알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도 고려했다.

송 부장판사는 사고 차량 운전자의 과실도 없다고 봤다. 차량 운전자가 교통신호를 따라 적법한 속도로 움직였기 때문에 신호를 위반한 경우까지 예상해 사고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송 부장판사는 "사고 차량은 직진 신호로 바뀐 뒤 약 5초가 지난 시점에 교차로로 진입했다"며 "송파경찰서 내사결과보고서상 사고 원인이 A씨의 신호 위반이고 가해자 또한 A씨로 조사된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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