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하지 않으려는 지방의 한 귀퉁이에서

소멸하지 않으려는 지방의 한 귀퉁이에서

입력
2023.05.24 19:00
25면

편집자주

17년 차 베테랑 검사이자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저자인 정명원 검사가 전하는 다양한 사람과 사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기.

삽화=신동준기자

삽화=신동준기자


경북 32개 초등학교, 입학생 전무
효율 따지지 말고 지역학교 지켜야
소멸 극복하고 반짝이는 지방 돼야

구불구불한 국도길을 한참 달렸다. 한적한 도로변으로 농가들과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듯한 휴게식당들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어린이날을 맞아 예천군 상리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상리초등학교 전교생 13명은 지난달 우리 대구지검 상주지청에 견학을 왔었다. 검찰청에 와서 검사실도 구경하고 수사장비도 만져보고 돌아간 아이들이 깨알같이 적은 손편지를 보내왔다. '검찰청이 어떤 곳인지 몰랐는데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법 의젓한 고학년부터 '수갑도 만져보고 감옥도 구경했는데 감옥은 좀 무서웠어요'라는 1학년 어린이의 편지까지 13장의 편지는 제각각의 표정으로 귀엽고도 뭉클했다. '앞으로도 나쁜 사람 많이 잡아주세요' 어린이의 당부에 모처럼 검사 어른의 사명감이 불끈 일었다.

1시간여를 달려 작고 아담한 학교에 도착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아이들 13명이 평상 위에 둘러앉아 한 식구처럼 밥을 먹고 있었다. 어린이날 전날이라 삼겹살 파티를 한다고 선생님들이 평상 옆에 숯불을 피우고 직접 고기를 구워 아이들 식판에 놓아 주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별도로 오리고기도 준비되었다. 그곳에서 13명의 아이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고루 존중되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과 마주 앉은 시간, 어떻게 이 작은 학교가 사라지지 않고 지켜질 수 있었는가 물었다. '어려운 일이지요. 아시겠지만…' 교장선생님과 나는 조금 쓸쓸해지는 마음으로 잠시 마주 보고 웃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결국 폐교되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지난 만남에서 한 터였다. 그렇게 이미 폐교된 학교와 폐교 위기에 있는 학교들이 전국의 곳곳에 수없이 많다. 올해 신입생을 한 명도 받지 못한 초등학교가 경북에서만 32곳이라고 한다.

지방의 마을에는 더 이상 젊은 사람이 없고 아이들이 없으니 학교가 사라지는 것은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소수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유지하고 교사 인력을 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그 비용으로 성능 좋은 스쿨버스를 제공하고 아이들을 더 큰 학교에 모아 교육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효율을 따지는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고 있는 삶의 터전에 학교가 있고 없고는 아주 큰 차이다. 학교가 문을 닫으면 그나마 남아 있던 아이마저 떠나야 하고 누군가 돌아오리라는 가능성 역시 쭈그러든다. 가능성을 잃은 마을은 급속히 늙어간다. 등불이 꺼졌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가정뿐 아니라 지역 사회 모두가 자각하게 된다.

단 몇 명의 아이를 위해 지역에 학교를 남기고 선생님을 보내는 일은 그곳에 터 잡은 몇몇의 삶에 보내는 우리 사회의 존중이다. 머릿수로 측정할 수 없는 13개의 개별적인 삶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내는 응원이며 품격이다. 하여 어렵더라도, 효율이 떨어져 보인다고 해도 끝내 작은 학교들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사라져가는 어떤 삶의 양식을 지켜가는 쪽으로 미래세대에 대한 어른들의 대답이 향하기를 바란다.

지방에서는 어디 가나 지방소멸이 화두다. 지자체장들은 어떤 시설을 유치해서 지역 인구를 획기적으로 늘려보겠다고 열심이다. 그들의 바람대로 시설들이 유치되어 지역의 인구가 늘어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일이 쉽사리 일어나지 않아서 지역의 인구가 늘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끝내 지역의 소멸로 이어지지 않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골골마다 드문드문 존재하는 소수의 삶의 가능성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방식으로 그것은 가능하다. 예천군 상리초등학교에 다니는 13명 어린이의 가능성이 어느 도시 1,300명 아이의 가능성에 견주어 가벼이 여겨지지 않을 때, 지역은 숫자가 줄어든다 하더라도 소멸하지 않을 힘을 갖는다. 소멸하지 않는 한 누군가는 그곳에서 반짝 삶의 등불을 올리게 될 것이다.

정명원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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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원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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