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성희롱 제보자 “삭제된 파일엔 여성 간부 얼굴에 연예인 합성한 사진도”

입력
2023.05.25 11:30
수정
2023.05.25 13:33
구독

당직대 병사들, 인수인계 장부에서 상관 성희롱
이미 삭제된 '계집파일'에선 더욱 심한 폭력
"상관 몇 명 사악해서가 아니라, 군대 문화를 바꿔야"

군 전투비행단 당직대 병사들이 인수인계 장부인 '신송노트'에서 벌인 성희롱. 2021년 11월부터 약 9개월간 이 같은 성희롱이 벌어졌다. CBS 유튜브 캡처

군 전투비행단 당직대 병사들이 인수인계 장부인 '신송노트'에서 벌인 성희롱. 2021년 11월부터 약 9개월간 이 같은 성희롱이 벌어졌다. CBS 유튜브 캡처

“‘계집파일’은 꼭 앨범처럼 여 간부님들 사진이 있고, 여자 연예인들의 몸과 여 간부님 얼굴을 합성해 놓은 그런 사진이 있고, 여 간부님 사진 위에 이렇게 그림판으로 낙서를 해놓은 그런 사진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공군 전투비행단 병사들이 여성 상관들을 장기간 성희롱한 사실을 상부에 처음 보고한 A 병사는 2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성희롱 발견 경위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인수인계 장부에 여성 간부 개인정보와 외모 평가"

그가 성희롱 사실을 우연히 발견한 것은 지난 3월. 당직대 병사들은 전용 컴퓨터(PC)에 있는 한글파일 문서 '신송노트'에 교대로 당직 상황 등을 정리한다. 일종의 당직자 인수인계용 장부다. A씨는 “매 연도마다 삭제되는 것 없이 전부 다 보존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2021년 11월부터 해당 기간 동안의 신송노트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친한 선임 병사가 비어 있는 기간의 파일을 보여줬는데 상상하지 못했던 어떤 영역에 있었다”고 말했다. 신송노트가 삭제돼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이런 내용을 적었던 주모자, 가해자 병사들이 전역을 하기 전에 문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전부 삭제하고 나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군 전투비행단 당직대 병사들이 인수인계 장부인 '신송노트'. 근무 관련 내용 사이에 여성 상관에 대한 성희롱이 계속됐다. CBS 유튜브 캡처

공군 전투비행단 당직대 병사들이 인수인계 장부인 '신송노트'. 근무 관련 내용 사이에 여성 상관에 대한 성희롱이 계속됐다. CBS 유튜브 캡처

2021년 1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약 9개월간의 신송노트에는 여성 간부들의 이름, 사진, 휴대전화 번호, 직책, 소속 등과 함께 외모를 평가하며 집단 성희롱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6명으로 구성된 당직대 병사들이 '일종의 카카오톡 단톡방'처럼 교대로 채팅하듯 성희롱을 했다는 것이다. 성희롱 피해자 규모에 대해서 A씨는 “신송노트에서 언급되고 있었던 사진, 신상이 분명하게 남아 있었던 분들이 제 기억에 한 여덟 분 정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삭제된 '계집파일'에선 더한 성희롱 일삼은 듯

그러나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송노트에서는 ‘계집파일’이라는 말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A 병사는 “‘계집파일’이라는 파일은 이 신송노트에서 계속 언급은 되고 있는데 이미 삭제된 상태여서 확인할 수 없었다”며 “(삭제되기 전에 ‘계집파일’을 실제로 본 사람에 따르면) 꼭 앨범처럼 여 간부들 사진에 여자 연예인들 몸을 합성해 놓은 사진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송노트 내용을 보면 ‘아가씨’라거나 이런 것에 비유를 했으니까 어떤 지저분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사진과 연락처 등은 공군 내부망에서 빼온 것이다.

공군 전투비행단 당직대 병사들의 인수인계 장부인 '신송노트'에 적힌 '계집 파일 업데이트 완료' 문구. 계집 파일은 이미 삭제돼 확인이 불가능하나 이 별도 파일에서는 더 심한 성희롱이 벌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CBS 유튜브 캡처

공군 전투비행단 당직대 병사들의 인수인계 장부인 '신송노트'에 적힌 '계집 파일 업데이트 완료' 문구. 계집 파일은 이미 삭제돼 확인이 불가능하나 이 별도 파일에서는 더 심한 성희롱이 벌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CBS 유튜브 캡처


"상관 몇 명 사악해서가 아니다... 군대 문화가 바뀌어야"

A 병사는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A 병사는 “(상부에선) '내용이 심각하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주된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이 이미 전역한 병사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징계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피해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알린다든지 이런 일은 없도록 해라. 충격을 받고 그럴 테니까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한 달 반 정도 지나서 (상관을) 다시 뵙게 됐는데 ‘(성희롱 발언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계급과 이름을 밝히지 않고) 대충 적은 면이 있어서 내용을 적은 사람이 이 사람이라고 특정할 만한 법적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가해자 규모에 대해서는 “최대 8명 안에서 댓글을 달 듯이 대화가 이루어졌을 텐데 확실한 주동자는 한 명”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전역했다.

공군 전투비행단은 한겨레신문의 취재가 시작되자 지난 11일 보고 체계에 있던 간부 3명을 징계 입건하고 관련자 조사에 착수했다. A 병사는 이에 대해 “보고를 받기 전까지 병사들이 한 일이 간부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라며 “'나한테도 불똥이 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 때문에 누차 (상부에) 보고가 늦어졌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걸 정말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몇 명의 사람(상관)들이 사악했기 때문이라고 정리되는 게 아니라 사회의 어떤 모습, 군대의 문화 이런 것들이 결국 바뀌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남보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