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은 잘못 없지만…'마약' 김밥은 이제 그만

김밥은 잘못 없지만…'마약' 김밥은 이제 그만

입력
2023.05.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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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음식점 명칭에 마약 사용 빈번
전국 216개 상호명에 '마약' 들어가
식약처, 지자체와 마약 표현 제지 방안 논의
전문가 "마약 반복 노출, 친숙해질 우려"

편집자주

즐겁게 먹고 건강한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그만큼 음식과 약품은 삶과 뗄 수 없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소소하지만 알아야 할 식약 정보, 여기서 확인하세요.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김밥이 판매되고 있다. 광장시장 김밥은 한 번 먹으면 중독될 정도로 맛있다는 의미에서 '마약김밥'으로 통용된다. 뉴시스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김밥이 판매되고 있다. 광장시장 김밥은 한 번 먹으면 중독될 정도로 맛있다는 의미에서 '마약김밥'으로 통용된다. 뉴시스

많이 들어간 게 없어 보여도 하나를 먹기 시작하면 두 개 세 개 집게 되는 일명 마약김밥.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겁니다. 그런데 맛있기만 한 마약김밥이 최근 도마에 올랐습니다. 김밥이 무슨 잘못이 있냐고요? 물론, 김밥은 잘못이 없어요. 김밥 때문이 아니라 '마약' 때문이거든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약을 식품 또는 음식점 명칭에 사용하지 못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최근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회를 열었습니다. 더 이상 음식명이나 상호명에 마약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식품 등 명칭에 마약 사용 빈번…식약처, 자제 권고

지자체는 식품접객업 영업신고서를 제출하거나 가공식품 품목제조를 보고할 때 상호 또는 제품명 일부에 마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영업자에게 권고 및 홍보할 예정입니다. 식약처는 현재 마약 명칭을 사용 중인 업소에 대한 대책도 내놨습니다. 다음 달부터 소비자식품위생감시원이 직접 방문해 상호명을 변경하도록 계도하고 간판, 메뉴판 등 교체에 따른 영업자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할 예정입니다.

김밥이나 떡볶이 등 음식을 '마약OO'이라고 불러도 실제로 마약 성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을 텐데, 뭐가 문제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식약처가 이렇게까지 나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때 마약 명칭이 들어간 음식은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의 마약김밥 정도가 유명했는데, 어느새 우후죽순으로 확산해 일상 용어가 될 정도로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자칫 마약 자체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습니다.

배달앱에서 국회의사당(왼쪽)과 서울시청을 주소지로 설정한 뒤 마약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배달의민족 캡처

배달앱에서 국회의사당(왼쪽)과 서울시청을 주소지로 설정한 뒤 마약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배달의민족 캡처

26일 행정안전부의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상호명에 '마약'이 들어간 음식 관련 업소는 전국에 216개입니다. 일반음식점이 185개로 가장 많고, 휴게음식점(23개), 즉석판매제조가공업(6개) 순이죠. 심지어 제과점도 2개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여길 수 있지만 상호명만 따져서 그렇습니다. 제품명에 마약이 포함된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배달앱에서 서울시청을 주소지로 설정해 마약을 검색하면 제품명에 마약이 들어간 매장이 112개나 노출됩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에서는 126개가 검색됐습니다. 마약김밥이나 마약떡볶이 등 익숙한 음식 외에도 마약마카롱, 마약육회, 마약먹태, 마약찜닭, 마약커피, 마약만두, 마약피자 등 웬만한 메뉴에는 죄다 마약이 붙었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마약바지, 마약셔츠 등 공산품에도 사용됩니다.

식품업체나 음식점들은 중독될 만큼 맛있다거나 좋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마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겠지만 마약의 해악은 너무나 큽니다. 한 번 손대면 헤어나오지 못해 육체와 정신이 황폐화되고 가족 등 주변인들까지 불행하게 만들죠. 만연할 경우 개인의 범주를 넘어 사회시스템이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상생활, 특히 음식에 마약이란 단어가 통용되다 보니 규제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식품 등에 마약 명칭 사용 금지법 발의도…국회 계류

국회에서도 마약 표현을 막기 위한 논의는 이어졌습니다. 지난해에는 국민의힘 권은희, 서정숙, 백종헌 의원이 각각 식품표시광고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죠. 세 개정안은 조금씩 다르지만 식품 등에 마약이란 명칭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공통점입니다.

서정숙 의원 안은 마약류관리법에서 정한 마약 용어의 사용을 금지하는 게 골자이고, 백종헌 의원 안은 식품 등에 마약 및 그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한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하는 겁니다. 권은희 의원 안은 마약과 같은 유해약물 및 유해물건에 대한 표현을 사용해 사회윤리를 현저하게 침해하는 표시 또는 광고를 제한하는 내용이라 금지 범위가 비교적 넓습니다.

진선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지난해 12월 열린 복지위 제2법안소위에서 세 개정안에 대해 "식품과 결합돼 있는 마약김밥이나 마약떡볶이 같은 표현이 청소년들의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개정안의 입법 취지는 타당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세 법안은 법안소위 문턱을 넘지 못해 현재 계류 중입니다. 취지가 문제가 아니라 현실화가 쉽지 않다는 게 이유입니다. 법제화 시 소상공인의 부담이 커진다는 점과 유예기간을 부여해도 우후죽순으로 퍼진 표기를 다 개선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론이 제기됐습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안소위에서 "소상공인들이 간판 등을 다 바꿔야 하는데 지원책이 없지 않냐"며 "마약 표기를 국민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가 먼저 시행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같은 당 김민석 의원도 "취지와 무관하게 현실에 안 맞을 가능성이 높고 유예기간 1년 안에 해결이 되겠냐"고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청소년 마약사범 급증…"마약 단어 노출 막아야"

'마약김밥'을 상품명으로 사용하는 음식점 모습. 뉴시스

'마약김밥'을 상품명으로 사용하는 음식점 모습. 뉴시스

전문가들은 법제화는 차치하더라도 마약이 들어간 제품명이나 상호명을 사용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인지발달 과정에 있는 아동이나 청소년이 마약이란 표현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무의식적으로 학습해 마약에 대한 경계심이나 부정적 인식이 축소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

최근 청소년 마약사범이 증가세라 이들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청소년 마약사범은 2017년 119명에서 지난해 481명으로 304%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마약사범 증가율(30.2%)과 비교하면 청소년 증가율이 10배에 이릅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성인은 영향이 덜하겠지만 아동, 청소년은 단어에 반복적으로 노출이 되면 친숙도가 올라갈 수 있다"며 "마약이라는 단어 자체에 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팔고 먹었던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누군가에게는 마약의 장벽을 낮춰주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맛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도 마약이라는 단어는 이제 지워버리는 게 맞지 않을까요.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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