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미숙' 승객 조롱한 승무원 노조 "우리가 피해자다”…왜?

'영어 미숙' 승객 조롱한 승무원 노조 "우리가 피해자다”…왜?

입력
2023.05.28 10:00
수정
2023.05.28 20:5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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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세이퍼시픽 승무원 "말 못 알아듣네" 조롱
승무원 3명 해고…노조 "근무환경이 문제"
중국 언론 "누가 피해자인가" 싸늘한 반응

중국의 한 공항에서 홍콩 최대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 직원이 탑승객과 대화를 하고 있다. 중국에선 캐세이퍼시픽 승무원이 영어에 미숙한 중국인 승객을 조롱한 대화 녹음이 21일 공개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글로벌타임스 캡처

영어에 서투른 중국인 승객을 조롱해 중국 사회의 공분을 산 홍콩 최대 항공사 캐세이퍼시픽 승무원 노조가 되레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승객 조롱 사건은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이라는 논리를 펴며 또 한번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사건은 캐세이퍼시픽 항공편에 탑승했던 한 중국인 승객이 몰래 녹음한 승무원들의 대화 내용이 인터넷에 공개되며 시작됐다. 31초 분량의 녹음에는 지난 21일 운행된 CX987편에 탑승한 승무원 3명이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중국인 승객을 험담하는 내용이 담겼다. 담요를 요청하려던 승객이 실수로 "카펫(carpet)을 달라"고 한 승객을 언급하며 "영어로 담요라고 말하지 못하면 담요를 얻을 수 없지, 카펫은 바닥에 있잖아"라고 말한다. 또한 홍콩인들의 언어인 광둥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 승객에 대해 "그들은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조롱했다.

"사과까지 영어로 하나"...중국인들의 분노

로널드 람 캐세이퍼시픽 최고경영자가 24일 홍콩 본사에서 회견을 열고 자사 승무원이 중국인 승객을 조롱한 사건과 관련,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캡처

중국은 발칵 뒤집혔다. 홍콩 항공사가 중국인을 차별했다는 비난 여론이 치솟았고,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까지 나서 "캐세이퍼시픽은 외국인은 숭배하면서 본토(중국)인은 깔본다"고 직격했다. 홍콩 행정수반인 존 리 행정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본토 승객에게 무례한 발언과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분노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어떡해서든 중국 민심을 수습하라는 캐세이퍼시픽을 향한 압력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로널드 람 캐세이퍼시픽 최고경영자(CEO)는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중국인들은 "사과도 영어로 하냐"며 항공사를 더욱 몰아세웠고, 람 CEO는 24일 기자들 앞에서 중국어로 다시 사과해야만 했다. 이렇게 4차례 공개 사과했음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캐세이퍼시픽은 대화 속에 등장한 승무원 3명을 전원 해고했다.

승무원 노조 "낮은 급여 등 근무 환경이 근본적 문제"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한 캐세이퍼시픽 승무원들이 이동하는 모습. 홍콩=AP 연합뉴스

중국인들의 공분은 '승무원들의 반란'으로 다시 불이 붙었다. 회사의 해고 조치에 격분한 승무원 노조가 해고 취소와 더불어 임금 인상까지 요구하고 나선 탓이다.

노조는 24일 공개한 성명을 통해 "승무원은 늘 차별 없이 모든 승객을 동등하게 존중했다"며 "회사 지침에 따라 영어로 승객과 소통해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승객 조롱 논란에 대해선 "승객이 동의도 없이 승무원을 촬영하거나 대화를 녹음했을 경우 이를 정중히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는 매뉴얼을 언급하며 승객이 몰래 녹음한 파일을 인터넷에 공개하며 해당 승무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해당 승객을 직접 조롱한 것도 아니고, 승무원들끼리의 대화 내용이 공개된 것만으로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호소였다.

나아가 노조는 "낮은 급여와 인력 부족, 노동량 증가 등 최근 근무 환경이 근본적인 문제"라며 이번 사태를 열악한 근무 환경 탓으로 돌렸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에만 약 3조6,000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수준의 적자를 기록한 캐세이퍼시픽은 최근까지 임금 삭감·인력 구조조정 등 대대적인 비용 절감 조치를 해왔다.

노조 나름대로 울분을 토해낸 것이지만, 중국의 반응은 싸늘했다. 온라인에서는 "노조 차원의 사과도 모자랄 판에 임금 인상이 웬 말이냐", "캐세이퍼시픽은 더 이상 이용하지 않겠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5일 "노조가 승객을 가해자로, 자신들을 피해자로 묘사했다"며 "승무원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인지, 서비스를 받는 직업인지조차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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