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은 작창가의 고뇌와 함께 진화한다"…'베니스의 상인들' 한승석·장서윤·박정수

입력
2023.06.06 04:30
17면
구독

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 8~1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한승석 작창, '작창가 프로젝트' 장서윤·박정수 작창보 참여

국립창극단의 '베니스의 상인들' 작창을 맡은 한승석(맨 오른쪽)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와 작창보로 작업을 도운 장서윤(가운데), 박정수 작창가. 국립창극단 제공

국립창극단의 '베니스의 상인들' 작창을 맡은 한승석(맨 오른쪽)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와 작창보로 작업을 도운 장서윤(가운데), 박정수 작창가. 국립창극단 제공

"관성적으로 만들지 않도록 이끌어 주셨어요. 전통적 구조와 어법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텍스트에 맞는 다른 방법을 떠올리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주셨죠."(장서윤)

"뭔가 한승석스럽지 않은 음악인데? 싶으면 이 친구들이 만든 음악일 거예요. 음악 외적인 텍스트 분석에서도 아주 뛰어나요."(한승석)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을 중심으로 한국 고유의 음악극인 창극이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 3월 웹툰을 무대화한 '정년이'에 이어 8~1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베니스의 상인들'도 이미 전석 매진됐다.

인기 공연 장르로서 창극의 부상은 그리스비극, 서양 희곡, 경극 등 다양한 소재를 흡수한 외연 확장, 그리고 그 다채로운 이야기를 극의 흐름에 맞게 담아내 온 작창(作唱)의 진화 덕분이다. '베니스의 상인들'의 작창을 맡은 한승석(55)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와 작창보(補)로 함께 참여한 차세대 작창가 장서윤(32), 박정수(24)를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작창의 '현재'와 '미래'인 이들은 서로를 향한 의지와 기대가 두터웠다.

소리를 만든 사람의 시간과 경험이 녹아드는 '작창'

'베니스의 상인들' 작창팀 장서윤(왼쪽부터), 한승석, 박정수. 국립창극단 제공

'베니스의 상인들' 작창팀 장서윤(왼쪽부터), 한승석, 박정수. 국립창극단 제공

작창은 한국음악의 다양한 장단과 음계를 활용해 극 흐름에 맞게 소리를 짜는 작업. 창극 100년사에서 불과 10여 년 전까지 작창은 판소리 다섯 바탕 선율에 가사를 붙인다고 해서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로 폄하되곤 했다. 하지만 국립창극단이 2010년대 들어 현대적 창극을 선보이면서 작창은 판소리가 중심인 창극 전반의 정서를 이끄는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 등의 전작으로 '작창의 신'이라는 별칭을 얻은 한 교수는 "창극의 시대적 변신은 반가운 일이지만 창극의 소재가 다양해질수록 작창가의 고민은 깊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작창 과정에 대해 "수천 갈래의 음악 지도가 마음속에 그려져 있어야 한다"며 "노랫말의 어감과 문장의 리듬이 판소리 장단만으로 풀리지 않으면 민요, 무속장단 등 다양한 음악 요소를 자연스럽게 차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베니스의 상인들'에 대해서는 "전작과 결이 다른, 서양 고전문학 원작을 만났는데 젊은 감각이 큰 도움이 됐다"고 후배 작창가들을 치켜세웠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베니스의 고리대금업자인 유대인 샤일록과 젊은 상인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건 재판, 그리고 안토니오의 친구 바사니오와 벨몬트섬의 상속녀 포샤의 로맨스를 다룬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샤일록을 베니스 무역을 주도하는 대자본가로, 젊은 상인 안토니오를 베니스의 소규모 상인들이 모인 조합의 리더로 설정했다.

이들은 이 작품에서 역대 창극단 작품 중 최다인 62곡을 완성했다. 한 교수는 장서윤이 책임진 벨몬트 소개 대목을 예로 들면서 "나라면 절대로 생각 못 했을 노래"라며 "시김새(각각의 음을 꾸미는 장식음) 등이 작창가가 배워 온 음악의 흐름 속에서 나오는데 전통에 치우쳐 있는 나와 달리 두 사람은 여러 장르의 음악을 감각 있게 잘 활용한다"고 말했다.

'독학 작창가'의 현재와 '국립창극단 키드'의 미래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의 샤일록을 맡은 소리꾼 김준수(왼쪽)와 안토니오를 맡은 유태평양. 국립창극단 제공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의 샤일록을 맡은 소리꾼 김준수(왼쪽)와 안토니오를 맡은 유태평양. 국립창극단 제공

한 교수는 서울대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1993년 사물놀이패 ‘이광수와 노름마치’ 창단멤버로 프로 국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완창한 후에는 새로운 전통에 눈을 돌리면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과 2014년 '바리 어밴던드(abandoned)'를 발표했다. 같은 해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로 본격적으로 독학으로 작창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된 장서윤, 박정수는 한 교수를 비롯한 멘토들의 도움을 받아 성장 중이다. 서울대 음대와 동대학원에서 판소리를 전공한 장서윤은 마당놀이와 창극 등에 출연한 소리꾼이기도 하다. 그는 작창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요즘을 사는 사람으로서 요즘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내가 익숙하고 오래 익혀 온 판소리라는 음악적 기법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양대 음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 재학 중인 박정수는 국립창극단의 작품을 보고 자라며 '작창'의 세계를 알게 된 '국립창극단 키드'다. 그는 "인생의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을 한계 없이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작창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소연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