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서 다수의 '또 다른 정유정'을 잉태하는 사회

입력
2023.06.07 19:00
25면

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삽화=신동준기자

삽화=신동준기자


개인 일탈과 거리 먼 정유정 사건
범죄자 악마화하는 사회가 문제
개인 비난보다 구조적 대책 필요

정유정은 인터넷 과외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만난, 과외 선생 자리를 구하는 또래 여성을 살해하였다. 그녀는 과외 앱을 통해 접근하였고, 학부모로 행세하며 아이를 보낼 테니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중고로 구입한 교복을 본인이 입고 학생인 것처럼 피해자 집을 찾아갔다. 그날 살인이 발생했다. 이후 그녀는 마트에 들러 흉기와 락스, 비닐봉지 등을 구입하였고, 본인의 집에서 여행용 가방을 챙겨 피해자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시신을 훼손하여 여행용 가방에 넣고 택시를 탔던 그녀는 본인이 자주 산책하던 강가의 숲속에 시신을 유기했다. 택시기사의 불편한 촉(觸)이 이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그렇게 이 살인 사건은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녀의 살인은 기존의 다른 살인사건과 많이 다르다. 우발적이긴 하나 맨정신이었고, 충동적이었다 하더라도 범행 후에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은 평온했다. 대다수의 살인은 우발적이고 충동적이며, 음주상태나 흥분상태에서 살인으로 이어진다. 여성 살인자는 오랫동안 폭력의 피해자로 살아오다 사건 당일 죽지 않기 위해 살인을 행했던 경우가 많다. 피해자와의 진하고 복잡한 관계성이 읽히지만, 이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없음'이다.

그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사건 이후 언론은 그녀의 사이코패스 점수를 기대한다거나, 기존의 여자 살인범과 비교하여 분석하기도 한다. 동시에 그녀가 학교 졸업 이후 5년 동안 무직으로 지냈다면서 혼자 범죄물에 빠져 지낸 고립적 생활을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코패스 점수가 높은 것이 그녀의 범죄 동기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그녀가 얼마나 이상하고, 위험한 사람인지를 부각하는 데에는 활용할 수 있겠지만 왜 그런 위험한 사람이 되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단서는 제공하지 못한다.

긴 시간을 무직으로 지냈다는 것이 그녀만의 고유한 특징이던가? 학업 전쟁에서 벗어나자마자 취업 스펙 전쟁을 맞이하는 세대는 녹록지 않은 평가 속에서 다시금 좌절의 시간을 보낸다. 그 좌절이 때로는 그들을 숨게 만든다. 얼마 전 서울 청년 중 13만여 명이 실직 혹은 취업난으로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다는 보도가 있었다. 서울 청년의 4.5%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은둔 생활이 정유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은 방에서 밖에 나가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를 뜻하는 히키코모리가 146만 명을 넘어섰으며, 더욱이 은둔형 외톨이는 20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회적 고민을 고백하기도 했다. 산속에 사는 자연인을 보여주는 우리의 교양 프로그램의 꾸준한 인기도 이러한 은둔을 향한 욕구를 반영한다.

그녀가 은둔 시간 동안 범죄물에 탐닉한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이었을까? 범죄 예능과 범죄 탐사보도가 대세인 세상이다. 즉, 범죄 비즈니스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 한 젊은 여성이 범죄물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살인자의 위험인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일반 사람이 하면 취미이고, 결과적으로 살인자가 된 자의 취미는 위험천만하다는 이중적 잣대보다는 범죄 비즈니스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반성이 먼저이다.

"살인하고 싶었다"는 정유정의 말, 학교 졸업 후 5년 동안 무직이었다는 사실, 범죄물을 좋아했다는 그녀의 취미에 매몰되어 헛다리 짚지 말라.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그녀가 영어 콤플렉스에 시달렸다는 것은 전 국민의 영어 콤플렉스의 단면이다.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가 학생의 엄마 역할을 하면서 관리받는 딸의 역할극을 했다는 점은 그녀의 결핍과 욕구가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었음을 보여준다. 과외 앱을 통해 과외 선생님의 집에 갔던 상황은 안전장치 없이 사람을 매칭하는 모든 앱 사용자와 개발자에게 경고를 보낸다. 범죄가 비즈니스가 되고 범죄자만을 악마화하는 프로그램을 소비만 하는 사회가 위험인자이다.

세상에 똑같은 살인자는 없다. 그러한 살인자가 살았던 사회가 있을 뿐이다. 은둔형 외톨이를 양산하고 방치하는 사회, 범죄물을 예능으로 소비하고 악마의 타자화에 익숙한 이 사회는 n명의 유사 정유정을 잉태하는 사회이다. 악마를 향한 비난보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걱정과 대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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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랑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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