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영아살해' 엄마 "막내 초등학교 졸업하면 자수하려했다"

'수원 영아살해' 엄마 "막내 초등학교 졸업하면 자수하려했다"

입력
2023.06.29 11:06
수정
2023.06.2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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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중앙일보에 자필 편지 보내
"아이들에게 밥 하는 법 알려주려 거짓말"
"생활고·산후우울증으로 범행...너무 미안해"
"신상털기 그만, 세 아이 보호해달라" 호소

경찰이 21일 수원시 장안구의 고씨 아파트를 압수수색한 후 아파트를 빠져나가고 있다. MBC 보도 캡처

'수원 영아살해' 사건 친모가 언론에 자필 편지를 보내 "남은 세 아이가 걱정돼 자수하지 못했다"며 "셋째가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자수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남은 아이들 놀랄까.. 시간 벌려 거짓말"

중앙일보는 29일 수원 영아살해 사건 친모인 고모(35)씨가 전날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변호인을 통해 전달한 자필 편지를 보도했다. 고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남자와 여자 아기를 출산하고 곧바로 살해한 뒤, 시신을 자신이 살고 있는 수원시 아파트 냉장고에 보관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고씨는 자녀 삼남매(12세, 10세, 8세)가 있다.

고씨는 편지에서 "(아기들이) 매일 매일 생각났다. 셋째 아이가 초등학교만 입학하면 자수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입학하고 보니 엄마 손길이 아직 많이 필요한 것 같아서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자수해야지 늘 생각했다”고 썼다.

고씨는 수원시 관계자들이 지난 5월 26일 고씨의 아파트를 처음 방문했을 때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 개인 정보가 도용돼서 혼동된 것 같다"고 거짓말 한 이유도 밝혔다. 그는 "남은 아이들이 갑작스레 엄마와 헤어지게 되면 얼마나 놀랄까.. 또 씻는 법, 밥하는 법, 계란프라이 하는 법, 빨래 접는 법, 정리하는 법 등... 뭐라도 혼자 할 수 있는 걸 알려주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첫 조사 때 거짓말을 하고 이런 걸 알려주는 시간을 벌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고씨 부부는 지난 21일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자 범행을 자백했다.

MBC는 고씨가 지난달 26일 수원시 관계자들에게 "아이를 낳은 적이 없고, 개인정보가 도용돼 혼동된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MBC 보도 캡처

범행 동기로는 생활고와 산후우울증을 언급했다. 고씨는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사랑받고 살아갔으면 좋았을텐데, 생활고와 산후우울증에 방황하던 제게 찾아와 짧은 생을 살다 간 두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적었다. 고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막내의 어린이집 원비도 500만원 이상 납부하지 못한 상태라고 전해졌다.

"남편, 아이들, 부모님 신상털기, 괴롭힘 그만"

고씨는 남은 아이들을 보호해달라고도 호소했다. 그는 "자백 후 방송에 사건이 보도돼 아이들은 하교 후 집으로 못 가고 피신하여 지금까지 학교를 못 가고 있다"며 "아이들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는데 아이가 생각해서 보낸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과도한 신상털기가 시작되었다. 제발 그만 연락해달라. 아이 친구들을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어 "저의 죄는 잘못한 만큼 달게 받겠다. 다만 저로 인해 남편, 아이들, 부모님 신상을 털고 더이상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제발 보호해달라"고 적었다.

그는 "평생 먼저 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며 살겠다"고 했다. 남편 이모(41)씨는 여전히 "아내가 낙태한 줄 알았다"며 출산과 살해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고씨의 변호인인 유형빈 변호사는 중앙일보에 “영아 살해 사건은 보통 사람들이 느껴보지 못한 극도의 흥분 상태, 수치심, 압박감이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이 대부분”이라며 “고씨가 남편에게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의지가 워낙 강했고, 베이비박스에 두고 오면 유기죄로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 결국 해선 안 될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고씨에 대해 범행 당시와 현재의 심리를 분석하는 조사를 벌인 후 살인 또는 영아살해 혐의로 30일 수원지검에 송치할 방침이다.

< 수원 영아 유기 친모 자필 편지 전문 >

안녕하세요. 저는 수원 영아 사건의 친모입니다.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사랑받고 살아갔으면 좋았을텐데, 생활고와 산후우울증에 방황하던 제게 찾아와 짧은 생을 살다 간 두 아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매일매일 생각이 났습니다.

셋째 아이가 초등학교만 입학하면 자수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입학하고 보니 엄마 손길이 아직 많이 필요한 것 같아서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자수해야지 늘 생각했었습니다.

수원시에서 연락이 온 뒤 경찰분들께 신고하였고, 이렇게 남은아이들이 갑작스레 엄마와 헤어지게 되면 얼마나 놀랄까.. 또 씻는 법, 밥하는 법, 계란프라이 하는 법, 빨래 접는 법, 정리하는 법 등... 뭐라도 혼자 할 수 있는 걸 알려주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첫 조사 때 거짓말을 하고 이런 걸 알려주는 시간을 벌려고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제가 구속될 거란 생각에 남은 아이들에게 엄마없이도 밥이라도 챙겨먹을 수 있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방송에서 비슷한 사건들이 보도될 때마다 먼저 떠나보낸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여러 번 자수하고 싶었지만 남은 세 아이가 아직 어리고 걱정되어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오랫동안 방치하여 먼저 간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에 가슴이 너무 아프고 미안합니다.
수요일 날 자백 후 당일 날 바로 방송에 사건이 보도되고 집에 기자분들이 너무 많이 계셨고 아이들은 하교 후 집으로 못 가고 피신하여 지금까지 학교를 못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는데 아이가 생각해서 보낸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과도한 신상털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제발 그만 연락해주세요. 아이 친구들을 이용하지 말아주세요.
저의 죄는 잘못한 만큼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저로 인해 남편, 아이들, 부모님 신상을 털고 더이상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을 제발 보호해주세요.
제발 저희 아이들 상처 받지 않도록 죄 없는 남편과 아이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평생 먼 저 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며 살겠습니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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