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만 남은 개들 구조했더니... 학대자는 또 다른 개를 길렀다

입력
2023.08.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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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학대격리 기준 허술, 학대자 소유권 제한 안돼


전북 김제시의 한 논에서 갈비뼈와 치골이 드러날 정도로 방치된 채 길러지던 개가 동물단체 활동가들이 준 사료를 허겁지겁 먹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전북 김제시의 한 논에서 갈비뼈와 치골이 드러날 정도로 방치된 채 길러지던 개가 동물단체 활동가들이 준 사료를 허겁지겁 먹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갈비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굶은 개들을 구조한 뒤 같은 자리에 다시 가보니 또 다른 개들을 기르고 있더라고요. 동물 학대자가 동물을 다시 기르지 못하도록 동물보호법이 빨리 개정돼야 합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올해 3월 한 시민으로부터 전북 김제시의 한 논 가운데 밭지킴이 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이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방치돼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활동가들이 현장에 가보니 개 1마리는 이미 죽어 있는 상태였고, 나머지 5마리는 1m도 안 되는 목줄에 묶인 채였다. 다른 1마리는 목줄도 없었지만 도망가지도 못했다. 고무로 만들어진 집은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밥그릇에는 흙먼지만이 가득했다.

최민정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죽은 개는 4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였다"며 "죽은 지 꽤 지난 듯 보였고, 다리에는 끈으로 묶여 생긴 상처가 괴사한 흔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개들도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마르거나, 목줄이 조여 오면서 생긴 상처로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밥과 물그릇에는 마실 수 없는 녹조가 낀 물만 남아 있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밥과 물그릇에는 마실 수 없는 녹조가 낀 물만 남아 있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활동가들과 우연히 마주친 개 소유주는 개 사체를 땅에 묻고, 죽은 개의 목줄을 태연하게 다른 개의 목에 걸었다. 본인 소유 땅이라도 개를 묻는 건 불법이라고 얘기해도 소용없었다. 개 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하는 통에 활동가들은 상해 흔적이 확실한 3마리만 구조한 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후 소유주가 없는 틈을 타 죽은 개의 사체를 꺼내 장례를 치러줬다. 동물자유연대는 개 소유주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현재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같은 자리에서 또 다른 개들 방치하며 길러

전북 김제시의 한 논에서 길러지던 강아지는 목줄이 꼬여 움직이지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전북 김제시의 한 논에서 길러지던 강아지는 목줄이 꼬여 움직이지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활동가들은 이달 초 남은 개들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인 상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4마리는 현장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는데 이 개들은 사라지고 또 다른 개 5마리를 똑같이 방치해 기르고 있던 것이다. 이 중 2마리는 제대로 된 밥과 물을 먹지 못해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고, 손바닥 크기만 한 강아지는 짧은 목줄이 꼬이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폭염 속에서도 이들에게는 마실 물 한 모금도, 몸을 식힐 그늘 한 점 없었다.

김제시치료가 시급한 3마리를 격리 조치해 치료 중이며 현장에 남겨진 2마리의 건강과 관리 상태를 주기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제시 공무원들이 17일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사료와 물은 없는 상태였다. 김제시는 개 소유주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추가 고발을 검토 중이다. 신경은 거제시 농업기술센터 축산진흥과 동물보호팀장은 "소유주가 워낙 완강하게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남은 개들을 구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수시로 현장을 체크하고, 소유권 포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대자가 또 다른 동물을 기를 수 있어

전북 김제시의 한 논에서 길러지는 개가 갈비뼈가 드러난 채 사료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전북 김제시의 한 논에서 길러지는 개가 갈비뼈가 드러난 채 사료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난 3월 전북 김제시 논에서 구조된 개들이 동물자유연대 입양센터인 온센터에서 지내고 있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난 3월 전북 김제시 논에서 구조된 개들이 동물자유연대 입양센터인 온센터에서 지내고 있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는 앞서 개를 망치로 수차례 때리고 다친 동물을 방치해 죽게 한 서울시 마포구의 동물카페에서 개 7마리, 고양이 10마리를 격리조치해 보호 중인데 학대자가 격리 조치한 개와 고양이를 다시 데려가기 위해 벌인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상태다. 마포구는 지난달 중순 격리 처분을 유지해달라며 재항고한 상태다.

이 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①피학대 동물을 격리하는 조건이 실효성이 없고 ②동물학대자가 동물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다시 돌려줘야 하며 ③물학대자의 동물 소유권 제한이나 박탈이 현행법상 불가능해서다. 조건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현장에서는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격리 대상이 달라지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구조 대상 개체 수가 많은 경우 피학대 동물을 격리할 공간이 없는 것도 긴급격리 조치 발동을 저해하는 원인이라는 게 동물단체의 설명이다.

송지성 동물자유연대 구조팀장은 "피학대동물 긴급격리 조치를 할 때 고의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최소한의 사육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 등으로 제한돼 있다"며 "같은 현장에 남은 동물들도 제대로 관리받지 못할 게 뻔한데 이들을 구조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송 팀장은 "동물학대자의 소유권을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학대자로부터 동물을 구조해도 또 다른 동물을 데려와 기르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선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하는 민법부터 개정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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