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인생 그린 연작 판화, 최초의 미술 저작권법 만들다

입력
2023.08.22 04:30
15면

<28> 그림 보호 재판 청구, 저작권 인정 시초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윌리엄 호가스, '유행하는 결혼(Marriage A-la-Mode)' 연작 시리즈(1743-1745), 69.9x90.8cm,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첫 번째 ‘결혼계약’ 장면이다. 귀족은 가계도(족보)를 펼쳐 보이며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공사 대금을 요구하고 있고, 상인은 결혼계약서를 검토하고 있다. 신랑의 목덜미에 매독을 암시하는 큰 점이 있고, 신부는 결혼반지를 수건에 넣고 장난치고 있다.

윌리엄 호가스, '유행하는 결혼(Marriage A-la-Mode)' 연작 시리즈(1743-1745), 69.9x90.8cm,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첫 번째 ‘결혼계약’ 장면이다. 귀족은 가계도(족보)를 펼쳐 보이며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공사 대금을 요구하고 있고, 상인은 결혼계약서를 검토하고 있다. 신랑의 목덜미에 매독을 암시하는 큰 점이 있고, 신부는 결혼반지를 수건에 넣고 장난치고 있다.


윌리엄 호가스, '유행하는 결혼(Marriage A-la-Mode)' 연작 시리즈(1743-1745), 69.9x90.8cm,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시리즈의 마지막 장면이다. 남편을 살해한 불륜남이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기사를 읽고 아내는 자결했다. 왼쪽의 아버지는 죽은 딸의 손에서 반지를 빼고 있고, 뺨에 매독 점이 있는 아기가 죽은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당시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탓에 남자 아이들이 어릴 때 여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윌리엄 호가스, '유행하는 결혼(Marriage A-la-Mode)' 연작 시리즈(1743-1745), 69.9x90.8cm,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시리즈의 마지막 장면이다. 남편을 살해한 불륜남이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기사를 읽고 아내는 자결했다. 왼쪽의 아버지는 죽은 딸의 손에서 반지를 빼고 있고, 뺨에 매독 점이 있는 아기가 죽은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당시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탓에 남자 아이들이 어릴 때 여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막장드라마’라고 하면 불륜, 패륜, 출생의 비밀, 불법사기 등 온갖 비윤리적인 사건들이 개연성 없이 소란스럽게 펼쳐지는 TV드라마가 생각난다. 원래 ‘막장’은 석탄 광산의 맨 끝부분을 뜻한다. 더는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벽이 막장이다. 비누세제 협찬으로 만든 라디오극에서 출발한 미국의 소프오페라, 선정성으로 유명한 남미의 텔레노벨라,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 드라마의 한 장르가 된 막장드라마 등은 모두 ‘욕하면서 즐겨 보는’ 콘텐츠다. 이런 드라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서양미술사에서 예술로 인정받는 ‘막장드라마’가 있다. 영국 18세기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연작 시리즈들이다. 호가스는 최초의 미술저작권을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막장드라마와 미술저작권이 어떻게 만났을까?

돈 문제로 혼란한 사회를 풍자한 최초의 시사만평가

윌리엄 호가스, '남해금융사기', 판화, 22.2x31.8cm, 1721년.

윌리엄 호가스, '남해금융사기', 판화, 22.2x31.8cm, 1721년.

윌리엄 호가스는 1697년 가난한 라틴어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은세공 공방에서 도제교육을 받으며 소년 가장으로 살아야 했다. 그의 아버지가 빚을 내 카페 사업을 했는데 채무상환을 못해 5년 동안 감옥에 수감됐기 때문이다. 1700년대 초에 무슨 채무상환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당시 영국 중산층에게 돈 문제는 심각했다. 종교개혁 이후의 대항해 시대에는 무역업 번성으로 부유한 신흥 부르주아 계층이 늘었다. 신분에 따라 정해진 삶을 살았던 것과 달리 돈이 신분을 바꿔 줄 수 있음을 목격한 서민들이 돈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남해포말사건(South Sea Bubble)이다. 호가스가 14세가 되던 1711년, 영국은 여러 전쟁으로 국채를 남발, 국가재정이 어려워지자 '남해회사'를 설립해 노예무역 독점권을 주는 대신 부실국채를 매입하도록 했다. 그러나 1718년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판로가 막히자 남해회사는 일반인들에게 주식을 팔며 주가조작을 시작했다. 1720년 상반기에만 1,000%에 달하는 주가 폭등이 일어났다. 위기를 느낀 정부가 서둘러 '거품법'을 제정하며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결국 남해회사는 파산했다. 돈이라는 꿈을 꾸며 대출까지 받아 남해회사의 주식을 샀던 사람들은 절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만유인력 법칙’의 아이작 뉴턴도 한화 가치 약 20억 원의 손실을 봤다. 전 재산을 날린 후 뉴턴은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1721년 24세의 청년 호가스는 이 광기를 '남해금융사기' 그림으로 남겼다. 아수라장이 된 광장에서 위험한 회전목마에 오르고 떨어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풍자한 이 판화는 영국 최초의 ‘시사만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무렵 호가스는 영국 왕실 화가였던 제임스 손힐(훗날 호가스의 장인)의 화실을 오가며 다양한 출판물 삽화를 그렸다. 당시 영국은 아직 제대로 된 미술아카데미가 없었고 몇몇 화가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인트마틴 레인 아카데미’와 같은 화실이 교육기관과 상업미술회사 역할을 했다. 모두가 남해회사 ‘버블’ 여파로 힘들어하던 1724년, 화실의 재무담당 직원이 모든 수강료를 횡령하며 도주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돈 때문에 감옥살이를 했던 아버지, 돈 때문에 난리가 난 시민들, 돈 때문에 난리가 난 화실의 일까지 경험한 청년 호가스에게 돈은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더는 당하고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시리즈 판화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미술저작권법

청년 시기의 호가스는 상업미술가로 제법 알려졌지만 정작 자신은 화가라는 예술가, 더 나아가 미학서를 출간하며 학자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실제로 호가스는 이후에 초상화, 역사화 등 많은 유화 작품을 남겼고, ‘세인트마틴 레인 아카데미’를 영국 왕립 아카데미 초기 단계로까지 성장시킨 미술교육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막 시작되던 1727년, 30세의 호가스는 자신의 고용주 조슈아 모리스를 고소했다. 모리스는 “호가스, 너는 화가가 아닌 판화도공일 뿐, 제대로 완성이나 하라!”면서 계속 호가스의 완성작을 거부하며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호가스는 주변인 진술 및 여러 증거를 제출하였고 이듬해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자신의 명예 회복과 정당한 노동의 대가에 확고한 의지가 남달랐다.

이후 1731년 호가스가 34세가 되던 해 ‘대박’이 났다. 그의 첫 번째 연작 ‘창녀의 과정’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호가스의 연작 시리즈는 요즘으로 치면 영화 제작을 위한 ‘스토리보드’와 같다. 글자 없는 그림책이자 다음 회가 몹시 기다려지는 인기 연속극이었다. ‘창녀의 과정’은 시골 소녀가 포주의 꾐에 빠져 창녀가 돼 이른 나이에 성병으로 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여섯 장의 판화로 엮은 시리즈다. 한 여성의 비극적 인생을 희극적으로 재현한 이 시리즈는 볼거리 없던 서민들에게 인기였다. 2년 후 그는 두 번째 연작 ‘난봉꾼의 과정’을 시작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인 ‘난봉꾼’이 임신한 약혼녀를 배신하고 점차 향락과 도박에 빠져 결국 정신병동에서 생을 마감하는 내용으로 이번에는 한 남성의 비극적 인생을 담았다. 엄청난 대중적 인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그의 그림을 허락 없이 베껴 파는 해적판이 나돌기 시작했다. 가만히 당하고 있을 호가스가 아니다. 그리하여 1735년 38세의 호가스는 또다시 영국 법원을 찾았고 마침내 그는 ‘호가스법(Hogarth Act)’을 탄생시켰다. 이 ‘판화가 저작권법’은 시각 저작물을 다루는 최초의 미술 저작권법이자 창작자의 저작권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다.

오늘날 우리에게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인식이 크지만 저작권법의 시작은 그 반대였다. 15세기 등장한 인쇄술로 인해 상위층의 전유물이었던 책이 대중화되는 것을 우려한 교회는 인쇄기 사용을 금지했다. 그럼에도 해적판 유통을 막을 길이 없자 1557년 영국왕실이 인정한 인쇄 길드(중세 유럽의 동업자 연합)에 독점권을 부여하는 '출판특허제도'가 제정됐고, 이후 1710년에 제정된 '앤 여왕법'은 영국도서출판조합이 복제권(copyright)을 독점하는 형태였다. 당시 저작권, 즉 ‘카피라이트’는 출판업자의 시장 독점권이었을 뿐, 창작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호가스가 1735년에 동료 판화가들을 이끌고 국회를 찾아가서 만들어낸 '독창적 디자인이 포함된 판화’를 위한 보호법은 상당히 현대적인 저작권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앉아서 당하지 않겠다는 호가스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애견 '트럼프'가 있는 윌리엄 호가스의 자화상, 90x69.9cm, 1745년, 영국 런던 테이트 갤러리. 타원형 캔버스 아래에 셰익스피어, 스위프트, 밀턴의 책이 있고, 팔레트에는 호가스의 미학서를 상징하는 '미와 우아함의 선'이 새겨져 있다.

애견 '트럼프'가 있는 윌리엄 호가스의 자화상, 90x69.9cm, 1745년, 영국 런던 테이트 갤러리. 타원형 캔버스 아래에 셰익스피어, 스위프트, 밀턴의 책이 있고, 팔레트에는 호가스의 미학서를 상징하는 '미와 우아함의 선'이 새겨져 있다.


돈과 명예, 사랑에 진심이었던 화가

판화저작권법 제정 이후, 호가스는 또 한번 놀라운 일을 벌였다. 오늘날의 회원제 웹진과 유사한 형태로 일반 노동자의 두 달 월급에 가까운 돈을 낸 회원에게만 6편의 작품을 순서대로 받아볼 수 있도록 해 큰돈을 벌었다. 대중매체가 없던 시절, 호가스의 그림은 TV드라마이자 영화였고 소설이자 만화였다. 이런 그의 행보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화가들도 있었는데 호가스는 그때마다 지지 않고 반박했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평론가의 얼굴을 넣은 풍자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괴팍한 구두쇠 같은 인물은 아니었다. 돈 버는 일에 적극적이었지만 베푸는 일에도 진심이었다. 그는 여러 공방 운영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연극계 친구도 많았다. 원만한 대인관계와 넓은 인맥은 그의 법정 소송과 저작권법 제정에 큰 힘이 됐다. 그는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스승 손힐은 호가스가 돈도 없고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기 딸과의 결혼을 크게 반대했다. 호가스 부부는 도망치듯 따로 나와 살아야 했다. 이후 호가스가 연작 시리즈로 큰돈을 벌게 되자 비로소 사위로 인정한 장인 손힐이 미울 만도 한데, 호가스는 스승이자 장인에게 언제나 예의 바르게 대했다고 한다. 평생 아내를 사랑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호가스는 당시 고아원이었던 런던 파운들링 병원의 후원자가 돼 많은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봤다. 1764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 자신을 보살핀 하녀에게 “그동안의 노동에 감사한다”는 편지와 함께 상당한 유산을 따로 챙겨줄 정도로 온화한 사람이었다.

무엇이 예술이 되는가?

서양미술사에서 호가스를 대표하는 작품은 그의 세 번째 연작 시리즈 ‘유행하는 결혼’이다. 돈이 필요한 몰락 귀족의 아들과 돈만 많은 상인의 딸이 애정 없는 정략결혼을 한 후, 남편은 미성년 창녀와 함께 성병을 치료하기 위해 돌팔이 의사를 찾아가고, 흥청망청 파티를 즐기던 아내는 결혼중매인 변호사와 불륜 관계가 된다. 아내의 불륜 현장을 덮친 남편을 불륜남이 살해하고, 그로 인해 불륜남이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소식에 아내는 음독 자살을 한다. 죽은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아기는 매독에 감염돼 있고, 죽은 딸의 손에서 반지를 빼는 아버지와 앙상하게 뼈만 남은 개가 있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담당하는 명작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막장드라마의 소재를 가진 예술작품은 많다.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부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고전 명작이라 불리는 이유에 대해 여러 다양한 답변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예술작품을 구성하는 ‘내용’과 ‘형식’의 완성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용’ 측면에서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이 필수적이다. 자극적인 서사가 지나간 자리에 곱씹어 생각할 만한 ‘인간과 시대’에 대한 관조가 있어야 한다. ‘형식’ 측면에서는 회화적 양식, 영화적 문법, 소설의 형식 등 장르적 완성도가 중요하다.

복수를 꿈꾸는 여주인공 뺨에 점 하나 찍었다고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우기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2008)은 재미있지만 뭔가 부족하다. 그러나 아기의 뺨에 있는 매독(성병)을 상징하는 호가스의 점 하나는 웃음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호가스는 돈 때문에 막장이 된 시대를 고발하는 사회의식, 자기 창작물을 법으로 지켜낸 예술가의 자의식이 확고했다. 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으로 그려낸 그의 ‘막장드라마’는 그렇게 미술사에 남았다.


미술교육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