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순위·수익 만든다…K팝·트로트 '음소거 재생'

입력
2023.09.01 04:30
수정
2023.09.01 15:2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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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 등 '무음 재생' 차트 집계 제외 발표
비정상적 감상 ... 음악 생태계 위협
음원 사재기 수단... 기획사 '스밍 이벤트' 유혹에 일부 팬들도 무음 재생
"차트 교란, 음원 수익 배분 왜곡 바로잡자"... 소리 '1'로 하면? 실효성은 과제

소리 크기를 '0'으로 해두고 음원플랫폼에서 음악을 재생하는 무음 재생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소리 크기를 '0'으로 해두고 음원플랫폼에서 음악을 재생하는 무음 재생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소리 크기를 '0', 즉 무음으로 설정한 뒤 음원플랫폼에서 노래를 재생하는 '무음 재생과의 전쟁'이 음악업계에서 시작됐다.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음콘협)를 비롯해 국내 최대 음원플랫폼인 멜론은 무음 재생의 차트 집계 제외 계획을 최근 잇따라 발표했다. 소리를 완전히 소거한 뒤 음원을 재생하는 건 비정상적 감상이다. 무음 재생은 음원 시장에서 일주일에 최소 1억 건 이상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정 가수의 노래 순위 올리기와 저작권료 편취가 그 배경으로 꼽힌다. 이렇게 '억' 소리 나게 그릇된 소비가 음악 생태계를 위협한다고 보고 음원 업계가 무음 재생 퇴출에 나선 것이다.


"총사용량의 7%가 무음 재생"

멜론은 10월 1일부터 일간, 주간, 월간 등 모든 차트에서 무음 재생 건을 집계에서 제외한다. 멜론을 비롯해 지니뮤직 등에서 자료를 받아 통합 순위를 매기는 써클차트를 운영하는 음콘협도 이르면 올 연말부터 스트리밍(재생) 차트 집계에서 무음 재생 건을 뺀다. 음콘협 관계자는 "무음 재생은 국내 음원플랫폼 총스트리밍 사용량의 7% 이상으로 추정된다"며 "청취자가 음악을 실제로 감상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 차트의 공정성을 위해 무음 재생을 집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음원플랫폼 구독자 업계 2위인 지니뮤직도 무음 재생 차트 집계 제외를 검토하고 있다. 지니뮤직 관계자는 "최근 일부 이용자가 음소거를 한 상태로 음원을 재생한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사용자의 무음 재생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걸로 확인돼 (차트 집계 제외에 대한) 기술적 적용을 논의한 뒤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플로는 이미 무음 재생을 차트 집계에서 걸러내고 있다.

음콘협은 국내 두 음원 플랫폼을 통해 일주일간 이뤄진 무음 재생 자료를 받았고 그 결과 무음 재생이 약 1억 건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음원플랫폼이 5곳 이상인 것을 고려하면 무음 재생은 한 달에 4억 건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비정상적 소비로 음원시장이 오염됐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공폰 등 동원해 '무음 총공'

업계는 무음 재생을 음원 사재기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 감상이 아니라 음원 순위를 올리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소리를 완전히 죽이고 특정 곡을 반복 재생하는 일이 대규모로 벌어지는 배경이다. 차트를 교란하는 무음 재생은 K팝과 트로트 등 팬덤이 두터운 음악 장르의 일부 열성 팬들로부터 이뤄지기도 한다. 3세대 K팝 아이돌그룹 중 한 팀을 좋아했다는 A씨는 "신곡 나오면 일주일이 가장 중요해 알람 맞춰 놓고 시간마다 휴대폰과 (쓰지 않는) 공폰, 태블릿 PC등을 통해 동시에 '무음 스밍(스트리밍)'을 했다"며 "팬카페에 스밍 이벤트 공지가 떠 폴라로이드 사진을 준다고 해 더 적극적으로 (무음 스밍을) 돌렸다"고 말했다. A씨의 말을 듣고 한 K팝 아이돌그룹 팬카페를 확인해 보니, 지난 5월 올라온 음원 스트리밍 이벤트 공지엔 '여러 음원 사이트에서 많은 스트리밍을 할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기획사가 이런 식으로 팬들을 부추기면서 '스밍 총공(총공세)'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무음 재생이란 편법까지 동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무음 재생은 음원 사재기와 팬덤 '스밍 총공'의 수단"이라며 "차트 교란과 음원 수익 비례배분제 논란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저작권 수익 배분도 왜곡

무음 재생은 음원플랫폼 음원 수익 분배 왜곡 논란도 키우고 있다. 대부분의 음원플랫폼은 재생 총합의 점유율에 따라 저작권 수익을 나눠준다. 특정 가수가 두터운 팬덤을 등에 업고 '무음 스밍 총공'으로 재생 수를 쌓아 갈수록 팬층이 얇은 가수의 음원 수익은 점점 줄어든다. 이용자별로 들은 음악 횟수를 따져 그것에 맞게 사용료를 나누는 게 아니라 점유율에 따라 수익이 배분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핀란드 음악가협회가 세계 최대 음원플랫폼 스포티파이의 프리미엄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2017)에 따르면, 비례배분 방식에선 상위 0.4%의 음원이 전체 저작권료 수익의 10%를 가져간다. 음원 유통 업계 한 관계자는 "이런 부작용 때문에 저작권 수익 편취를 위한 무음 재생도 벌어지고 있는 걸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무음 재생이 저작권료 수익 편중 문제로 또 다른 편법을 낳으며 음악 생태계를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하는 셈이다.

음악 생태계 개선을 위해 무음 재생 집계 제외 도입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계는 여전하다. 소리를 조금만 키워 '1'로 재생하면 이 규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사재기 작전세력과 일부 팬들의 스밍총공을 막는 데 무음 재생 철퇴는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공정한 수익 배분과 차트 왜곡을 막기 위해 좀 더 실효성 있는 시스템 변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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