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다가오는데... 지진 피해 현장선 “정부는 어디 있나” 분노

‘골든타임’ 다가오는데... 지진 피해 현장선 “정부는 어디 있나” 분노

입력
2023.09.11 20:30
수정
2023.09.12 00:3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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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나흘째, 사망자 2600명 넘어
정부, 각국 지원 손길에도 소극적 대처
여진 속 피해자들, 직접 이웃 구조 나서

10일 모로코 오리가네에서 구조대원들이 지진으로 무너진 잔해 속의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 여성이 눈물을 터트리고 있다. 오리가네=로이터 연합뉴스

규모 6.8의 강진이 덮친 지 사흘째인 10일(현지시간), 북아프리카 모로코 남부 산악지대에 ‘정부 구조대’는 보이지 않는다. 각자도생의 현장일 뿐이다. 지진 피해가 집중된 외딴 산악 지역은 도로마저 끊겨 구조와 지원의 손길이 닿기 힘든데도, 모로코 정부는 국제사회의 도움 제공에 소극적이다. ‘불쌍한 나라’로 비치는 걸 경계하는 탓이라는 해석이 많다. 모하메드 6세 국왕이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는 엄격한 ‘중앙집권 체제’가 신속한 대응에 걸림돌이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사이 통상 72시간으로 여겨지는 ‘구조 골든타임’만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지진 사망자가 최대 10만 명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유럽·지중해 지진센터(EMSC)에 따르면 지진이 발생한 8일 밤 이후 모로코에는 이날까지 25차례의 여진이 이어졌다. 최대 몇 달 동안 지속되면서 피해 규모를 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공백’에…곳곳서 맨손 땅파기

10일 모로코 중부 아미즈미즈 인근의 한 마을에서 시민들이 지진 피해자의 유해를 옮기고 있다. 아미즈미즈=AFP 연합뉴스

“우리는 ‘도움’을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입니다.”

모로코 강진 진원지 인근 아틀라스산맥의 마을 두아르트니르에 사는 주민 압데사마드 아이트 이히아(17)는 이날까지도 정부 구조대원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서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이같이 호소했다. 골든타임 시한이 다가오자 두아르트니르의 주민들은 사랑하는 이를 구하려 맨손으로 무너진 건물을 들어올렸다.

모로코 내무부는 지진 나흘째인 11일 오후 3시 현재 2,681명이 숨지고, 2,50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뿐이다. 구조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NYT와 영국 BBC방송은 “아틀라스산맥의 건너편, 마라케시에서 불과 1~2시간 떨어진 마을도 정부의 공식 지원을 거의 못 받는 처지”라고 짚었다.

마케라시 인근 타페가그테는 하룻밤 만에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됐다. 전체 주민 200명 중 90명이 숨졌다. 주민 하산은 “매몰자 구조를 위한 중장비도, 외부 전문가도 오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아미즈미즈에서 두 아이를 '주검'의 모습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아포우자르는 “난 집을 잃었고, 또 가족을 잃었다”며 “현장에 정부는 없었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무너진 집에 갇힌 가족의 도움 요청을 듣고, 이웃과 함께 땅을 파헤쳤으나 소용이 없었다.

겨우 잔해에서 생존자를 찾아내도 병원 이송을 기다리던 중, 끝내 숨지는 일 역시 빈번하다. 구급차는 드물었고, 부상자는 대부분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로 옮겨졌다고 NYT는 보도했다. 구호품도 턱없이 모자라다. 식수조차 부족하다는 아우성마저 곳곳에서 나온다.

국제 사회 지원엔 소극적인 정부

10일 모로코 알하우즈주의 물라이브라힘 마을에서 주민들이 지진 희생자의 시신이 든 관을 들고 옮기고 있다. 물라이브라힘=AP 연합뉴스

이번 지진을 ‘재난 이후의 재난’으로 키우는 건 모로코 정부라는 지적이 나온다. 폐쇄된 도로와 여진 탓에 수색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모로코 정부는 수색·구조를 위해 군대를 투입하고, 2,500명 이상의 의료진을 동원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조 상황은 알 길이 없다. NYT는 “모로코 정부는 지진 발생 이후 구조 활동 정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지진 이후 미국과 프랑스, 튀르키예 등 수십 개의 나라에서 지원 의사를 밝혔는데도 모로코가 받아들인 건 스페인과 영국,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불과하다. 모로코 내무부는 성명에서 “조율이 부족하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모로코 정부가 구조대를 완전히 막고 있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올해 2월 대지진 직후 국제사회의 도움을 적극 받아들였던 튀르키예와는 대조적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실비 브루넬은 “모로코는 수색과 구조 역량을 지녔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한다”며 “전 세계가 도와주려는 ‘불쌍한 나라’로 행동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르 피가로에 말했다.

‘전제 군주’가 늑장 대응에 한몫?

10일 모로코 중부 아다실 인근의 티흐트 마을에서 지진 피해자들이 천막에 앉아 있다. 아다실=AFP 연합뉴스

모하메드 6세 국왕의 안일한 대처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는 지진 발생 12시간 이상이 흐른 9일 오후에야 비상회의를 열었다. 국영방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성명을 발표했을 뿐, 아직까지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미아 에라주키 스탠퍼드대 교수는 영국 가디언에 “엄격히 통제되고 중앙집중화된 정부가 재난 대응을 방해하고 있다”며 “모로코에선 왕궁의 승인 없이 아무 일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NYT는 “2004년 모로코 동북부 알 호세이마 강진 때에도 총리가 국왕보다 먼저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관례’에 따라 정부 고위관계자가 현장에 뒤늦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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