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서 '겨울옷 치매 노인' 100분 헤맸지만… 아무도 돕지 않았다

용산역서 '겨울옷 치매 노인' 100분 헤맸지만… 아무도 돕지 않았다

입력
2023.09.22 10:00
수정
2023.09.25 12:32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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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씽, 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5> 단 3초, 당신의 관심이 있다면
한국일보, 치매 환자 배회 실험 진행
재킷에 '배회 인식표' 부착한 연극 배우
"집에 가야 하는데" 중얼거리며 다녀도
시민들 흘긋 보기만 할 뿐 대부분 무관심
직접 도움 요청해도 7명 중 3명만 응해
배우 "나도 깜짝… 치매 환자 서러움 이해"


편집자주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치매 실종 경보 문자. 매일 40명의 노인이 길을 헤매고 있다. 치매 실종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관심하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치매 실종자 가족 11명의 애타는 사연을 심층 취재하고, 치매 환자들의 GPS 데이터를 기반으로 배회 패턴을 분석했다. 치매 선진국의 모범 사례까지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8일 서울 용산역에서 치매노인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시민들이 반응하는지를 관찰한 실험이 진행됐다. 최주연 기자

8일 서울 용산역에서 치매노인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시민들이 반응하는지를 관찰한 실험이 진행됐다. 최주연 기자

사라졌던 할머니를 찾았다는 안도감도 잠시였다. 병원에서 마주한 할머니는 얼굴이 찢어지고 고관절 뼈가 부러진 상태였다. 올해 6월 경기 의정부에서 실종된 80대 여성 A씨. 6시간 만에 양주에서 발견됐지만, 피멍으로 얼룩덜룩한 얼굴을 본 가족들은 폭행 피해를 의심했다. 누군가 작정하고 때리지 않고서야 반나절 만에 이 지경이 될 순 없다고 봤다. 사건을 접한 시민들도 '누가 힘없는 치매 노인을 이렇게 때리냐'며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할머니를 때린 사람은 없었다. 할머니를 다치게 한 범인은 '무관심'이었다. 혼자서 6㎞를 걷는 동안 세 차례 넘어져 크게 다쳤지만 도와준 사람도 없었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도 없었다. 길 잃은 치매 노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보여준 사건이다.

시민 관심이 가장 든든한 안전망

실종 문자 발송, 지문 사전 등록, 배회 감지기 등 다양한 치매 환자 실종 예방책이 있지만, 가장 든든한 안전망은 시민들의 관심과 협조다. '치매 환자가 배회해도 안전한 마을' 조성이 목표인 일본은 지자체 단위로 실종 모의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길을 잃은 것 같은 치매 환자를 보면 먼저 말을 걸고 경찰에 신고하는 게 훈련의 핵심이다. 국제알츠하이머협회(ADI)도 "지난 10년간 치매 친화적인 지역사회가 돌봄 담론의 핵심으로 떠올랐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치매 노인에 관심이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일보는 이달 8일 서울 용산역에서 한국철도공사의 협조를 받아 '치매 환자 배회 사회실험'을 진행했다. 용산역을 실험 장소로 택한 이유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오가는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본보는 치매 환자 연극 경험이 있는 배우 권혁준씨를 섭외했다. 배우는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치매 환자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계절에 맞지 않는 두꺼운 재킷을 착용했다. 재킷 아래쪽에 중앙치매센터에서 보급하는 '배회 인식표'를 부착했다. 배우는 구부정한 자세, 느린 걸음, 중얼거림 등 배회하는 치매 환자의 특성을 드러내며 용산역 내부를 돌아다녔다.


아무도 그 노인을 도와주지 않았다

오전 11시 20분부터 오후 1시까지 100분간 진행된 실험은 치매 노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적나라하게 확인해 줬다. 치매 환자 역할을 맡은 배우가 직접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취재진은 용산역 3층 대합실 중앙 원형 안내데스크를 기준으로 3번 출구 방향을 A구역, 1번 출구 방향을 B구역으로 설정했다. 실험이 시작된 오전 11시 20분. 배우는 5분간 A구역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후 30분 A구역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카페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지만 사람들은 무심히 커피만 주문하고 기다릴 뿐 배우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8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에서 치매노인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시민들이 반응하는지를 관찰한 사회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최주연 기자

8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에서 치매노인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시민들이 반응하는지를 관찰한 사회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최주연 기자


A구역 벤치 사이를 배회하기 시작하자 배우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 노부부는 '저 사람 치매인가 봐, 불쌍하다'고 말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배우는 '집에 가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며 A구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흘긋 보기만 할 뿐 각자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에 집중한 일부 시민들은 배우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배우는 도와주는 시민이 나타나지 않자 오전 11시 55분 A구역 실험을 종료하고, B구역으로 이동해 낮 12시부터 실험을 재개했다. A구역과 마찬가지로 25분간 중얼거리며 배회했지만 말을 거는 사람은 역시 없었다. 한 중년 남성은 배우를 이상한 듯 쳐다봤지만 이내 관심을 돌렸고, 배우가 자신 앞을 계속 맴돌자 가방을 싸서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있었다.

직접 도움 요청해도... 절반 이상은 외면

1시간 넘게 용산역을 돌아다녔는데도 시민들 반응이 없자, 배우는 낮 12시 25분부터 B구역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말을 걸기 시작했다. 배우는 대합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집에 가야 하는데 집을 모르겠다, 애들이 기다린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총 7번 요청했지만, 3번만 도움을 받았다.

8일 서울 용산역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치매노인 역을 맡은 권혁준씨 재킷에 배회 인식표가 붙어 있다. 안재용 PD

8일 서울 용산역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치매노인 역을 맡은 권혁준씨 재킷에 배회 인식표가 붙어 있다. 안재용 PD

시민 2명은 배우에게 안내데스크를 가리켰다. 김석현(가명·25)씨는 "치매 환자인 줄 몰랐다"며 "옷에 붙은 인식표를 봤지만 경찰에 신고하라고만 돼 있고, 아저씨는 집을 모르겠다고 해서 인포메이션에 가보라고 했다"고 전했다.

배우를 데리고 직접 안내데스크까지 이동한 시민도 있었다. 장기홍(70)씨는 "집을 모르겠다고 해서 치매구나 생각했고, 인포메이션에 가면 경찰에게 인계해 줄 것 같아 그리로 향했다"며 "캐나다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그곳에선 배회하는 치매 환자가 1명이라도 보이면 여러 사람이 와서 도와준다"고 말했다.

도움을 주지 않은 4명은 배우를 무시하거나 피했다. 2명은 이어폰을 잠시 뺐다가 배우를 쳐다보고 다시 끼운 뒤 배우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휴대폰 화면에 집중했다. 나머지 2명은 배우가 말을 걸자 아예 자리를 옮겨 버렸다.

치매 환자를 연기한 권혁준씨는 "솔직히 시민들이 많이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놀랐다"며 "집에 가고 싶은데 가지 못하는, 치매 걸리신 분의 서러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치매 인구가 많이 늘어나고, 누구라도 걸릴 수 있으니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앞으로 치매 환자를 만난다면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실종되는 치매 환자는 평균 40명. 누구라도 배회하는 치매 환자를 마주칠 수 있지만, 이날 배우를 외면한 시민들은 그가 치매 환자인 줄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길 잃은 환자를 도와주기 위해선 치매 노인들의 특성을 알고 있는 게 좋다. 중앙치매센터 자료 등에 따르면 그들은 △목적지 없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반복적으로 이동 △상처나 찢어진 옷차림 △특정 사람·장소를 지속적으로 찾음 △도로·횡단보도에서 주위를 살피지 않고 건넘 △안절부절못하는 보행 △다른 사람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님 등의 행태를 보인다. 10년 넘게 치매 환자를 진료한 장기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아주편한병원 부원장)는 "배회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회 인식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내가 치매를 앓고 있는 김성학(57)씨는 "인식표가 작고 치매라는 말도 적혀 있지 않아 시민들이 알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치매 환자를 연기한 권혁준씨도 "실험하는 동안 100명 이상 눈을 마주친 것 같은데, 그중 한 명만 인식표를 쳐다봤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인식표를 살펴본 김혁준씨는 "거주지 근처 경찰서 전화번호 같은 게 스티커에 적혀 있으면 바로 연락할 텐데, 단순히 112에 신고하라고만 돼 있고 치매라는 말도 없어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막막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중앙치매센터가 발행한 치매 환자 실종·예방 가이드북. 중앙치매센터 제공

지난해 12월 중앙치매센터가 발행한 치매 환자 실종·예방 가이드북. 중앙치매센터 제공


보호자들도 배회나 실종에 대비해야 한다. 중앙치매센터는 치매 환자가 사라졌을 때 활용할 수 있도록 6개월마다 한 번씩 사진을 찍고, 환자가 외출하게 되면 그날 입은 옷을 기록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갑자기 실종되면 당황할 수 있으니, 치매 환자가 평소에 갈 만한 장소와 연락처를 미리 정리해 둘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치매 친화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치매 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선 전국 256곳에 설치된 치매안심센터를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인식 개선을 위해선 갈 길이 멀다. 강선옥 강서구 치매안심센터 총괄팀장은 "주변에 치매에 걸린 사람이 없으면 치매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게 쉽지 않다"며 "우리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홍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 환자들은 왜 자꾸 길을 잃을까요. '당신이 치매에 걸린다면'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통해, 치매 환자의 시야로 바라본 세상을 간접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제목이 클릭이 안 되면 아래 주소를 입력하세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9180831000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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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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