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자기 연민

공감과 자기 연민

입력
2023.09.2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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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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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번아웃으로 우울증까지 앓게 된 젊은 청년이 있다. 이제 심한 우울 증상은 많이 없어졌는데, 도무지 일을 하러 나갈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점점 더 사람도 만나기 힘들어진다. 실업 급여와 청년 지원금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유지하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한다. 매번 자기 비난과 한탄을 듣다 보니 정신과 의사로서도 조금씩 지쳐가는 느낌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공감이라는 감정과 태도를 몇 가지 의미로 나누어 이해한다. 감정 이입 또는 공감(empathy)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다. 타인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말하는데, 마치 눈을 가리거나 복대를 차고서 신체장애 혹은 임산부의 체험을 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공감은 주로 이런 의미이다.

공감 능력은 인간 사회 유지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인간은 공감 능력이 있기 때문에 타인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이웃과 동료를 나와 같이 희망, 슬픔, 공포를 가진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같은 집단 속에서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또한, 공감을 한다는 것은 타인의 관점을 이해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를 없애버려야 할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해와 존중의 평화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모든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면 가정이나 사회가 항상 시끄럽고 혼란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이 가져야 할 건강한 공감이다. 공감의 시작은 감정적 아픔을 같이 하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이웃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합리적이고 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존중을 담은 이성적 고민과 합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동정심·연민이라 번역되는 공감(sympathy)은 타인의 감정 그 자체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 안쓰러움에 같이 아파하는 태도로서 우리가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분노하고 슬퍼할 때의 그 모습이다.

하지만 동정심은 존중이라는 의미가 빠져 있다는 점에서 건강한 공감과는 다르다. 상갓집에 가서 자기 한에 운다는 말처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보다 내 마음에 울리는 감정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만약 동정하는 대상이 본인 자신이라면 본인마저 존중하지 않게 된다.

스스로가 피해자 혹은 희생양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낼 의지가 없어도 된다는 명분을 준다. 본인이 처한 상황과 슬픔은 본인 탓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과 사회가 본인을 도와야 한다는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건 무기력 상태가 지속되면 자기 연민(self-pity)에 빠진다. 본래의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은 너그러움과 친절함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으로서 마음 챙김 명상에서 중요한 태도이지만, 지금 말하는 자기 연민은 오히려 자기 동정에 더 가깝다.

심한 우울감으로 인해 자기 동정에 빠진 분들과 긴 시간 대화를 하면서 신뢰의 관계를 맺고 나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첫째, 현재 당신이 처한 상황이 최악은 아니라는 점이다. 더한 고통과 슬픔을 겪고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다. 같은 스트레스를 겪고 나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나 외상 후 성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둘째,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고, 나쁜 사람을 만나서 불행하지만 그에게도 반면교사로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내 상황을 불행으로 받아들이는 건 나 자신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셋째,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데, 세상에는 정말 나를 불쌍히 여겨 끝까지 도와줄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지금 같이 하는 사람들 중엔 본인의 감정 동요와 또 다른 필요에 의해 옆에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힘든 상황에서도 본인 스스로 뭔가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을 돕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같이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스스로를 동정하는 사람은 나에 대한 존중을 잊어버린 것이다. 어차피 내 인생은 내가 다스려야 움직인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그게 마음을 좀 서늘하게 할지라도…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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