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인간한계 36초 남았다

마라톤 인간한계 36초 남았다

입력
2023.10.11 17:3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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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케냐의 켈빈 키프텀이 8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2023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 00분 35초에 레이스를 마친 후 기록이 적힌 시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카고=AFP 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 00분 35초라는 세계 신기록이 탄생했다. 케냐의 켈빈 키프텀(23)이 42.195km를 질주하며 엘리우드 킵초게(39·케냐)가 작년 9월 베를린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 01분 09초를 34초 앞당긴 것이다. 100m를 평균 17.1초에 주파한 셈이 된다. 키프텀은 10km 지점에서 케냐 동료와 함께 치고 나가 중간지점에서 다른 선수들보다 1분 30초 이상 앞섰고 35km 때 독주를 시작했다.

□ 인간한계라는 1시간대 진입까지 이제 36초 남았다. 전망은 밝은 편이다. 킵초게가 한 차례 2시간대를 비공식기록으로 무너뜨린 가운데 젊은 주자 키프텀이 등장해 탄탄한 경쟁구도가 잡혀서다. 양과 염소를 키우며 자란 키프텀은 지독한 연습벌레다. 주당 250~280km를 달린다. 지난해 12월 처음 풀코스를 뛴 뒤 약 10개월 만에 세계기록을 세웠다. 담당코치는 그가 하루종일 하는 건 먹고 자고 뛰는 것뿐이라고 했다. “이러다 5년 안에 선수생명이 끝난다. 훈련을 줄여야 한다”고 걱정하지만 키프텀이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 우람한 근육질인 단거리 선수와 달리 마라톤 선수는 골격이 가볍다. 키프텀은 해발 2,550m의 체프코리오 고산마을 출신이라 심폐기능이 탁월하다. 케냐의 육상선수들은 마라톤 상금으로 부자가 되길 꿈꿔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도 한몫한다. 인간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운동생리학자 마이클 조이너의 1991년 논문이 지금까지 통용된다. 1시간 57분 58초이며 2023~2036년 2시간 벽이 깨진다고 예측했으니 적기에 들어간 격이다.

□ 한국마라톤은 침체기다. 이봉주가 2000년 2시간 7분 20초로 한국기록을 쓴 뒤 23년간 잠잠하다. 이봉주는 세계기록과 1분도 차이 나지 않는 시절도 있었다. 일반인들도 마라톤으로 건강과 성취감을 얻는다. 인생에 비유하는 경우는 흔하다. 마라톤 애호가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새삼 떠오른다. 그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에서 자신의 묘비명을 쓴다면 이렇게 적고 싶다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박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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