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는 씁쓸 떨떠름해도 몸에는 이로운 타닌의 두 얼굴

입에는 씁쓸 떨떠름해도 몸에는 이로운 타닌의 두 얼굴

입력
2023.11.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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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 존재 폴리페놀 일종, 와인의 필수요소
맛은 별로여도 노폐물 배출, 항산화작용 등
찰싹 붙는 특성에 생체친화적 접착제로도

편집자주

즐겁게 먹고 건강한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그만큼 음식과 약품은 삶과 뗄 수 없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소소하지만 알아야 할 식약 정보, 여기서 확인하세요.

타닌이 맛을 좌우하는 레드 와인. 게티이미지뱅크

와인을 즐긴다면 타닌(tannin)에 익숙할 겁니다. 흔히 타닌감이라고 하죠. 와인을 머금었을 때 떨떠름하고 입안이 마르는 듯한 느낌을 뜻합니다. '타닌감이 높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 더 세다는 거고요. 와인 애호가들은 "혀가 조여든다"고도 표현합니다. 타닌은 화이트 와인보다 쓴맛이 진한 레드 와인에 많고 숙성을 잘 하면 점차 부드러워집니다.

멀게는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와인의 역사를 감안하면 타닌 역시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한 셈입니다. 타닌은 와인이나 홍차 등의 풍미를 끌어올리기도 하지만 그 자체는 특유의 씁쓸하면서 떫은맛을 냅니다. 일견 입에 반가운 물질이 아닐지 몰라도 독성이 없고 오히려 인체에 매우 이로운 성분입니다.

떫은맛을 압도하는 다양한 효능

포도의 씨앗과 껍질은 다량의 타닌을 함유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타닌은 식물에서 만들어지는 유기화합물인 폴리페놀(polyphenol)의 한 종류입니다. 녹차의 떫은맛을 유발하는 성분인 카테킨(catechin)도 폴리페놀에 포함됩니다. 폴리페놀은 식물이 자외선이나 활성산소, 포식자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생성하는 물질입니다. 이게 없다면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 바짝 타버릴 겁니다. 자외선으로부터 유전자를 보호하는 인체의 멜라닌(melanin)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죠.

자연계에서 타닌은 폭넓게 존재합니다. 덜 익은 과일이나 씨앗에도 있고 떫은 감, 밤껍질과 도토리, 홍차, 카카오 등에도 풍부합니다. 와인의 주재료인 포도의 껍질과 씨앗도 타닌을 다량 함유했습니다. 밤 속껍질을 깨물었을 때 그 떨떠름함의 정체가 바로 타닌인데, 타닌이 혀에 찰싹 붙어 이런 맛을 느끼게 합니다. 초기 인류의 주식이었던 참나무 열매 도토리를 다람쥐 밥으로 넘겨주게 된 것도 타닌의 이 같은 맛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밤(왼쪽 사진)과 도토리는 타닌이 많은 대표적인 견과류다. 게티이미지뱅크

타닌은 접착력과 코팅력이 강해서 다른 물질과 빠르게 결합하는 성질을 가졌습니다. 니코틴이나 카페인 등 유독한 알칼로이드를 침전시켜 몸 밖으로 배출하고 중금속이 체내에 쌓이는 것도 방지한다고 합니다. 이외에 다른 폴리페놀처럼 항산화작용과 심혈관질환 예방, 피부질환 개선 등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다만 몸에 좋다고 해도 뭐든 과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죠. 타닌은 수렴작용으로 설사를 멎게 하는 효과도 있어 과다 섭취 시 변비가 생길 수 있습니다. 철분이 많은 음식과 같이 먹으면 타닌산철이 생성돼 철분 흡수를 방해합니다. 따라서 둘 다 타닌이 많은 도토리묵과 감은 어울리지 않는 음식입니다. 철분 덩어리가 들어간 선짓국과 도토리묵도 궁합이 맞지 않고요.

반면 우유는 타닌과 잘 어울립니다. 우유 속 단백질과 지방이 타닌을 부드럽게 해 맛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홍차에 우유를 타는 밀크티가 널리 소비되는 이유가 있는 셈이죠.

먹는 것을 넘어 활용도 넓어지는 타닌

타닌이 함유된 홍차에 우유를 섞으면 부드러운 밀크티가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타닌은 동물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무두질, 철과 반응하는 특성을 이용한 잉크 제조 등에 사용됐고 자외선 차단제나 항산화제 용도로도 많은 연구가 이뤄졌습니다. 한 글로벌 완성차업체는 도장 작업에 타닌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요. 여기에 최근에는 순수 자연성분 접착제 가능성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물질에 달라붙는 성질이 너무 좋기 때문이죠.

카이스트 화학과 서명은, 이해신 교수가 주도한 공동연구팀은 지난해 타닌산(tannic acid)과 생체적합성 고분자를 섞어 생체친화적 접착제를 개발했습니다. 피부 자극이 적고 체내에서 잘 분해되는 소재의 특성을 활용해 모발 이식용 접착제로 응용한 것이죠. 동물실험에서는 이 접착제를 바른 모발이 견고하게 피부에 붙어 있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타닌을 활용한 생분해성 접착제 모발 이식 이미지. 카이스트 제공

이해신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타닌산을 비롯한 폴리페놀의 접착력과 저독성에 주목해 의료용 접착제, 지혈제, 갈변 샴푸 등 다양한 응용 분야를 개척했습니다. 그가 의료용으로 상용화한 홍합 접착체의 핵심도 폴리페놀이라고 합니다. 이어 효율성이 높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타닌산으로 연구 영역을 확장한 것이죠.

연구팀은 현재 조성을 바꿔 가며 타닌산 접착제 동물실험을 진행 중인데, 국내보다 미국에서 먼저 상용화하는 것을 염두에 뒀다고 합니다. 이 교수는 "해외에서도 타닌 등 자연 성분을 활용한 신개념 접착제 연구가 활발하다"며 "내년에는 곳곳에서 타닌 접착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자연 성분으로 만든 접착제로 머리를 심는 날이 곧 온다는 얘기입니다.

김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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