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소방서, 화장장 등 곳곳 불편... "전자정부 위력, 역설적으로 실감"

입력
2023.11.19 19:30
3면
구독

소방 위치 추적 시스템도 차질
화장터도 요금 수납 불편 겪어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이 시스템 오류로 마비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통합민원발급기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이 시스템 오류로 마비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통합민원발급기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전세 대출이 안 되니 계약도 이사 날짜도 밀렸어요. 결국 일정이 안 맞아 급히 다른 집을 구했는데 한숨만 나와요."

서울 관악구에 사는 백모(31)씨는 17일 경기 안양시에 있는 전셋집 계약을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버팀목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본인 확인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단순 오류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지방자치단체 행정망 자체가 먹통이 되어 발생한 일이다.

결국 계약일을 확정지을 수 없었던 백씨는 임대인, 기존 세입자와의 협의가 불발돼 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급히 다른 집을 구했지만, 이사일은 일주일 넘게 밀렸다. 일정이 바뀐 탓에 임시 거처를 구해야 한다. "민원 서류 발급이 멈춘 건 단 이틀이었지만, 나는 이사 가는 날도, 살아야 할 집도 달라져버렸어요."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전산망이 마비된 지 사흘째인 19일, 현장에서는 극심한 혼란이 이어졌다. '정부24'를 비롯한 일부 서비스는 복구됐지만, 피해는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의 시스템 오류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날 지자체 공무원들이 접속하는 행정전산망인 세올에서 전산 오류가 생기면서 지자체 업무는 물론 행정복지센터 민원 업무 처리도 지연됐다. 뉴스1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의 시스템 오류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날 지자체 공무원들이 접속하는 행정전산망인 세올에서 전산 오류가 생기면서 지자체 업무는 물론 행정복지센터 민원 업무 처리도 지연됐다. 뉴스1

행정전산망 오류로 인한 문제는 각종 계약 관계 이외의 일상업무 영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변리사 임모(28)씨는 의뢰인이 요구한 업무에 차질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특허심사 관련 업무 중 내야 했던 심사관 면담 신청서류를 제때 내지 못한 것이다. 서류 제출기한이 자동 연장되지 않으면 약 5만 원을 내고 연장을 해야 한다. "서류 제출이 늦어지면 면담도, 차후 계획도 줄줄이 밀릴 수 밖에 없다"며 "팀 내에 비슷한 사례가 대여섯 건 있었다"고 전했다.

소방시스템에도 차질이 생겼다.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는 17일 오전 자체 위치추적 프로그램에 오류가 생기면서 위치 정보를 소방청에 직접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소방관 A씨는 "지금은 복구가 됐지만 차량운행일지나 근무일지 작성이 불가했고, 장비관리 시스템 접속도 안 돼 불편을 겪었다"고 말했다.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당일 내부망 접속 오류가 있었으나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을 나가는 데엔 큰 영향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고인을 보내는 화장장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경기의 한 승화원 관계자는 "관내, 관외 요금이 달라 주민등록등본으로 주소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행정망 오류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일단 관외 요금으로 돈을 받고 차후에 환불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관외 관내 요금 차이는 8배에 달한다.

일상생활에서의 불편도 이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콘서트를 가야 하는데 여권은 이미 만료됐고, 청소년증 발급이 안 되니, 돈 내고 콘서트를 못 갈까 걱정"이라거나 "팬미팅 때 본인확인을 하려고 신청한 (분실)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중"이라는 글도 올라왔다.

19일 서울 구로동 구로구청에 있는 무인민원발급기가 정상 작동 중이다. 오세운 기자

19일 서울 구로동 구로구청에 있는 무인민원발급기가 정상 작동 중이다. 오세운 기자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근무자들도 애먼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다. 제주의 한 주민센터에서 복지 담당 업무를 맡은 박모(28)씨는 "17일 기초생활수급자 증명서나 기초연금 증명서 모두 떼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민원인들이 찾아와도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행정망 복구를 위해 주말 긴급 출근 지시를 강행하기도 했다.

서현정 기자
박시몬 기자
오세운 기자
김나연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