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혜수의 '아름다운 퇴장'을 지켜보며

배우 김혜수의 '아름다운 퇴장'을 지켜보며

입력
2023.12.0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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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배우 김혜수가 2023년 제44회 청룡영화상을 마지막으로 30년간 지켜온 사회자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KBS2 캡처

배우 김혜수가 2023년 제44회 청룡영화상을 마지막으로 30년간 지켜온 사회자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KBS2 캡처

분명 다 비우고 홀가분하게 작별을 고했는데, 온전히 새롭게 채워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비움과 채움이 동의어였던가' 착각이 들 만큼. 자그마치 30년, 한결같이 지켜오던 무대를 떠나는 그에게 많은 영화인과 팬들의 따뜻한 감사 인사가 쏟아졌다. 한국 영화 최대 축제인 청룡영화상의 사회자를 맡으며 '청룡' 그 자체로 불리던 배우 김혜수 이야기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은 있지만, 자리든, 인기든, 권력이든 가진 걸 내려놓는 건 쉽지 않다. 좋은 것을 많이 움켜쥘수록, 점점 위치가 올라갈수록 물러나는 건 더 어려워진다. 가장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순간에서 유유히 내려오는 배우의 모습은 그 자체로 '퇴장의 정석'을 보여줬다.

①"그 순간" 떠나야 할 때 = 등 떠밀리지 않았다. 그대로 있어 주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은데도 스스로 내려왔다. "언제나 그 순간이 있다.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인 것 같다"는 담백하지만 묵직한 한마디로, 자신의 퇴장을 고했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문화예술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건, 잊히는 일. 자신의 존재를 꾸준히 각인시킬 수 있는 자리였지만, 연연하지 않았다. '그 순간' 떠나야 할 때를 스스로 정한 뒤, 단호하게 내려오는 발걸음으로, 영원히 그 자리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②"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기에 = 30년간 굳건히 지켜온 영광의 자리가 아쉬울 법도 한데, 미련이 없다고 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일이건, 관계이건 떠나보낼 때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도 그 순간만큼 열정을 다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지난 시간 후회 없이 충실했다 자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책임감을 묵묵히 감당해 왔기에 그 자신도, 영화제도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최선은 그의 퇴장의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이런 '퇴장의 정석'이 지독히 지켜지지 않는 곳도 있다. 여의도다. 이제 좀 그만 내려오라는 거듭된 요구에도, 여전히 주저하고 버티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바로 그곳이다. '중진 험지 출마론', '586 용퇴론' 등 여야 공히 대상도, 연유도 다르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당 안팎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잠깐의 수모만 견디면 더 오래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걸까. 투표로 뽑힌 정치인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게 맞냐는 반론과 선거 제도 등 기득권 본질은 손대지 못한 채 사람만 바꾸는 게 능사냐는 반박도 일견 타당할지 모른다. 무작정 물러나라고 몰아붙이는 혁신의 요구가 더는 새롭지 않은 것도 맞다.

그럼에도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텃밭에 안주하거나, 별다른 개혁이나 성과 없이 과거의 유산만 향유하며 이른바 '한국 정치의 구태'로 번번이 지목받는 상황이라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쫓기듯 밀려나는 건 우습고,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변명도 비겁하다. 그러니 이제라도 서서히 내려놓는 연습에 들어갔으면 한다. 떠나야 할 때 '그 순간'을 스스로 준비하고, 쇄신이든 개혁이든 지금껏 참고 기다려준 국민을 위해 변화의 진정성을 보여주면 좋겠다. 그마저도 자신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내려올 수 있는 그들의 '아름다운 퇴장' 또한 기대해본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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