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가시나무 언덕에 '서양촌'… 이 동네가 뜨는 이유

호랑가시나무 언덕에 '서양촌'… 이 동네가 뜨는 이유

입력
2023.12.06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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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지난달 30일 광주 양림동 우일선선교사사택 주변 숲에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다. 광주 기독교의 터전인 양림동은 전통가옥과 서양식 주택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배유지, 오기원, 보위렴, 우일선, 서서평, 유화례, 부명광… 광주 남구 양림마을이야기관에는 알 듯 모를 듯한 인물들 사진과 이력이 3개 벽면을 빙 두르고 있다. 한국 이름이지만 생김새는 모두 서양인이다. 광주읍성 바깥 광주천 건너에 위치한 양림동은 1904년 서양 선교사들이 교회, 학교, 병원을 개설하며 광주 기독교 전파의 터전이 됐다. 선교사들의 한국식 이름은 외래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현지화 전략인 셈이다. 전시관에는 이들 선교사 외에 최흥종, 최상현, 김현승, 이수복, 배동신, 정근, 정율성, 조아라, 조소혜, 문형동 등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한국인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모두 양림동에서 나고 자랐거나 이곳을 터전으로 활동한 부호와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 문학과 예술계 인사들이다.


양림동, 근대 건축에 예술을 더하다

양림동은 사직산과 양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동남사면에 자리 잡은 주거 지역이다. 도심에 위치하면서도 야트막한 언덕에 숲이 우거져 푸근한 동네다. 양림의 어원은 ‘버드름’, 낮은 능선이 광주천에 닿은 모습을 빗댄 표현이라고 한다. 여우가 많아 ‘여시골’로도 불렸고, 선교사들이 터를 잡은 후에는 ‘서양촌’이라고도 했다. 마을에는 선교사 주택뿐만 아니라 광주 5대 부자 저택과 서민 주택이 꼬불꼬불한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다. 한옥과 서양식 건물, 전통과 서양문화가 결합돼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렇듯 풍성한 문화적 토양에 미술관과 분위기 좋은 카페가 속속 들어서며 요즘은 젊은 층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

양림동 입구의 역사문화마을 조형물. 서양인 선교사와 문인이 함께 있다.


양림동 골목의 소박한 한옥을 개조한 한희원미술관.


마을 탐방은 양림마을이야기관에서 시작된다(바로 뒤 공영주차장 2시간 무료). 천변 도로에서 이어지는 골목 입구에 ‘양림 역사문화마을’을 알리는 커다란 철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골목으로 들어서기 전, 바로 옆에 작은 동굴이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판 방공호 시설이다. 1940년대부터 광주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대피시키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지만 단단한 화강암 지반이어서 완공을 보지 못하고 전쟁이 종료됐다. 현재 역사 교육의 현장이자 여행객의 인증사진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좌우로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카페가 줄줄이 이어지고, 가지를 친 골목에 ‘최승효가옥’ 표지판이 보인다. 2,644㎡(800평)의 넓은 부지에 지은 개화기 전통가옥이다. 후손이 살고 있어 내부는 볼 수 없고 담장 너머로 저택의 규모만 짐작할 뿐이다. 저택 골목에 ‘한희원미술관’이 있다. 소박한 한옥을 개조한 갤러리로 아담한 마당과 전시실에 작품이 걸려 있다. 이 미술관은 ‘양림동, 밤의 미술관’ 도슨트 투어를 진행한다. 밤마실과 미술체험까지 약 2시간 40분이 걸리는 투어다. 작가의 양림동 사랑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바로 인근의 ‘이장우가옥’은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 문간채로 구성된 근대 한옥 저택이다. 지역의 부호였던 정낙교의 아들 정병호가 1899년 지었고, 1959년 동신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설립한 이장우 박사가 매입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넓은 마당에 연못을 갖춘 정원이 꾸며져 있고, 사랑채 뒤로 양림산 수목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옆집과는 커다란 팽나무와 대숲이 경계를 짓고 있다. 대저택의 위용은 그대로인데 이웃한 서민 주택과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양림동의 부호 저택 이장우가옥. 뒤편으로 양림산 수풀이 병풍을 두르고 있다.


양림동 이장우가옥의 커다란 팽나무와 대숲이 이웃집과 경계를 짓고 있다.


마을길은 호남신학대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선교사 구역으로 이어진다. 대학 정문 앞 사거리의 청아빌라 외벽에 ‘최후의 만찬’이 붙어 있다. 예수를 중심으로 열두 제자의 마지막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조각으로 재현했는데, 뭔가 조금 다르다. 예수를 제외하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양림동에 기독교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이다.

1912년 나주에서 태어나 2003년 타계한 조아라 여사도 있다. 부친이 세운 교회와 학교에서 일찌감치 기독교와 접한 그는 1927년 수피아여학교에 진학한 것을 계기로 평생을 YWCA에 헌신했다.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으로 옥고를 치렀고,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 광주부인회'를 출범시키며 여성의 힘을 결집시키는 데 앞장섰다. 1951년에는 전쟁 고아를 돌보기 위해 '성빈여사'를 개원했고, 이들을 위한 야간 중학교 '호남여숙', 청소년야학 '별빛학원'을 개설해 문맹 퇴치에도 앞장섰다.

1980년 ‘5월 광주’는 그를 다시 한번 역사의 무대로 소환했다. 일흔을 바라보는 고령에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 끌려가 상무대 영창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고, 출감 후에는 부상자와 사망자 처리에 헌신했다. '광주의 어머니', '민주화의 대모'로 불리는 이유다. 인근 골목에 ‘조아라기념관’이 있다. 소심당(素心堂)이라는 호는 그의 인품과 열정에 감동해 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이 지었다고 한다.

양림동 한 빌라 외벽에 설치된 '최후의 만찬' 조각. 12제자는 모두 양림동과 인연이 있는 선교사와 문인 사회활동가로 묘사했다.


양림동의 조아라기념관. 조아라는 '광주의 어머니'라 칭송받는 인물이다.


미디어아트 갤러리인 '이이남스튜디오'의 '조우'전. 자개 문양으로 장식한 로봇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양림동 입구에서 양림오거리에 이르는 골목에는 특색 있는 카페가 여럿 자리 잡고 있다.


양림동의 한 전통 찻집 간판. 양림동은 한국과 서양 문화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양림동 골목 곳곳에 들어선 카페는 젊은 층이 주로 찾는다.

신학대 바로 앞의 ‘이이남스튜디오’는 미디어아트 갤러리이자 전망 좋은 카페다. 담양에서 태어난 이이남은 대중들에게 친숙한 명화를 차용해 디지털 이미지에 생동감을 입히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아티스트다. 현재 전시관에는 ‘조우’전이 열리고 있다. 전통 자개 문양으로 장식된 비너스와 로봇, 진경산수화 속에 숨어 있는 대도시의 건축물 등이 조각과 디지털 액자로 구현돼 있다. 양림동처럼 한국 전통과 서양 문화를 접목한 작품들이다. 입장료는 카페 음료값으로 대신한다.

외국의 식물원 같은... 양림동 선교사 구역

신학대 교정으로 들어서면 피터슨, 원요한, 허철신, 브라운 선교사 사택이 차례로 이어진다. 그 중심에 우일선선교사사택이 있다. 1910년 건축해 1920년 화재로 소실된 후 증축한 건물로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다. 우일선(R.M. Wilson·1880~1963)은 1911년 전남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그레이엄기념병원을 건립하고 제중병원(현 기독병원) 2대 원장을 지냈다. 또 1912년 광주나병원을 개설하고 평생을 한센병 환자를 위해 헌신했다. 이 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운 인물이 최흥종 목사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노동공제회와 신간회 광주지회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지난달 30일 여행객이 단풍이 곱게 물든 우일선선교사사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양림동 선교사 사택 주변은 지난달 30일까지 아직도 가을 풍경이었다.


지난달 30일 양림동 선교사 사택 주변에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다.


일대는 여러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져 식물원을 방불케 한다. 우일선선교사사택도 은행나무 팽나무 단풍나무 등이 어우러진 숲속에 단아하게 자리 잡았다. 마당 왼편의 피칸나무는 낯설고도 이국적이다. 미국과 멕시코에 주로 자라는 나무로 참나무처럼 도토리가 열린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황 작물이자, 선교사에게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향수를 달래는 존재였다. 계절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었지만 양지바른 언덕은 아직 가을이 짙다. 지난달 30일 늦게까지 남은 은행과 단풍잎이 고운 빛깔을 자랑하고, 노랑과 연두색이 섞인 피칸나무도 화사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선교사 사택 구역은 ‘호랑가시언덕’이라고도 불린다. 길가에 400년 된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가 사시사철 풍성하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어서다. 검푸른 윤기 반들거리는 나뭇잎 사이사이에 현재 빨간 열매가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알알이 박혀 있다. 언덕에는 호랑가시나무 외에도 상록활엽수와 덩굴식물이 무성하고, 조릿대까지 바닥을 덮고 있어 한겨울 풍경도 전혀 삭막하지 않다.

400년이 넘었다는 양림동 호랑가시나무에 빨간 열매가 알알이 박혀 있다.


양림동 선교사 주택 구역엔 상록활엽수가 많아 한겨울 풍경도 삭막하지 않다.


양림동 우일선선교사사택 주변 풍경. 오른쪽 아래 노랗게 단풍 든 나무가 선교사가 심었다는 피칸나무다.

신학대 교정을 통과하면 길은 사직공원으로 이어진다. 정상 전망대 바로 아래에 사직단이 있다.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를 올리는 곳, 나라의 곳간인 호남의 중심 도시에 마땅히 있어야 할 시설인데 수난이 많았다. 갑오경장 이후 군사훈련장으로 쓰였고, 일제강점기에는 공원으로 변모했다. 1960년대 말에는 동물원이 들어섰고 1993년에야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사직제도 폐지 100년 만인 1994년 부활했다. 이곳에도 늦가을 단풍이 곱고 짙다.

다시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유진벨선교기념관이 있다. 유진벨(Eugene Bell·배유지)은 1895년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조선 땅을 밟아, 호남지역 선교를 주도했다. 막내딸이 군산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윌리엄 린턴(William A. Linton·인돈)과 결혼하며 린턴(인씨) 가문의 한국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양림산과 이어지는 사직공원의 사직단. 우여곡절 끝에 1993년 복원됐다.


지난달 30일 광주 사직단 주변에 뜻밖에도 고운 단풍이 남아 있었다.


양림동 주택가에 김현승 시인의 '절대고독' 시비가 세워져 있다.


기독간호대학교 교정의 양림교회에 크리스마스 장식 불빛이 반짝거리고 있다.


양림동 한 건물 외벽에 마을 안내도가 작품처럼 장식돼 있다.

기념관 앞 길가에 김현승 시인의 ‘절대고독’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인은 부친의 목회지를 따라 제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7세 되던 해에 광주로 이주해 유진벨이 설립한 숭일학교를 다녔다. “(중략)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 영원의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 나는 내게로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는 / 따스한 체온을 새로이 느낀다.” 다시 양림동으로 내려오는 길, 기독간호대학교 교정의 양림교회 크리스마스 장식이 별빛처럼 반짝거린다. 양림오거리로 이어지는 골목에선 루미나리에 불빛이 겨울 밤거리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광주 양림역사문화마을 탐방 지도. 그래픽=김문중 선임기자


광주=글·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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