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나라' 동독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지금 당신처럼

입력
2024.02.24 12: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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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야 호이어 '장벽 너머'

독일 통일 이후 슈퍼마켓에서 쌓여 있는 생필품을 보고 놀라는 동독 주민. 독일역사박물관 제공

독일 통일 이후 슈퍼마켓에서 쌓여 있는 생필품을 보고 놀라는 동독 주민. 독일역사박물관 제공

'사라진 나라, 동독(1949-1990)'이라는 부제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책 '장벽 너머'는 40년 넘게 존속했지만 철의 장막이 무너지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나라, 옛 동독에 대한 이야기다. 동독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는 역사학자 카트야 호이어는 현대사에 불투명하게 남아있는 회색국가 동독에 대한 기억을 되짚는다. 히틀러에 추방당한 독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처음에는 스탈린의 감시 아래에서, 나중에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독일식 국가를 만들어 가는 궤적을 추적하는 과정엔 방대한 인터뷰, 편지, 기록들이 다채로움을 더한다.

1961년 베를린 장벽 건설, 1970년대의 상대적인 번영을 거쳐 1980년대 중반 사회주의의 기반이 흔들리기까지 동독은 풍부한 정치·사회·문화적 풍경을 간직한 곳이었다. 냉혹한 권력자였던 에리히 호테커 같은 공산주의 엘리트부터 대중가수 프랑크 쇠벨 같은 연예인, 자동차 '트라반트'를 타고 청바지와 커피를 즐긴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동독은 서구에서 그린 '냉전 풍자 속의 경직되고 정적인 세상'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었단 사실을.

저자는 말한다. "이제 드디어 독일민주공화국을 감히 새롭게 바라볼 때가 왔다. 동독엔 억압과 잔혹함이 존재했지만 기회와 소속감도 존재했다. 시민은 삶을 살았고, 사랑했으며, 일했고, 늙어갔다. 휴가를 떠났고, 자국 정치인들로 우스갯소리를 했고, 자식을 낳아 길렀다." 장벽 너머 존재했던 나라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사람에게도, 나름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도 뜻밖의 신선함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장벽 너머·카트야 호이어 지음·송예슬 옮김·서해문집 발행·648쪽·3만3,000원

장벽 너머·카트야 호이어 지음·송예슬 옮김·서해문집 발행·648쪽·3만3,000원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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