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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주4일제는 노동의 미래다

지난 3년간 시행되던 코로나19 방역조치들이 해제되면서 일상으로의 회복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우리가 기다리던 일상 회복이 코로나19 이전으로의 완전한 복귀일까. 우리가 겪은 큰 변화 중의 하나는 재택근무, 유연근무제 등 일하는 방식에 대한 것으로, 사람들의 일에 대한 태도와 감각은 많이 달라졌다. 이렇게 일해도 된다는 집단적 경험과 깨달음을 거치면서,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바람직하지도 않다. 코로나19가 잦아든 즈음인 2022년 초, 네이버는 직원들의 희망에 따라 주5일 재택근무 혹은 주 3일 이상 출근을 선택하도록 하였다. 반면 카카오는 2023년 3월 들어 사무실 출근을 재개하였다. 해외에서도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는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유지하고 있고, 애플과 테슬라, 골드만삭스는 재택근무를 철회하였다. 한편, 카카오는 노조가입률이 급속히 증가하고 애플은 미국의 100대 직장에서 제외되는 등 재택근무를 경험한 노동자들의 반발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 침체와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 원격근무 형태에서는 적극적인 소통과 협업이 어렵다는 시각 등이 출근 재개의 배경이 되고 있다. 일하는 방식과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듯하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급속도로 확산되던 시절, 출근할 때와 똑같이 9시에 업무개시를 팀장에게 알리고 온라인 메신저가 'on'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재택근무가 바삐 시행되다 보니 현장에서는 많은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 재택근무가 의미를 가지려면 절대적인 노동량이 아닌 성과중심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구성원들이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성과평가 방법과 원격에서도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고민되어야 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양한 일하는 방식에 대한 기업들의 고민은 가치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청년인재 확보에도 중요하다. 최근 잡플래닛은 7년차 이하 직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기업으로 SK텔레콤이 뽑혔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월 2회 '해피 프라이데이', 주 1회 재택근무, 거점오피스(일산, 분당, 서울 광진구와 구로구) 출근 등 유연한 근무형태가 그 이유라고 한다. 또한, 인크루트가 직장인 8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희망하는 복지는 주4일제(23.4%)로, 2위인 재택근무 시행(7.3%)의 3배 넘는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나가는 추세 속에서, 일자리의 변화와 주4일 노동은 최근 들어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매년 논의될 만큼 전 세계적인 관심사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의 투쟁 역사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에도 이득이 간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유럽에서는 벌써부터 주4일제 노동에 대한 실험이 활발하다. 프랑스의 엘데엘쎄(LDLC)가 주4일제를 2년간 실험한 결과 매출액은 36% 증가하였고, 산업재해와 병가, 결근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며, 이직률도 2019년 11%에서 2022년 2%로 줄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모처럼 찾아온 일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와 성찰을 계기로, 오늘의 청년 세대가 지향하는 가치와 실용성을 반영한 일하는 방식에 대한 갈망에 우리 사회와 기업이 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주4일 근무제를 비롯한 다양하고 유연한 일하는 방식에 대한 실험이 많은 기업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삶과 문화

흉터와 새살, 다치고 채우는 삶

살면서 가져 본 가장 큰 흉터는 오른쪽 무릎부터 정강이에 걸친 것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지면서 한 뼘 정도의 찰과상을 입었다. 다치자마자는 아스팔트의 때가 묻은 줄 알고 다리를 물로 벅벅 닦았는데, 놀랍게도 거무튀튀해진 피부는 모두 상처였다. 울먹이며 동네 약국에 가서 약을 조금 사서 혼자 치료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병원 한 번 안 갔을까 싶을 정도의 깊고 오래가는 상처였다. 결국 흉터가 크게 남아 10대 시절 내내 반바지를 거의 입지 않았다. 몸 곳곳에 남은 흉터들을 본다. 넘어지거나 무거운 물건에 찧었거나 긁히거나 부딪힌 순간들. 다친 후에는 늘 '조심해서 걸을걸', '무리하지 말걸', '앞을 잘 보고 다닐걸' 하며 후회가 뒤따랐다. 후회는 곧 반성이 되어 얼마간 일상의 교훈이 되기도 했지만 상처를 완벽히 예방하지는 못했고 상처 입는 일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종종 일어났다. 어느 날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뒤늦게 손등 위에 가늘게 종이에 베인 상처를 발견한 적이 있다. 고통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얕은 상처라 별 조치 없이 며칠을 그냥 두었다. 무심함 때문이었을까, 결국 누가 보면 퍽 깊은 상처였던 걸로 보일 만큼 짙은 흉터가 남았다. 워낙 잘 보이는 곳이라 주변 사람들이 어쩌다 다쳤냐고 심심찮게 물어왔고 그럴 때마다 멋쩍게 별거 아니었다고 설명하고는 했다. 그렇게 짙은 흔적이 될 줄 알았다면 가만히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쉽게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쩐지 반감이 든다. 시간이 흘러 상처는 아물더라도 흉터가 보란 듯이 짙게 남아버리는 것처럼, 시간만 흘러가게 둔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상처 입는 일이 의지 밖의 일이라면 상처를 대하는 최선의 태도는 '다치지 않게 조심하기'보다는 '상처 이후 잘 회복하기'에 집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잘 낫고 있는지 자주 들여다보고, 감염이 없도록 소독하고, 부지런히 연고를 바르고 새 살을 기다리는 일.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후회하는 대신 우리는 스스로 치유하길 선택할 수 있다. 최근에 인상 깊게 본 영상이 있다. 한 사람이 깨끗한 물이 담긴 유리컵에 흙 같은 불순물을 넣고 휘휘 젓고선 물을 다시 깨끗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묻는다. 먼저 불순물을 티스푼으로 일일이 걷어내는데 별 소용없는 방법이다. 이어 그는 큰 물통을 집어 들더니 이렇게 말한다. "제대로 된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컵에 다른 깨끗한 물을 넘치도록 계속 붓는 거예요." 그러자 물은 금세 깨끗해진다. 삶에 일어난 나쁜 일에 집착하기보다 좋은 일을 새로 채우는 것이 삶을 더 낫게 만들 것이라는 비유다. 상처를 온전히 치료하는 법은 머리로는 알아도 막상 제대로 행하긴 쉽지 않다. 상처에 딱지가 앉고 간신히 다 나아갈 즈음엔 맹렬히 간지러워서 몇 번이고 딱지를 뜯어버리고, 또 후회하기도 할 것이다. 그 경험도 모두 헛되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다. 설령 잘 관리하지 못해 결국 흉터가 남더라도 나으려는 자신을 놓지 않았다면 적어도 다음에 더 나아질 수 있는 자신, 능동적으로 회복하는 자신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상처의 깊이를 알고, 그저 내버려 두지 않고, 간지러워도 뜯기를 참고 나으려 노력하는, 단단한 선택으로 삶을 채워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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