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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美 백악관 한복판에 침투한 쿠바 스파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하고 대사까지 지낸 미 전직 외교관이 40년간 쿠바의 비밀요원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지난 4일(현지시간) 빅터 마누엘 로차(73) 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가 간첩혐의로 기소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로차는 2002년 퇴직 후 2012년까지 쿠바를 관할하는 미군 남부사령부 자문역도 맡았다. □ 꼬리가 잡힌 건 미 연방수사국(FBI)이 첩보를 입수한 뒤 스페인어 사용 비밀수사관을 쿠바 총첩보국 마이애미 주재요원으로 위장시켜 접근하면서다. 메신저 ‘왓츠업’으로 접선해 마이애미의 한 교회 앞에서 만났다. 우회로를 이용하고 중간에 몇 분간 멈춰 미행 여부를 살피는 건 기본. 비밀수사관이 “아바나”라고 쿠바 수도를 언급하자 로차는 “우리는 ‘그 섬’이라 부른다”며 오히려 상대를 조심시켰다. 로차의 ‘레전드’(주변을 속이기 위해 설정된 인격)는 평범한 우익인사였다. □ 영화 007, 미션임파서블, 마타하리에서 등장하는 스파이들은 준수한 외모에 컴퓨터 같은 두뇌와 상황판단 능력, 숨 막히는 액션까지 존재 자체가 매력적이다. 현실에선 사후까지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야 성공이다. 미 역사상 최악의 이중간첩 중 한 명인 로버트 핸슨 전 FBI 요원(79세)은 올해 6월 감옥에서 숨졌다. 1979년 옛 소련군정보국(GRU)에 돈을 받고 정보를 넘긴 그는 이후엔 미국에 포섭된 옛 소련 정보원들이 이중 스파이인지 확인하는 일까지 했다. 그가 미 당국에 넘긴 명단의 인물은 모두 처형됐다. 그러면서 22년간 핵전쟁 대응계획 등 미 기밀정보 수천 건을 러시아에 넘겼다. 본인도 정체성이 헷갈리지 않았을지 의문이다. □ 북한 김정남도 ‘미 중앙정보국(CIA) 스파이’ 의혹이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그의 백팩에서 미화 12만 달러가 발견됐는데, 정보를 넘기고 받은 돈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권력자의 정적 제거수단으로 이처럼 유용한 것도 없다. 장성택은 ‘미제 스파이’로 처형됐고, 박헌영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과 대선 때 경쟁해 216만 표를 받은 조봉암도 북한 간첩혐의였다. 1959년 사형이 집행됐는데 2011년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가 나왔다.

달곰한 우리말

붕어빵에서 버릴 말 '앙꼬'

한겨울 길에서 먹어야 맛있다.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불면 그 맛이 더 좋다. 붕어빵 이야기다. 언 입을 벌려 크게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함 속 뜨겁고 촉촉한 속살이 한순간 추위를 날려 보낸다. 초콜릿 색 달곰한 ‘내장’은 꼬인 감정마저도 웃게 한다. 꼬리부터 먹을까, 머리부터 먹을까가 고민일 뿐이다. 추워지면 주머니에 천 원짜리 몇 장을 품고 다니는 이유다. 소설가 백수린도 붕어빵 좀 먹어본 사람이다. “붕어빵은 낱개로는 구할 수 없는 빵”이라는 말이 그냥 나왔을 리 없다. 정말 그렇다. 그래서 붕어빵은 좋은 사람과 나눠 먹기 딱 좋은 간식이다. 눈 날리는 거리에서 갓 구워 나온 붕어빵을 누군가와 함께 먹는 장면을 떠올려 보시라. 행복해 절로 웃음이 난다면 당신, 참 따뜻한 사람이다. 이화은의 시 ‘붕어빵 굽는 동네’엔 우리네 아버지들이 살고 있다. “달아오른 철판 위에서 붕어들이/몸부림칠 때쯤 귀갓길의 남편들/산란의 따끈한 꿈을 한 봉투/가슴에 품어 안는다//(중략) 붕어빵 같은 아이들의 따스한 숨소리가/높다랗게 벽지 위에 걸린다/기념사진처럼” 가슴에 품어 안는다는 것. 이보다 더 따뜻한 정이 있을까. 우리 아버지도 퇴근길 붕어빵을 품에 안고 뛰어오셨다. 다섯 아이가 둥그렇게 앉아 한 마리씩 들고 먹으면 그제야 크게 숨 한 번 쉬곤 빙그레 웃으셨다.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 게다. 내복 바람의 아들딸들이 조금 전까지도 대문 앞에서 아버지와 붕어빵을 기다렸다는 걸. 붕어빵은 물 건너온 먹거리다. 일본의 도미빵(다이야키·도미 모양의 빵)이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와 붕어빵이 됐다. 1950~60년대엔 미국의 곡물 원조로 밀가루가 대량 들어오면서 ‘풀빵’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졌다. 묽은 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고 구워낸 풀빵은 국화빵 붕어빵 등 다양한 모양으로 도시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줬다. 지금은 팥뿐만 아니라 슈크림 치즈 잡채 고구마 등을 뱃속에 품더니 어종이 다양해졌다. 샤르르르 녹는 슈크림도 맛있지만 ‘앙꼬’ 붕어빵이 최고라는 이가 여럿이다. 나도 팥소가 들어 있는 붕어빵을 가장 좋아한다. ‘앙꼬’는 우리말 같지만 일본어 ‘餡子(あんこ·함자)’에서 왔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떡이나 빵 안에 든 팥’으로 올라 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어원인 일본어를 제시하며 팥소로 순화해 사용하도록 권고한다. 팥을 삶아서 으깨거나 갈아서 만든 게 팥소다. 한겨울 소리에선 맛이 느껴진다. 특히 겨울밤에 들리는 맛있는 소리는 “메밀묵~ 찹쌀떡~”이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배달 오토바이가 쌩 하고 오는 요즘에도 한밤중 “메밀묵~ 찹쌀떡~” 소리가 들리는 동네가 있을까. 정겨워서 몹시 그리운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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