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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세계

첨단 전투기 수출국으로 변신하는 일본

지난주 15일 자민당과 공명당의 정조회장들이 일본이 영국·이탈리아와 공동 개발하는 차세대 전투기의 제3국 수출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중의원 465석 중 자민당은 259석, 공명당은 32석으로 총 291석을 확보해 두 당은 연립정권을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 말 방위 장비 관련 규정 수정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전투기 수출에 대해 자민당은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불교 계열의 창가학회(創価学会·소카가카이)를 기반으로 중도 정치를 표방해 온 공명당은 신중론을 펴왔다. 이번 합의에도 실제 수출하더라도 각료회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 외에 수출국을 일본이 방위장비품 등에 관한 협정을 맺은 15개국에 한정한다는 것, 전투가 벌어지는 나라에는 수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본 내에서는 대체적으로 필요한 조치였다는 평가가 우세한 분위기다.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내각은 공산권 국가와 분쟁 당사국 등에 무기 수출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무기 수출 3원칙'을 발표했고, 1976년에는 미키 다케오 내각이 해당 원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 지역에 대해서도 '수출을 자제한다'고 하면서 사실상 모든 수출을 금지해 왔다. 그러나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이 미국으로의 무기 기술 제공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고, 2011년에는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내각이 3원칙을 사실상 완화해 전투기를 포함해 일본이 국제 공동개발이나 공동생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파트너 국가로의 수출이 가능해졌다. 2014년에는 제2기 아베 신조 내각이 '방위장비 이전 3원칙'과 '운용지침'을 결정했고, 작년 12월에는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마침내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개정했다. 긴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돼 온 사안이니 만큼 '급작스럽다'는 반응은 제한적으로 관찰된다. 한편 패전 이후 '평화 국가'를 지향해 온 일본의 국가적 정체성이나 국제사회의 평가가 우려된다는 목소리, 지지율이 매우 낮은 기시다 정권이 추진하는 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새로운 방침을 지지하는 이들은 달라진 국제정세 속에서의 안보 불안을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초강대국의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 시도, 이에 따른 세계적 방위비 증가 추세와 방위 산업 경쟁의 격화 등 복합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일본이 스스로를 갈라파고스로 만드는 족쇄를 끊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파트너 국가와의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고 확대된 방산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힘의 균형'을 구축하는 데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경제적 이익을 노리는 산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잠자고 있던 일본이 차세대 전투기 수출을 통해 글로벌 방산 업계에서 새로운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게 될까? 한국의 방위 산업에도 함의하는 바가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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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입시 올인, 학부모 앞에 놓인 '킬러문항'

초·중·고 사교육비 지출이 지난해 27조1,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액으로 나타났다. 2021년 23조4,000억 원, 2022년 26조 원에 이어 3년 내리 최대치 기록을 갈아 치웠다. 지난해 사교육 경감 대책을 내놓은 정부는 국회에 사교육비를 재작년 대비 6.9% 줄일 거라 했으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지난해 학생 수는 재작년 대비 7만 명(1.3%) 줄었으나 사교육비는 1조2,000억 원 늘었고, 증가율(4.5%)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3.6%)을 웃돌았다. 특히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을 중심으로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큰 서울에선 초중고 전 학년의 평균 사교육비 총지출이 1억 원을 돌파했다. 이달 14일 통계청과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비 통계를 보면, 사교육 참여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초등학생 62만1,000원, 중학생 76만 원, 고교생 98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초중고 12년 평균 사교육비를 집계하면 1억764만 원이다. 서울 주요 학원가에서 교과 과목당 월 사교육비는 30만~50만 원대로 알려져 있다. 학생 1인당 '국영수과' 서너 과목을 수강하며 월 120만~200만 원을 지출하는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중고교생 자녀가 2명 이상이면 월 300만 원 이상 지출되기도 한다. 고2, 고3의 평균 사교육비 지출은 100만 원이 넘었다. 예비수험생과 수험생의 사교육비 증가 원인으로는 입시 기조의 급격한 변화가 꼽힌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수능 모의평가 뒤 '킬러(초고난도)문항' 배제 방침을 발표했다. 문·이과 통합 수능 3년 차에도 과목 간 유불리 문제 등으로 겪는 혼란이 여전한 탓에 학원을 등록한 수험생도 많았다는 진단이 더해졌다. 입시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사교육을 부채질했다는 얘기다. 막대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어 노후 대비에 미흡한 '에듀 푸어' 계층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처분 소득 기준 노인 빈곤율 1위(2020년 기준 40.4%) 오명과도 무관치 않다. 게다가 연 수천만 원 드는 유아 영어 학원비와 'N수생' 학원비도 더하면 가계 부담은 더욱 크다. 교육부는 내년에는 반드시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전망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2학기 늘봄학교 전면 시행과 EBS 고교 강의 확대 등을 사교육비 경감 근거로 들었으나, 지난해 킬러문항 논란이 미친 불수능 여파와 의대 정원 확대 방침 등이 맞물려 사교육 시장은 일찌감치 달아올랐다. 킬러문항 논란으로 세무조사를 받은 대치동 입시학원은 사태 이후 문전성시다. 중등진학지도연구회 소속 교사는 "입시 명문으로 부각돼 서울 전 지역의 학생이 거기 들어가고 싶어 했고 실제 그 학원 '윈터스쿨'에 많이 갔다"고 했다. 몇몇 입시업체는 지역 수요에 부응해 2, 3년 전부터 대구, 광주, 울산 등 지역으로 속속 진출하고 있다고도 한다. 수업과 입시 준비에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더 신뢰받는 교육 환경이 좀처럼 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학교에선 선행학습도 못 하지만 학원은 선행학습 유발 광고만 안 하면 된다. "우리의 역할은 돌봄(교사)"이라는 교사의 자조도 들린다. 획기적 공교육 강화책을 비롯한 교육 개혁이 없다면 학부모의 노후 대비도 결국 킬러문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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