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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브랜드다

한 연예인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한 경험담이다. 미국에서 험한 산을 오르다가 길녘에서 한글 팻말을 봤는데, 거기에는 '고사리 꺾으러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험한 길에서도 고사리가 보이면 들어가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니 경고 문구를 아예 한글로 제작한 것이란다. 그 한글 한 줄에 한국인을 말하는 여러 정보가 담겨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산을 즐겨 다니는 한국인의 취미, 고사리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식성, 산에서 나는 자연물을 채취해도 된다고 보는 한국인의 생각 등 말이다. 한글은 한국을 말해주는 표식이다. 한글을 못 읽는 외국인들에게 한글은 어떻게 보일까? 어떤 유학생은 한글 '옷'에서 옷을 입고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을 연상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눈으로 가만히 살펴보면 한글에서 실재 모양이 살아난다. 한글 '꽃'에서는 산들바람에 고개를 끄덕이는 꽃 한 송이가 보인다. 한글 '산'에서는 듬직하게 버티는 뒷산이, 한글 '봄'에서는 화분에서 자라난 봄 순이 보인다. 신기하게도 '길'에서는 인생의 여정과 같은 길이, '물'에서는 생기를 담고 물이 종이 위로 스며 난다. 애정이 깃든 눈이 생기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명품 브랜드 '디올'이 BTS의 지민을 홍보대사로 선정하였다는 소식과 더불어, 최근 '구찌'가 한글로 로고를 새긴 제품을 내놓았다는 기사를 봤다. 지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의미라 해도, 디자인만으로도 다 안다는 명품 옷에 굳이 한글로 로고를 새긴 것은 102년 구찌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뉴스 두 건의 의미는 성격상으로도, 판매 전략상으로도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 세계적인 브랜드의 홍보대사로 선정된 의의에 견줄 만큼, 한글도 하나의 국가 브랜드로 인지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글을 가장 예쁘게 써 보려 한 때가 언제였던가? 아마도 작은 손에 연필을 잡고 처음으로 이름을 쓰던 때가 아니었을까? 한글에 익숙해져 더 이상 새로움이 없을 무렵이면 어느덧 한글을 마음대로 쓰거나 혹은 갈겨쓰고 있는 우리를 보게 된다. 어릴 때 주위 어른들은 글자가 삐뚤면 마음도 삐뚤삐뚤해진다고 했다. 사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누군가의 글자가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참 많다. 한글은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한글의 가치를 밖에서 알아줄 때, 그 브랜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람도 곧 한국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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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은 일상의 누적

지난해 여름, 1년에 소수의 책만을 출간하지만 내는 책마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서 주목을 받고 있는 모 출판사의 대표와 홍대입구의 한 카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었다. 필자는 여러 이야기들을 공유했고 그 이야기들을 책으로 내어보면 어떨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후 치열한 고민과 사례조사 그리고 출판기획회의를 거쳐 본격적으로 가을 무렵부터 저술에 들어갔다. 원고 집필과 수차례의 퇴고 과정을 거치고 마침내 지난 반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탈고한 저서가 이제 주말을 지나면 세상으로 나온다. 책의 내용은 필자가 17년간 지속해온 아침 습관에 대한 내용이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의 내용이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어울릴 것 같다고 판단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습관과 루틴을 만들기를 희망하고 바라는 시기에 적절하게 매칭될 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한 것이다. 청년 상담소 현장에서 여러 청년을 만나면서 현장의 온도를 느끼는 나로서도 참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실제로 새해를 맞이한 청년들은 요즘 각자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새로운 자기계발 목표를 다지기 위해 저마다 열정적이기 때문이다. 아주 특별한 이야기이기에 상업출판사에서 기꺼이 책을 내기로 했을까? 무언가 대단하고 특별한 이야기가 있어서일까? 그렇다면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든다. 필자가 책에서 소개한 습관은 아주 단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어렵지 않고 단순하기에 누구나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쉽게 따라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무언가를 오래 지속하려면 단순함이 때론 더 낫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기상시간은 새벽 5시 내외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묻는다. 안 피곤하세요? 하지만 보다 적절한 질문은 안 피곤하세요가 아니라 언제 주무세요이다. 10시경에 잠들어 5시에 일어난다면 12시에 잠들어 7시에 일어나는 것과 7시간으로 절대적 수면량이 같기 때문이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기는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버킷리스트에 올리는 워너비 습관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3일이 지나고 나면 금세 포기하고 만다. 밤마다 생기는 여러 일들로 일찍 잠에 들기가 힘든 날이 점차 많아진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가를 한 뒤 이런저런 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덧 자정이다. 새벽 기상을 실천하기 위해 다음 날 억지로 일찍 일어난다면 하루 종일 몸은 천근만근이다. 버텨낸 하루가 끝나고 나면 피곤했던 하루가 이른 기상시간 탓인 것만 같다. 이런 패턴이라면 얼마 못 가 새벽 기상은 포기하고 만다. 필자는 현장의 청년들과 함께 팀을 이뤄 새벽기상을 실천한다. 특히 직업이 없는데도 적극적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즉 '비구직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and Training) 상태가 장기화된 청년의 경우에는 우울감이 높고 자존감은 낮다. 크고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성취를 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른 아침 고요함 속에 머물며 목표지향적인 행동들로 하루를 채워가면 작은 성취감과 뿌듯함이 쌓인다. 위대함은 일상의 누적이기에 하루를 먼저 설계하고 주도적으로 시작하는 법을 연구하고 함께 실천해왔다. 그렇게 변화를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며 확신이 생겨 저서 집필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올 한 해는 더욱 많은 청년들의 아침이 행복과 뿌듯한 성취감으로 시작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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