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를 아십니까

입력
2021.09.24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선거운동에도 예의와 도의가 있다.”

명절 연휴에는 ‘카톡’ 메시지를 읽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휴대폰을 보던 찰나 눈에 든 메시지 제목은 이랬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유승민 전 의원 캠프의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도의가 없다'고 지목된 대상은 유 전 의원의 경쟁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후보의 연휴 일정을 알리는 메시지가 아닌, 윤 전 총장이 어떤 도의 없는 행동을 했다는 메시지인데 무슨 일인가 싶어 확인한 내용은 대략 이랬다.

소통 차원에서 유 전 의원이 진행 중인 SNS 라이브 방송이 있는데, 윤 전 총장도 마찬가지의 방송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유 전 의원 방송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진행하기로 한 것. 제목 그대로 ‘선거운동에도 예의와 도의가 있다(그런데 왜 같은 때로 골라 도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냐)’는 얘기이다. 대변인은 윤 전 총장의 행동이 '도의'의 사전적 의미인 ‘사람이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할 도덕적 의리’에 어긋난 것임을 말하고자 했다. 일종의 '도의 공세'다.

정치권에서 '도의(道義) 공세'는 자주 등장하는 레토릭이다. 올해 초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당적을 유지한 상태로 국민의힘과 경선을 하겠다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두고, 갈등이 깊었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내놓은 한마디가 “정치에 도의가 없다”였다. 최근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국민선거인단에 가입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뽑겠다고 했을 때 민주당에서 나온 반응도 “상도의 없는 행위”(백혜련 최고위원)였다.

그런데 '도의 없음'을 공격하는 쪽에는 증명의 귀책사유가 없다. 사전적 의미대로 법률을 어긴 행동이 아닌 도덕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제적인 공세 방법인 동시에, 남발 또한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남발 속에 퇴색하던 ‘도의’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 건 최근이다. 가족의 부동산 불법 거래 혐의가 드러나 의원직을 벗은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밝힌 사퇴의 변에서였다. 윤 전 의원은 '도의적 책임'을 주장하며 '염치(부끄러움)'를 이유로 내세웠다. 물론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깎아내리고 화살을 여권에 돌린 윤 전 의원의 사퇴에 대해선 평가가 분분하다. 하지만 ‘도의 없음’의 정치적 의미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라는 점을 환기시킨 장면은 주목할 만했다.

인상은 깊었지만 유 전 의원 캠프의 ‘도의 없음’ 지적에 공감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겠다는 윤 전 총장의 결정을 ‘부끄러움도 모르는’ 문제로 보기에는 조금은 무리가 있다. 같은 시간에 라이브방송을 진행해 누가 더 많은 관심을 받느냐 하는 경쟁은, 당사자들은 괴롭겠지만 지켜보는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유익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지적을 하려면 오히려 이런 게 바람직한 '도의 공세'의 소재가 아닐까. 21대 총선 직전이던 지난해 4월 한 대검 간부가 야당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여권 인사의 고발장 등을 전달한 것. 이 중 한 고발장 내용이 당의 실제 고발에 반영된 것. 이런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당이 “무슨 상관이냐, 하등의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인 것 말이다.

김현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