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피해자의 자리는 어디인가?

입력
2022.05.24 19:00
25면

편집자주

17년차 베테랑 검사이자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저자인 정명원 검사가 전하는 다양한 사람과 사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기.

당신은 사회 초년생이다. 인턴 자리를 구하러 갔다가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자로부터 가벼운 추행을 당했다. (가벼운 추행이라니! 세상에 그런 식으로 표현해도 좋을 추행이 있겠는가마는, 판결문 식으로 말하자면, 추행의 부위와 정도가 비교적 중하지 않은 추행이라고 하자) 어찌어찌 그 자리를 모면하고 나와 당신은 경찰에 신고했다. 얼마 후 사건이 기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후에도 '왜 그런 면접에 들어갔을까, 당장 박차고 나오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이 일었지만 당신은 새로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고, 그 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달이 지난 시점에 당신은 공판검사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당신이 피해자인 사건에 대해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배심원 8명 앞에서 당신이 피해사실을 진술해 주어야 한다고 검사는 말한다. 언젠가 법정에 나가 증언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8명의 배심원 앞이라니… 몇 다리만 건너면 알 수도 있는 지역 주민들 앞에 설 자신이 없다. 당신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으며 당신이 출석해 진술하지 않으면 피고인은 무죄가 될 수도 있다는 답이 돌아온다. 이런 어이없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당신은 공판검사에게 묻는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참여재판은 오직 피고인의 선택에 의해 시작된다. 피고인은 직업 법관이 아닌 배심원에게 판단받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때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 피고인이 벌여 놓은 판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와야 하는 피해자가 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국민참여재판은 통상재판에 비해 그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음에도 피해자에게는 거부권이 없다. 성폭력 피해자는 반대 의사를 제출할 수 있지만, 의견을 낼 수 있을 뿐 그 의견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상으로 겪었던 위 사건의 경우 추행의 부위와 정도가 중하지 않아 피해자에게 가해질 부담이 비교적 적다는 이유를 들어 그대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추행의 부위와 정도라는 잣대로 당신의 두려움과 망설임과 끈질기게 따라붙는 자책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종종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의 권리'라는 무표정한 말을 앞세워 울먹이는 피해자를 그 자리에 세운다.

이제 사건을 무죄로 만들지 않기 위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배심원 앞에서 진술을 해야 할 것이다. 당신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반대신문을 받아내야 하며, 알 수 없는 8명의 눈빛에서 애써 잊고 싶었던 자책의 물음들을 다시 읽어 내게 될지도 모른다. 통상의 재판이라 해도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8명의 이웃 앞에서 당신이 더 많이 아플 수 있으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모든 절차를 견뎌낸 덕분에 피고인에게 유죄가 선고된다고 해서, 당신의 아픔이 괜찮을 수 있을까. 그런 당신을 두고 우리 사회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형사사법의 지난한 절차를 통해 우리가 가닿고자 하는 것은 위로다. 피해자에게는 너의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같은 위험이 다시 벌어지는 것을 우리가 함께 막겠다는 의지를 확인해 다시 일어날 용기를 주기 위함이다. 그 과정을 국민이 보다 가까이 들여다보고 직접 참여함으로써 우리가 조금 더 괜찮은 사회로 나아간다는 체감을 확대해 가고자 하는 것이 국민참여재판이다. 형사재판의 민주적 정당성과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자평하기 전에, 글썽이는 눈빛으로 한켠에 서 있는 피해자의 물음에 답할 방도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정명원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