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하지 않는 듯한 연기의 대가 송강호

입력
2022.07.01 07:30
12면

편집자주

※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활동 중인 한국 남자 배우 중 최고를 꼽으라면 누구일까. 의견이 엇갈릴 듯하나 송강호와 황정민 2명으로 압축될 듯하다. 둘은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며 주연자리를 20년 안팎으로 꿋꿋이 지켜왔으면서도 1,000만 영화 등 흥행작을 수시로 선보여 왔으니까.

황정민과 송강호의 연기를 영업사원에 빗대 비교하자면 이런 식이다. 황정민은 자기가 팔 물건의 정보를 세세히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내는 영업사원 같다. 고객이 어떤 제품을 원할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달변까지 갖췄다. 고객은 물건 파는 데 열중하고 있는 영업사원의 의도를 잘 알면서도 마음이 넘어갈 수밖에 없다. 송강호는 조금은 어눌한 영업사원처럼 느껴진다. 제품을 두리뭉실 설명하는데 기이하게도 믿음이 간다.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팔지 않을 듯한 정직함이 말과 행동에 배어 있어서다. 알고 보면 그는 제품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고, 고객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송강호는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해냈냐고 물으면 엇비슷한 답변을 내놓고는 한다. “맡은 역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고 그 사람이 되면 된다.” 캐릭터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굳이 필요하지 않고, 자연스레 그 사람처럼 연기하면 된다는 말로 들린다. 얼핏 그럴듯하나 세상 일이 그리 쉽게 돌아갈 리 없다.

최근 송강호의 여러 인상적인 역할과 눈에 띄는 연기 중 최고를 꼽으라면 ‘기생충’(2019)에서 기택(송강호)이 동익(이선균)을 태우고 운전하는 대목을 들고 싶다. 기택은 “성공한 사람과의 동반”을 운운하며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돈보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해 동익의 마음을 사려 한다. “그래도 사모님 사랑하시죠”라고 동익에게 점잖게 묻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기택은 품위 있는 운전사로 보이고 싶으나 차량이 위험하게 끼어드는 상황에선 욕설을 하며 거친 성격을 드러낸다. 기택의 가식을 강조하며 쓴웃음을 주려는, 다소 작위적인 연출인데 송강호의 능청스러운 연기 덕분에 이물감이 덜하다.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르기 전 ‘기생충’ 열풍이 간단치 않음을 실감했을 때가 있다. 2020년 2월 2일 열린 제73회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를 온라인으로 보면서였다. 행사장으로 입장하는 여러 유명 배우와 감독을 맞이하던 진행자의 얼굴에 갑자기 흥분이 번졌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가 눈앞에 있어서였다. 진행자는 몸을 과하게 흔들며 송강호의 연기를 재현하려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기생충’과 송강호의 연기를 좋아했기에 가능했던 모습이다. 몇몇 영화인들은 송강호가 5월 열린 제75회 칸영화제에서 ‘브로커’로 남자배우상을 수상한 건 적금 수령과 마찬가지라고 표현한다. 칸영화제를 7차례 찾는 등 적립금 쌓듯 해외 인지도를 꾸준히 높여온 결과라는 의미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

타고난 배우처럼 여겨지나 송강호는 노력파에 속한다. ‘사도’(2015)를 함께했던 이준익 감독의 전언은 연기에 임하는 송강호의 자세를 가늠하게 한다. 송강호는 ‘사도’에서 40대부터 80대까지의 영조를 연기했다. 말년의 영조는 목소리가 쉬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송강호는 괴성을 수시로 질러 낮은 쇳소리를 만들었다. “송강호는 각고의 노력과 고심 끝에 인물을 만들어낸다. 준비하고 노력하기에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한 거다. 어느 배우들은 ‘나 열심히 연기하고 있다’라는 걸 드러내는데, 송강호는 다르다. 그와 함께 일하면 감독이 큰 도움을 받으면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이준익 감독)

어느 배우나 그렇듯 송강호의 시작은 미약했다.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에 발을 디뎠다. 대학로 극단 연우무대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의성의 추천이 한몫했다. 영화에 모습을 처음 드러내고 30년 가까이 지났으나 여전히 우리는 송강호 연기를 보고 싶어한다. 노력으로 빚어낸 자연스러운 면모가 송강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