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승부욕이 철철… 사자 같은 전도연

입력
2022.08.12 07:30
12면

편집자주

※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비상선언’을 보기 전 몇 가지 기대가 있었다. ‘관상’(2013)과 ‘더 킹’(2017)의 한재림 감독이 어떤 연출력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송강호와 이병헌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등 배우들의 조합은 어떨지도 눈길이 갔다. 무엇보다 전도연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연기를 펼칠지 기대가 가장 컸다. 전도연이니까.

전도연은 국토교통부 장관 숙희를 맡았다. 40대(로 추정된다) 여성 장관은 현실에선 파격이다. 영화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캐릭터다. 강단 있고, 돌파력을 지닌 듯한 배우라야 가능한 역할이다. 전도연을 캐스팅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전도연은 연약한 여인보다 강한 여성으로 종종 스크린을 장식했다. 두 번째 출연 영화 ‘약속’(1998)부터 강렬했다. 그는 조직폭력배 두목 상두(박신양)와 사랑에 빠지는 의사 희주를 연기했다. 얼굴도 입도 거친 상두를 똑바로 바라보며 할 말하는 희주의 모습은 이어서 이어질 사랑의 애절을 예고한다. ‘해피 엔드’(1999)는 어떤가. 전도연이 연기한 보라는 실직한 남편 민기(최민식) 몰래 옛 남자친구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치정 스릴러에서 치정은 대체로 남자 주인공 몫이었던 시절, 보라는 전복적인 캐릭터였다. ‘밀양’(2007)이나 ‘집으로 가는 길’(2013)에서도 시련을 이겨내려는 여성이었다. ‘협녀: 칼의 기억’(2015)에선 무협에 도전하기도 했다. 칼을 자유롭게 휘두르는 눈먼 무인 월소를 통해서였다.

전도연은 활동 초기엔 귀여운 외모가 무기였다. 오목조목한 얼굴에 코맹맹이 목소리가 더해져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냈다. “깨끗해요”라는 카피가 곁들여진 방송 광고로 데뷔를 했는데, 맑고 투명한 인상이었다. 하이틴 스타로서는 산뜻한 출발이었으나 성인 연기자로서 대성할지는 물음표가 따랐다. 전도연은 단단한 연기를 거듭해내며 자신의 장점이자 한계를 극복했다.

전도연이 빚어낸 여러 인상적인 장면 중 ‘카운트다운’(2011) 속 하연의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다. 사기꾼인 하연이 자신을 쫓는 폭력배들을 따돌리기 위해 군용 방한 점퍼(깔깔이)를 입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남루하게 보여야 할 점퍼가 전도연이 입는 순간 명품 옷처럼 달리 보였다. 전도연은 ‘백두산’(2019)에 짧게 등장하고도 또렷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북한 특수요원 리준평(이병헌)이 백두산 폭발이라는 재난 속에서 집을 찾아가는 장면에서다. 전도연은 의자에 앉아 있는 리준평의 아내로 모습을 잠깐 비쳤는데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카리스마라는 수식을 여배우 1명에게만 써야 한다면 주저 없이 전도연을 택할 듯하다.

전도연은 승부욕이 강한 연기자다. 매번 주변 사람이 놀라워할 정도로 자신을 던져 연기를 만들어낸다고 영화인들은 평가한다. 현장에서 성에 찰 때까지 연기를 반복해서 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두문불출하기도 한다. 이기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하니 지난 연기를 복기하고, 연기를 새롭게 하려는 노력이 따를 수밖에 없다. 스크린에서 전도연을 볼 때마다 사냥에 최선을 다하는 사자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비상선언’은 기대에 못 미쳤다. 전도연 탓은 아니다. 영화는 연기력 탁월한 배우들을 기능적으로 활용한다. 스크린 속 숙희의 역할은 제한돼 있고, 전도연 역시 기량을 펼칠 기회가 없어 보인다. 전도연은 우리에 갇힌 사자 같은 모습이다.

전도연은 최근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촬영을 마쳤다. 전설적인 살인청부업자 길복순(전도연)의 피비린내 나는 사연을 그렸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과 ‘킹메이커’(2022)의 변성현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다. 변 감독은 스크린 밖 전도연에게서 영감을 받아 길복순 캐릭터를 떠올렸다고 한다. 전도연을 위한,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다운 영화가 될 듯하다. 스크린에서 포효하는 전도연의 연기를 다시 기대하게 된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