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이 훌륭해졌다

입력
2022.08.3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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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일인데, 한국의 술을 품평하는 대회에 심사하러 참가한 적이 있다. 전통주와 여러 과실주가 많이 출품되었다. 모든 술을 다 마셔보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맛있는 술이 아주 드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술의 기본적인 맛이랄까, 조건을 갖추지 못할 술도 많았다.

한국의 술은 오랫동안 거친 세월을 겪었다. 침체기라기보단, 사실상 우리 술이랄 게 없었다고나 할까. 일제강점기에 우리 술은 강력한 제재를 받았다. 일제가 만든 세금 체제 안으로 강제 편입시켰고, 가양주처럼 자체 소비되는 술은 밀주처럼 취급받았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총력체제로 가면서 술 제조는 더욱 금지되었다.

우리는 술을 잘 빚는 민족이다. 옛 시를 읽었을 때 '향기로운 술'이라는 묘사가 많이 나오는데, 나는 그게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술이 쓰고 텁텁하지 않고 향기롭다니! 소주와 막걸리 한 종밖에 없던 시대를 살았던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궁중의 제사와 연회에 관련된 문헌을 보면, 음식도 음식이지만 술이 아주 다양하고 양도 많다. 민간에서 나온 음식 책도 술 항목이 다채롭고 복잡해서 깜짝 놀라게 된다. 예를 들어 '음식디미방'이나 '시의전서' 같은 고 조리서들은 하나같이 수십 종의 술 만드는 법을 싣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세금 문제에다가 식량용 곡물 절약이라는 명분 아래 술의 전통이 위협받았다. 집안에서 만든 제사용 가양주를 세무서에서 압수하고 벌금을 매기는 일도 흔했다. 소주는 주정을 국가에서 일괄 구매, 각 제조회사에 배급하는 방식으로 모든 소주의 맛이 '거기서 거기'인 세상을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이래 들어오게 된 이른바 연속증류와 희석식이라는 값싼 방식의 소주는 우리 입맛을 길들여 버렸다. 막걸리도 마찬가지였다. 허가와 통제 아래 각기 다른 맛의 개성이 거의 말살되었으니까.

생각해 보니, 막걸리는 인공감미료를 넣어야 팔렸고, 대형회사 소주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풍토에서도 우리 술을 만들려는 노력은 이어졌다. 대형회사의 희석식 소주는 가난한 시대에 우리 주머니를 응원해준 술이기는 하다.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알코올 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모든 식당, 술집의 술 메뉴가 다 똑같다는 건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일이다. 생각해보라. 두어 가지의 소주, 역시 두어 가지의 맥주, 또 두어 가지의 막걸리가 99% 식당 술집의 표준적인 술 구색이다. 유럽의 복잡하고도 훌륭한 와인들, 일본의 이른바 '니혼슈'와 '소츄'의 엄청난 종류를 보면서 우리는 그간 참으로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최근 몇 가지 술을 마시고 깜짝 놀랐다. 앞에서 쓴, '실망스러웠던' 기억을 일신해 버리는 체험을 많이 하게 된다. 대형회사가 아닌 소규모 생산자의 여러 소주, 국산 와인, 여러 과일주, 매일 새로운 종류가 나오다시피 하는 막걸리가 분전하고 있다. 마트에서도 많이 취급한다. 이건 놀라운 일이다. 서울로 좁히면, ○○소주와 연합탁주제조창이라는 단 하나의 회사에서 나오던 딱 한 종의 막걸리, 두 종의 맥주만을 마셔 온 수십 년의 세월이 우리에게 있었다. 이제는 다른 술을 얼마든지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노장들에게는 인생의 시간이 너무 흘러가 버린 것이 안타까울 뿐.


박찬일 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