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내 기업 산 뒤 전환사채 찍어 또…'무자본 M&A'로 덩치 키워

입력
2022.12.21 04:30
3면
[수상한 왕국:쌍방울•KH그룹의 비밀]
<1> 유별난 검찰·정치인 사랑
대기업 흉내내며 덩치 키우기 주력
쌍방울 51개·KH그룹 81개 계열사
투자조합 배치해 자금 추적 어렵게
1명이 9곳 임원도… 페이퍼컴퍼니 다수
두 그룹서 가족 6명씩 경영에 참여

편집자주

한국일보는 M&A를 통해 사세를 확장한 쌍방울·KH그룹의 수상한 역사를 두달 간 추적했다. 이들은 전환사채(CB)를 발행해 덩치를 키웠고, 수상한 자금이 모이는 곳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검찰·정치권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별종 왕국을 건설한 두 그룹을 해부했다.


[수상한 왕국:쌍방울•KH그룹의 비밀][단독] 쌍방울·KH, 윤석열 대통령 친정을 방패 삼았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2조546억 원.

KH그룹의 자산(상장사 기준) 규모다. 지난 2월 7,000억 원대 알펜시아를 인수하면서 외형이 더욱 커졌다. 쌍방울그룹도 2010년 쌍방울 인수를 시작으로 자산을 1조 1,698억 원까지 키웠다. 두 그룹이 덩치를 키운 비결을 꼽자면 무자본 인수합병(M&A) 공식을 답습했다는 점이다. 사채를 끌어와 기업을 인수하고 전환사채(CB)를 찍어내 또 다른 회사를 인수했다. 바이오, 전기차, 대북사업 등 신사업 투자도 공격적으로 했다. 호재가 나올 때마다 주가는 춤을 췄고, CB에 투자한 누군가는 '짜고 친 고스톱'처럼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주가조작 의혹이 제기되면 정상적 경영과 투자 활동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쌍방울과 KH그룹은 이렇게 '별종 왕국'을 건설했다. 대기업 수준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갖췄고, 순환출자 구조도 완성했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배상윤 KH그룹 회장은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곳곳에 투자조합을 배치해 자금 추적도 어렵게 했다.

그러나 꼬리는 길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5월 회삿돈 횡령·배임과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를 받고 해외로 도주했다. 알펜시아 인수 과정에서 입찰방해 혐의 등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배 회장도 귀국하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는 10월 12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쌍방울 계열사 51개, KH 계열사 81개의 등기부등본과 두 그룹의 상장사 13곳의 사업보고서를 확보해 분석했다. 두 그룹의 자산 규모와 인적 네트워크를 파악하고 자금 흐름도 추적했다. 김 전 회장과 배 회장이 사채업자와 조직폭력배 출신이란 색안경을 쓰지 않더라도 두 그룹의 문제점은 도드라졌다. 자본시장 질서를 깨트리며 정보가 부족한 개미 투자자에 기생하며 이익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①중견기업이지만…대기업보다 복잡한 지배구조

KH그룹의 계열사는 총 81개다. 상장사가 5개에 불과하고 76개가 비상장사다. 이 가운데 투자조합 형태의 회사도 16곳에 이른다. 투자조합은 일반 기업처럼 등기 의무가 없어 조합원이 누군지 알기 어렵다. 자금이 투자조합에 들어가면 추적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주회사인 건하홀딩스를 정점으로 클로이블루조합KH전자KH필룩스장원테크KH건설KH미디어IHQ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췄다. IHQ는 JSP조합의 최대주주이고, JSP조합은 KH필룩스의 지분 3.62% 소유한다. 장원테크→제이더블유파트너스→클로이블루조합, KH필룩스→에프에스플래닝→클로이블루조합 같은 순환출자 고리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쌍방울은 KH그룹보다 단순하다. 그렇다고 복잡하지 않은 건 아니다. 51개사로 구성된 쌍방울그룹은 상장사 7개(SBW생명과학 제외)가 순환출자 구조를 이룬다. 광림미래산업쌍방울비비안디모아아이오케이컴퍼니제이준코스메틱광림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투자조합 4개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②한 사람이 9개사 임원 재직…페이퍼컴퍼니 수두룩

쌍방울과 KH를 거쳤거나 현재 재직 중인 사내·사외이사 및 감사는 쌍방울이 총 182명, KH그룹이 167명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한 사람이 여러 회사의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는 점이다. KH전자 부사장 김모씨는 KH그룹 내 9개사에서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배상윤 회장의 사촌인 배모씨는 6개사에서 일하고 있고, 또 다른 배모씨도 3개사에서 근무 중이다. 이들 이외에도 다수가 3, 4개사에서 중복해 사내·외 이사나 감사로 재직 중이다.

기업정보 분석회사인 리더스인더스의 박주근 대표는 "쌍방울이나 KH그룹처럼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한 SM그룹도 한 사람이 20여 곳에서 근무하기도 한다"며 "이런 기업들의 공통점은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자금 추적을 어렵게 하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투자조합을 계열사에 포함시켜 돈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③ 믿을 건 가족뿐?…사외이사에 정치인까지

덩치는 키웠지만 가족 경영이 활발한 것도 두 그룹의 특징이다. 그동안 쌍방울과 KH에서 각각 6명씩 경영에 참여했다. 현직만 따지면 쌍방울은 3명, KH그룹이 5명이다. 이는 등기이사 기준으로 비등기이사나 일반 직원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에 참여한 가족 중에선 과거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인사도 있다. 2010년 1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쌍방울 사내이사를 지낸 김 전 회장의 친동생은 2010년 쌍방울 주가조작에 가담했다. 김 전 회장의 아내와 제수는 주가조작에 사용된 통장을 제공했다. 배상윤 회장의 아내도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 당시 통장을 제공했다.

사외이사진도 화려하다. 판·검사 출신 법조인뿐 아니라 국회의원 출신도 눈에 띈다. 쌍방울과 KH에 각각 5명과 3명이 있었다.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화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 3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쌍방울 사외이사를 지냈다. 4선의 이규택 전 한나라당 의원은 쌍방울(2011년 8월~2013년 3월)에서, 김방림 전 새천년민주당 의원은 광림(2017년 3월~올해 3월)과 쌍방울(올해 3월부터 현재까지)에서, 김태랑 전 새천년민주당 의원은 광림(2012년 5~11월)에서, 장영달 전 민주당 의원은 2019년 12월부터 현재까지 비비안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KH에는 정대철 전 민주당 의원(KH필룩스·2016년 10월~2022년 3월), 이철 전 민주당 의원(KH건설·2019년 3월부터 현재까지), 정호준 전 민주당 의원(KH건설·2019년 3월부터 현재까지)이 있다.

④ 쌍방울과 KH는 경제공동체?…활발한 인적·물적·자금 교류

쌍방울과 KH는 지분 투자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 KH 지배구조 핵심 중 하나인 클로이블루조합에 쌍방울 계열사인 미래산업이 조합원으로 포함돼 있다. KH에 쌍방울 자금이 들어갔다는 의미다. 미래산업의 클로이블루조합 지분은 18.09%로 KH 지주회사인 건하홀딩스(39.27%) 다음으로 많다. 건하홀딩스는 비비안 계열사로 분류돼 있다. 건하홀딩스가 2020년 9월 발행한 1회차 전환사채 45억 원도 비비안이 소유하고 있다. 역시 쌍방울 자금이 KH로 들어간 셈이다.

두 그룹이 공동 출자해 만든 회사도 있다. 글로벌디지털에셋이라는 기업이다. 가상자산 거래소와 대체 불가 토큰(NFT) 등의 비즈니스를 위해 설립된 이 회사는 쌍방울에선 아이오케이컴퍼니와 광림이, KH에선 IHQ와 서울미라마(그랜드하얏트 호텔)가 공동 출자했다. 지난 4월 쌍용차를 인수하기 위해 쌍방울그룹의 광림과 KH그룹의 필룩스가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도 했다.

인적 교류도 적지 않다. KH의 장원테크 사내이사인 신언용 변호사는 2020년 5월부터 1년간 쌍방울 미래산업에서 사외이사직을 수행했다. 배 회장이 김 전 회장에게 소개하면서 신 변호사는 쌍방울과도 연결된 셈이다. 서울동부지검장 출신인 신 변호사는 전남 영광 출신으로 배상윤 회장과 고향이 같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고향이 같아 장원테크는 지난 대선에서 '이낙연 테마주'로 분류됐다.

배 회장의 한 측근은 "김 전 회장과 배 회장을 경제 공동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과 다른 측면이 있다"며 "오늘 싸워서 서로 고소장 제출해도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내일 다시 뭉치는 게 이 바닥 생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두 사람은 과거부터 수백 번 금전 거래가 있었기 때문에, 돈을 빌리고 받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⑤ 그들의 꿈은 정상 기업?…앞뒤 다른 행보

쌍방울과 KH 측은 오너가 사채업자와 조폭 출신이란 점 때문에 정상적 기업 활동에 대해서도 색안경을 끼고 본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특히 적극적으로 M&A에 나서는 건 계열사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신사업에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KH 관계자는 "그랜드하얏트 호텔과 알펜시아를 인수한 건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이라며 "4차까지 유찰된 알펜시아를 우리가 인수한다고 하면 환영받을 줄 알았지, 입찰 담합으로 비난받을 것으론 상상조차 못했다"며 억울해했다.

그러나 KH는 하얏트 호텔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 12월 6,000억 원가량에 인수한 호텔은 3년 만에 8,000억~9,000억 원에 매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KH 논리대로라면 미래 먹거리를 위해 인수한 호텔을 '단타 거래'로 처분하겠다는 꼴이다. 지난해에는 호텔 주차장 부지를 최고급 주택 부지 용도로 2,000억 원에 매각하기도 했다.

박주근 대표는 "무자본 M&A 세력은 회사를 인수할 때 자기 자본으로 하지 않는다"며 "인수한 기업 돈을 빼돌려 그 돈으로 또 다른 M&A를 하게 되면, 회사가 서서히 좀비화되고 개인 투자자만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수상한 왕국: 쌍방울·KH그룹의 비밀

<1> 유별난 검찰·정치인 사랑

<2> 기이한 덩치 키우기

<3> 대장동과 그들의 관계는

<4> 전환사채와 주가조작


‘수상한 왕국:쌍방울·KH그룹의 비밀’ 몰아보기(☞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https://www.hankookilbo.com/Collect/8086

<1> 유별난 검찰·정치인 사랑

①[단독] 쌍방울·KH, 윤석열 대통령 친정을 방패 삼았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21180003514

②빚 내 기업 산 뒤 전환사채 찍어 또…'무자본 M&A'로 덩치 키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116380003475

③자신 구속한 검사 사외이사로… 대형 로펌 통해 로비 시도 정황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520480003947


<2> 기이한 덩치 키우기

①[단독]"배상윤 회장 돈 세탁기였나" CB폭탄 돌리기 피해자의 절규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604510002993

②바지사장 앉혀 조종 ‘판박이’…추적 힘든 현금으로 기업 인수도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21370003492


<3> 대장동과 그들의 관계는

<4> 전환사채와 주가조작

이성원 기자
김영훈 기자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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