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엔 비, 중턱엔 눈... 설원으로 변한 나리분지

입력
2023.01.21 10:00
일주도로 따라 울릉도 한 바퀴

강원도 고산지대나 제주도 한라산은 대표적인 눈꽃 여행지다. 그런만큼 겨울에도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반면 환상적인 설경을 자랑하면서도 여유롭고 한적한 곳이 있으니 바로 울릉도다. 울릉도 항로는 11월부터 3월까지 높은 파도 때문에 쾌속선 결항이 잦아 겨울 여행이 쉽지 않았다. 지난해 풍랑주의보에도 운항이 가능한 대형 카페리 여객선이 운항하며 울릉도 눈꽃 여행도 한결 수월해졌다.

겨울에 울릉도로 가는 여객선은 포항 영일만항에서 오후 11시 50분에 출항(울릉도 출항은 오후 12시 30분)하는 울릉크루즈가 유일하다. 포항역과 포항 시내에서 영일만항까지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울릉크루즈 소요 시간은 쾌속선의 두 배 가량인 6시간 30분이지만, 흔들림이 적어 멀미가 거의 없다. 밤에 출항하는 만큼 갑판에서 영일만 야경을 감상한 후 선내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야식을 즐기고, 객실에 누워 꿀잠을 청하면 금세 울릉도 사동항에 도착한다.


해안 일주도로 따라 울릉도 한 바퀴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농어촌버스를 이용하면 대중교통으로도 울릉도 여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관광지에 내려 구경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일정 맞추기가 빠듯하다. 택시를 이용하면 편리하지만 요금이 부담스럽다.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렌터카가 오히려 유리하다.

울릉도를 가장 단순하게 즐기는 방법은 일주도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마음에 드는 곳에 멈춰서 구경하고 다시 이동하면 된다.

사동항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돌면 가장 먼저 거북바위가 반긴다. 우산국박물관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남서일몰전망대에 오르면 바다 풍광이 장쾌하다. 예림원은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울릉도에 자생하는 식물 300여 점의 분재와 자연석을 활용한 바위 조형물, 문자 조각품 등이 어우러져 있다.



통기타 가수 이장희의 ‘울릉도는 나의 천국’ 노래비가 인상적인 울릉천국아트센터, 수심 6m 바닷속을 관람하는 천부해중전망대, 수면에 우뚝 선 코끼리바위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비경이 이어진다.

날카로운 송곳봉을 지나면 바다 위에 3개의 바위봉우리, 삼선암이 보인다. 지상으로 내려온 세 선녀가 바위로 변했는데, 가장 늑장부린 막내의 바위에만 풀이 자라지 않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보행교로 연결된 관음도 역시 원시의 섬 울릉도의 비경이다.



이어 내수전일출전망대 오르면 섬 속의 섬 죽도와 관음도, 저동항까지 시원하게 바다 풍광이 펼쳐진다. 오징어잡이 배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저동항은 울릉도의 대표 어항이다. 방파제의 촛대바위에는 조업 나간 아버지를 기약 없이 기다리다 돌로 굳어버린 효녀 이야기가 서려 있다.

도동으로 이동하면 독도박물관과 독도전망대케이블카가 있다. 박물관에서는 독도의 역사와 자연환경 및 식생을 한눈에 살필 수 있고, 독도전망대케이블카에서는 울릉도에서 가장 큰 항구인 도동항 일대와 동해 바다가 장쾌하게 펼쳐진다. 이름난 관광지만 대충 둘러봐도 이 정도이니, 울릉도의 자연과 문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최소 2박 3일은 잡아야 한다.

눈꽃 명소 봉래폭포와 나리분지

울릉도의 겨울 풍광은 당연히 성인봉이 으뜸이지만 산악인 코스라 등산이 쉽지 않다. 저동항 뒤편 주차장에서 약 1㎞ 떨어진 봉래폭포까지는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갈 수 있다. 오르막이지만 대체로 무난하고 중간에 볼거리도 풍성하다. 항상 시원한 바람이 흘러나온다는 풍혈,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삼나무 숲을 지나면 눈으로 덮인 봉래폭포가 보인다. 주민들이 상수원으로 사용할 만큼 수량이 풍부하다. 설경 속에 요란한 물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삼단폭포가 선경인 듯하다. 관람료는 성인 2,000원.


섬 북측 나리분지는 울릉도 눈꽃 여행의 백미다. 동서 1.5㎞, 남북 2㎞에 달하는 울릉도 유일의 평지로, 오랜 시간에 걸쳐 화산분화구가 무너지고 흙과 돌이 쌓여 형성된 지형이다. '나리분지'라는 지명은 옛날 울릉도 개척민들이 먹을 것이 부족해 봄이면 이곳에 많이 자라는 나리를 캐서 연명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전망대에 오르자 겨울 왕국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병풍처럼 둘러친 산과 나무마다 눈꽃이 만발했다. 해발 350m 고지대라 해안에는 비가 와도 이곳엔 눈이 내린다. 한번 쌓인 눈은 잘 녹지 않아 최소 2월 중순까지는 설경이 유지된다고 한다. '2023 울릉도 눈축제'가 다음달 3일부터 5일까지 예정돼 있는데, 이미 설국으로 변한 상태라 매일매일 눈축제다.

마을에 들어서면 너와투막집과 억새투막집이 눈에 띈다. 1882년 울릉도 개척 당시 모습을 보여주는 전통가옥으로 눈 덮인 지붕과 고드름, 귀틀로 짠 방과 아궁이를 보면 오랜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성인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원시림도 눈꽃 천국으로 변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식당이 네 곳뿐이지만 나리분지는 울릉도 미식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자연산 전호나물(산미나리)과 노지에서 재배한 미역취, 섬부지깽이, 삼나물(눈개승마) 등 각종 나물로 구성된 산채비빔밥이 일품이다. 눈 속에서 싹을 틔우고 자연에서 자란 것들이라 좀 질기지만 독특한 향을 풍기는 건강식이다. 삼나물무침과 오징어산채전은 섬의 특산주인 씨껍데기술 안주로 제격이다.



박준규 대중교통여행 전문가 blog.naver.com/saka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