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불러낸 촛불연대 '중고생운동史'… "이적 행위" VS "역사 검열"

입력
2023.01.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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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국보법 위반 경찰 수사 의뢰
역사학계 "北 주장 답습... 왜곡 존재"
국보법 적용 가능 여부엔 의견 '팽팽'

“북한을 찬양ㆍ고무하는 이적표현물” (서울시), “특정 집단을 죽이려는 종북몰이” (촛불중고생시민연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를 주도한 촛불중고생시민연대(촛불연대)가 발간한 책 ‘중고생운동사’를 두고 때아닌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1919년 3ㆍ1 운동 이래 중고생이 참여한 사회운동을 소개한 265쪽 분량의 책으로 촛불연대가 서울시 보조금을 받아 2021년 발간했다. 시는 중고생운동사가 북한을 일방적으로 미화했다며, 촛불연대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반면 촛불연대 측은 “정부에 비판적 단체를 탄압하기 위해 국보법을 악용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한다.

한국일보는 역사학자와 형법 전문가 7명에게 ①해당 서적이 정말 북한을 ‘찬양’했는지 ②국보법상 찬양ㆍ고무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문가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다. 북한의 ‘체제 선전’을 그대로 담는 등 일부 내용에서 문제점이 엿보이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역사에 이적행위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반대로 “순수한 학술 목적으로 볼 수 없다”면서 책 제작 경위를 따져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학계 "김일성 재평가 北 주장 인용은 맞아"

시가 문제 삼은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책은 김일성 전 주석이 14세 때 대표를 맡았다고 북한이 주장하는 ‘타도제국주의 새날소년동맹’에 대해 “민족 최초의 중고교생 운동 조직”이라고 평가하며, 촛불연대가 동맹을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김 전 주석의 최대 항일투쟁 업적으로 선전하는 1937년 ‘보천보 전투’도 “조선 독립투쟁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독립군 국내 진공작전”이라고 기술했다.

일단 역사학자들은 “학계 주류 의견과 동떨어져 있다”고 입을 모았다. 보천보 전투는 순사 5명이 지키던 작은 마을을 습격한 사건이어서 명칭부터 ‘전투’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는 “김 전 주석을 우상처럼 그린 기록화를 그대로 배치한 건 의아하다”고 말했다. 타도제국주의 새날소년동맹 대목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정일영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북한이 김일성 1인체제를 확립한 후 역사를 재정리하는 과정에서 주장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국보법 적용은 역사 해석 침해"

그렇다면 쟁점은 국보법 적용 가능성에 모아진다. 비판하는 쪽은 책 내용이 ‘중고생운동사(史)를 정리한다’는 목적에는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부 문구에 근거해 찬양ㆍ고무죄를 적용한 1980년대와 달리 지금은 전체 맥락을 판단해야 하고 확실한 찬양ㆍ선동 문구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문제 되는 내용이 주류 해석은 아니더라도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한 만큼 국보법으로 다룰 사안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신민영 변호사는 “보천보 전투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토론과 연구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아니다. 배후 나오면 국보법으로 처벌"

국보법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책에 찬양ㆍ선동 문구가 있느냐를 두고 논쟁하기보단, 실제 책이 만들어진 과정이 어땠는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책 제작 과정 전반을 조종한 ‘배후’ 세력의 존재가 드러나면 국보법으로 처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울시도 촛불연대 감사보고서에 “책을 만든 동기 및 경위, 이적행위의 목적성 여부를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촛불연대는 지난해 서울시 보조금을 받아 중ㆍ고생을 상대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이해 높이기’ 같은 강연을 개최하고, 국보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받은 탈북민을 강연자로 초청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