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도시' 강릉... 안목해변이 대세? 나만의 감성 원하면 명주동!

입력
2023.02.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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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원도심 취향 저격 복고 카페와 '시나미 명주나들이'

강릉을 ‘커피도시’라 한다면 그 첫손가락에 안목해변이 꼽힌다. 1990년대 하루에 버스가 두세 차례 다니던 한적한 바닷가에 커피 자동판매기가 등장한 것이 시작이었다. 호젓하게 바다를 즐기려는 이들에게 자판기 커피가 인기를 끌자 그 숫자가 30여 개로 늘었고, 경쟁도 치열해져 자판기 주인마다 커피, 설탕, 분말 크림의 황금비율을 찾는 데 열을 올렸다. 여기에 20여 년 전 국내 바리스타 1세대 ‘박이추 커피’가 입성하며 강릉은 커피도시로 도약했고, 안목해변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거리로 발돋움했다. 안목 커피거리가 대세지만, 감성적이면서도 좀 더 호젓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이들이 가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명주동 카페 골목이다.

명주동은 고려시대부터 강릉대도호부 관아가 있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근래까지 법원 검찰청 시청 등 주요 관공서가 몰려 있는 지역의 중심이었다. 강릉사범학교를 비롯해 명주초, 경포중, 강릉고, 강릉여중 등 지역의 명문 학교도 모두 이곳을 거쳐갔다.

하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세태는 어쩔 수 없어, 여느 소도시와 마찬가지로 원도심 명주동도 낡고 오래된 동네로 전락하고 말았다. 쇠락해가던 명주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 역시 커피였다. 새 건물을 짓는 건 불가하고, 고칠 수만 있었던 조건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노후한 건물이 지닌 고유의 감성과 편안함을 살린 카페가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카페 ‘봉봉방앗간’은 실제 방앗간을 개조한 경우다. 1층은 떡을 만들고 고춧가루를 빻던 남문방앗간, 2층은 면발이 바람에 일렁거리던 국수공장이었다고 한다. 적산가옥 목재 창틀을 살린 ‘오월’ 카페도 눈에 띈다. 한때는 동네 멋쟁이들이 드나들던 카바레였고, 의료용품 창고로도 쓰였던 건물이 복고 감성 물씬 풍기는 카페로 거듭났다. 이들 카페가 입소문을 타자 낡은 집을 개조해 주인장의 개성을 살린 카페도 속속 들어섰다. ‘명주배롱’ 카페는 타일 벽화와 정원수로 심은 배롱나무가 돋보이고, 카페 ‘명주동’은 세탁소였던 내부를 주인장의 취향을 살린 갤러리로 단장했다. 동네 중심의 ‘명주사랑채’에 가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강릉 커피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이곳 역시 가정집이었는데 화재 후 시에서 매입해 커피 전시실로 쓰고 있다.




명주동은 지금도 티 나지 않게 조용히 진화하고 있다. 골목을 돌다 보면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소규모 공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낡은 골목에 젊은 층의 발길이 잦아지자 최근에는 커피숍뿐만 아니라 이들의 취향을 겨냥한 와인바와 게스트하우스, 생활소품 가게,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카페 골목과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강릉대도호부관아가 있다.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진 객사문은 강원도 건축물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돼 있다. 가운데가 불룩한 배흘림기둥이 멋스러운 이 건물을 토대로 근래에 객사인 임영관을 비롯한 주요 건물을 복원했다. 객사문 다음으로 오래된 건물은 칠사당이다. 지방 수령이 일곱 가지 사무(농사, 호구, 교육, 병무, 세금, 재판, 풍속)를 관장하던 집무실로, ‘一’자형 본체에 돌출되게 누마루를 설치해 멋들어진 외관이 돋보인다. 경내에는 이미 매화향이 그윽한데, 그중에서도 칠사당 화단의 매화가 곱고 운치 있다.



명주동 골목과 역사를 한 번에 돌아보고 싶다면 ‘시나미 명주나들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시나미’는 강릉 말로 ‘천천히’라는 뜻이다. 마을해설사가 동행해 강릉대도호부관아, 옛 성벽 흔적, 임당동성당, 성황당 터, ‘봄날은 간다’ 촬영지 등 마을의 역사 유적을 돌아본다. 대를 이어 영업하는 지역 맛집도 소개받을 수 있다. 1시간 코스, 1인당 1만 원, 함계정 명주주민해설가협동조합 이사장(010-5363-1090)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강릉=글·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