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 쉽고, 체력 부담도 적어"... 제대 후 40년간 족구 삼매경

입력
2023.03.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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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서울 토요족구모임 '토족회'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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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오전 8시 서울 성동구 중랑물재생센터에 약 20명의 생활체육인이 모였다. 토요족구모임(토족회) 소속 회원인 이들은 몸을 푼 뒤 센터 내 두 개의 족구 코트를 활용해 4대 4 게임을 시작했다. 3도 안팎의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이들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연신 공을 주고받았다.

이날 모임에 참여한 주용일(65)씨는 1981년 공군에서 처음 족구를 접한 뒤 40년 넘게 족구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는 “지금은 없어진 공군 기획사령부에서 근무를 했는데, 그때 공 하나로 간단하게 땀을 뺄 수 있는 족구의 매력에 빠졌다”며 “제대 후에도 운동을 하고 싶어서 서울 중랑구에 있는 태풍족구단에 소속돼 2014년까지 꾸준히 공을 찼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족구 사랑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주씨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다 보니 젊은 사람들과 족구 경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술자리에서 지인들과 ‘나이 먹은 사람들끼리 운동을 해 보자’고 의기투합해 토족회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처음 10여 명으로 시작한 토족회는 현재 25명까지 회원이 늘었다. 최연장자는 72세이고, 회원 70%가 60대다. 50대 회원들은 이곳에서 젊은 축에 속한다. 많은 대회에 참가하지는 않지만 서울시민리그는 해마다 꼭 출전한다. 주씨는 “4년간 서울시민리그에 4번 나갔는데 50대 팀이 2021년 대회에서 4강에 올랐다”며 “60개 팀 중에 공동 3위를 차지한 셈이니 꽤 선전한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최근에는 지역별로 구청장기와 족구협회장기 대회가 매년 개최되는 등 족구의 저변이 한층 확대되는 추세다. 더 나아가 지난해 울산에서 열린 제103회 전국체육대회에는 족구가 시범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남자 일반부 14개 팀과 여자 일반부 16개 팀이 참가해 자웅을 겨뤘고, 경남과 대구 대표팀이 각각 남자부와 여자부 우승을 거머쥐었다.

전국 규모의 대회가 생기면서 규칙도 확고하게 정립됐다. 4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대결하고, 무릎 아래 발과 턱 위 머리만 이용해 공을 상대 코트로 넘겨야 득점이 인정된다. 바운드와 선수의 공 터치는 1회씩 3회 이내가 원칙이다. 세트당 15점을 먼저 내는 팀이 이기고, 3세트 중 2세트를 따내면 승리한다.

이 같은 간단한 규칙 덕분에 족구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사랑받고 있다. 토족회 유일한 홍일점인 정미숙(62)씨는 “평소 자동차에 운동화와 공, 네트를 싣고 다니다 운동장이 보이면 지인들과 족구를 즐긴다”며 “길을 걸을 때도 누군가 족구를 하고 있으면 ‘저도 한 게임 뛸 수 있을까요’라고 물은 뒤 경기에 참여한다”고 전했다.

그는 족구의 또 다른 매력으로 부상 위험이 적다는 점을 꼽았다. 정씨는 “1998년부터 여성 축구단에서 운동을 하다가 2010년 오른쪽 십자인대 파열로 축구를 그만두게 됐다”며 “1년 정도 쉬다가 족구를 접하게 됐는데, 축구에 비해 부상 위험이 훨씬 적어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족구의 세계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편과 아들, 딸 모두 족구를 즐긴다”며 “나는 심판과 지도자 자격증을 딸 정도로 빠져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체력적인 부담도 다른 운동에 비해 적다. 노년층이 일주일에 두세 번 운동을 해도 몸에 큰 무리가 없다. 실제로 정씨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주간에 족구를 하고, 수요일에는 서울 강동구에서 여성 회원들과 ‘야족(야간 족구)’을 즐긴다. 또 다른 회원인 이대성(67)씨 역시 “토요일 2, 3시간, 일요일 5시간 정도 족구를 하는데 체력적으로 전혀 부담이 없다”며 “운동을 할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눈이 와도 제설작업을 하고 공을 찬다”고 전했다.

1994년부터 족구를 해 왔다는 이씨는 “비 오는 날 깎아 치는 타법을 활용하면 물 위에서 공이 튀지 않고 밑으로 깔려 가는데, 이렇게 경기 운영을 하면 득점 기회가 많이 온다”며 수중전 영업 비밀도 귀띔했다.

토족회 회원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있다면 족구의 저변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며 아쉬움도 내비쳤다. 동대문구 족구협회장을 맡고 있는 서종명(65)씨는 “대회를 개최하려면 심판 보수, 식비 등 부대비용이 발생하는데 늘 예산이 빠듯하다”며 “또 경기장 확보를 위해 학교 운동장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개방해 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박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