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지금 자란다... 어른들을 지켜보면서

입력
2023.03.14 04:30
6면
[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 ④-3]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작가 기고문


편집자주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김소영 작가는 베스트셀러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아이의 잠재력과 어른의 인내심이 가져올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마스크와 스마트폰에 갇혀 ‘제대로 클 기회’를 놓친 코로나 키즈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어른들의 따뜻한 관심과 느긋한 인내심 아닐까요? 4회를 이어 온 ‘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는 팬데믹을 버텨온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보내는 김 작가의 따스한 인사로 마무리합니다.



하림이는 마스크 벗기를 사양했다. 따로따로 만난 선우도 한이도 마찬가지였다. 어른인 내가 방역 마스크를 꼼꼼히 썼고, 이 공간은 틈틈이 환기하고 소독도 하고 있으니 어린이는 마스크를 벗어도 될 것 같다고 설명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모두 올해 처음 독서교실에 온 어린이들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2학년, 3학년, 4학년. 초등학교 생활 전부를 마스크와 함께 보냈다. 마스크를 벗고 누군가와 만나는 게 어쩌면 더 어색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정확하게는 겁이 났다. 내가 이 세대를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 무지는 두려움을 부른다. 그래서 정확한 답보다 빠른 답을 찾는다. 이를테면 '코로나 시대 어린이는 이렇다'고 서둘러 단정 짓는 것이다. 학교 가기 귀찮아하고, 공부는 안 하고, 스마트폰 중독이고, 친구를 사귈 줄 몰라 이기적이고, 정서도 불안한 상태라고 한다. 이렇게만 정리하고 보면 미래는 우울하고 우리는 실패했다는 결론에 이르기 쉽다. 그런데 어린이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면 이 쉬운 답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대체 그런 회의와 절망이 무슨 쓸모가 있나. 지금 당장 어린이가 자라고 있는데.

나는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오늘날 어린이의 경험과 감각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짐작하는 대신 물어보기로 했다. 어린이가 마음을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가르쳐주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학교' '친구' '세계' 등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어렵고 피하고 싶은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나 역시 다른 방법으로는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이 말은 현실을 직면하고 미래를 대비할 용기가 조금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 기획 기사 속에서 지후는 책상이 없어서 침대 위에 밥상을 올리고 원격 수업을 들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몸과 마음이 위축되어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어린이가 얼마나 많을까. 행여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되면 그때 지후는 도서관이든 학교 강당이든 안전하고 열린 공간에서 태블릿을 열어야 한다. 지후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텅 빈 시간을 홀로 감당하지 못해 스마트폰의 그늘로 들어간 은솔이에게 세상이 관대해지면 좋겠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은솔이는 환영받을 권리가 있다. ADHD와 아동 학대 등 여러 겹의 고통 속에 있는 성현이는 응급환자로서 구조되어야 한다. 좋은 어른과 굳건한 제도와 다정한 마음들이 성현이를 둘러싸서, 지난 상처는 아예 없는 것처럼 지워야 한다. 성현이는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태풍 소식에 바닷가에서 마냥 걱정하고 서 있을 사람은 없다. 배를 묶고 방파제를 점검하고 집을 돌볼 것이다. 지금 어린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것이 다음 팬데믹, 또는 더 큰 세계적 위기가 찾아왔을 때 우리의 조건을 바꾸어 놓는다. 양육자와 교육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어린이를 생각해야 한다.

코로나19 시대에 내가 배운 바가 있다면, 어린이에게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하게 오래도록 영향을 끼치는 건 바로 어른들이라는 사실이다. 어른들이 재난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어린이도 그런 사람이 된다. 어른이 아니라 '어른들', 사회의 모습이다. 힘든 시간인 만큼 더 많이 협력하고 나누고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자라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김소영 작가